들어가는 글
상처가 사라지지 않아도 우리는 다시 삶을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은 사랑에 상처받은 사람에게 다시 사랑하라고 말하는 책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은 사랑과 이별보다 훨씬 넓을지도 모릅니다.
사람은 배신당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습니다.
평범한 행복을 알아보지 못한 채 지나칩니다.
기도해도 답을 얻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자신도 죽는다는 사실과 마주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삶을 사랑해야 할까요?
상처가 완전히 나은 뒤일까요?
슬픔이 끝난 뒤일까요?
모든 질문에 답을 얻은 뒤일까요?
두려움이 사라진 뒤일까요?
Part 1에서는 시인들과 함께 물었습니다.
상처받은 뒤에도 우리는 삶을 사랑할 수 있을까?
Part 2에서는 심리학과 인간 연구의 관점에서 다시 물었습니다.
상처가 사라지지 않아도 우리는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이제 Part 3에서는 그 질문들을 다섯 사람의 평범한 삶 속으로 가져갑니다.
전남편의 배신 때문에 새로운 사랑이 두려운 서윤.
어머니가 남긴 마지막 김치찌개를 먹지 못하는 현우.
행복을 계속 미래로 미루는 지훈.
남편을 잃은 뒤 하나님에게 화가 난 은희.
그리고 죽음이 가까이 왔다고 믿은 뒤에야 자신의 우선순위를 다시 바라보게 된 성호.
이들은 완벽하게 치유되지 않습니다.
과거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슬픔도 남습니다.
질문도 남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남습니다.
하지만 삶에는 조금씩 다른 것들이 다시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사랑.
웃음.
가족의 목소리.
평범한 저녁 식사.
아침 햇빛.
그리고 아직 작별하지 않은 사람들.
어쩌면 치유란 상처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처가 있어도 삶 전체가 상처만은 아니게 되는 것
인지도 모릅니다.
이 다섯 이야기를 관통하는 질문은 하나입니다.
삶이 완전해진 뒤에 사랑할 것입니까?
아니면 불완전한 이 삶을 지금 사랑할 것입니까?
Story 1: 답장이 늦는 사람

민재의 마지막 메시지는 오후 6시 14분에 왔다.
오늘 좀 늦을 수도 있어. 끝나면 연락할게.
서윤은 6시 16분에 답했다.
응. 천천히 해.
그리고 정말 천천히 하려고 했다.
회사 근처 카페에서 원고를 펼쳤다. 다음 달 출간 예정인 에세이였다. 빨간 펜으로 두 문장을 고치고, 한 문단을 통째로 지웠다.
7시 3분.
휴대전화를 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 원고를 읽었다.
7시 21분.
또 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바쁘겠지.”
서윤은 혼잣말처럼 말했다.
커피는 이미 식어 있었다.
7시 48분.
이번에는 메시지 창을 열었다.
민재의 프로필 사진이 보였다. 지난달 둘이 한강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사진 속 민재는 웃고 있었다.
서윤은 메시지를 쓰기 시작했다.
아직 안 끝났어?
쓰고 지웠다.
많이 바빠?
또 지웠다.
결국 아무것도 보내지 않았다.
괜찮은 여자처럼 보이고 싶었다.
정확히 말하면,
괜찮은 여자이고 싶었다.
8시 12분.
두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때 아주 오래된 기억 하나가 돌아왔다.
서윤은 그것이 기억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가슴이 조금 빨리 뛰기 시작했다.
손바닥이 차가워졌다.
머릿속에서는 이미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누구랑 있는 거지?
왜 연락을 못 하지?
전화 한 번 하는 게 그렇게 어렵나?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무서운 문장이 나타났다.
그때도 처음에는 이랬어.
3년 전이었다.
전남편 준호도 처음부터 거짓말을 잘했던 것은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잘했는지도 모른다.
서윤이 몰랐을 뿐이다.
“회의가 길어졌어.”
“거래처 사람들이랑 저녁 먹고 있어.”
“배터리가 없었어.”
“왜 그렇게 예민해?”
처음에는 모두 그럴듯했다.
서윤은 믿었다.
사랑하면 믿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의심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토요일 오후,
남편이 샤워하는 동안 휴대전화 화면에 메시지 하나가 떴다.
어제 너무 좋았어.
그 한 문장이 11년의 결혼생활을 둘로 잘라놓았다.
그전의 삶.
그리고 그후의 삶.
나중에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한 번이 아니었다.
몇 달도 아니었다.
거의 2년이었다.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다른 여자가 있었다는 사실만이 아니었다.
서윤이 아무것도 몰랐다는 것이었다.
같은 침대에서 잤다.
같이 밥을 먹었다.
생일 케이크에 촛불을 켰다.
제주도 여행도 갔다.
사진 속에서 웃었다.
그 모든 시간 동안 자신만 다른 현실에서 살고 있었다.
이혼 후 서윤은 오랫동안 같은 질문을 했다.
어떻게 내가 몰랐을까?
그리고 그 질문은 조금씩 다른 질문으로 변했다.
나는 사람을 볼 줄 모르는 건가?
그리고 마지막에는,
나는 나 자신을 믿어도 되는 건가?
8시 27분.
서윤은 카페 창밖을 바라보았다.
늦가을 한강 쪽으로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었다.
커플 하나가 같은 목도리를 둘러쓰고 지나갔다.
서윤은 갑자기 그 모습이 싫었다.
휴대전화를 다시 들었다.
민재에게 전화를 걸까 생각했다.
그러다 그만두었다.
대신 가방에 원고를 넣었다.
그 순간 메시지가 왔다.
민재였다.
심장이 먼저 반응했다.
이제 끝났어. 미안. 갑자기 현장에서 문제가 생겨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 아직 카페야?
서윤은 화면을 한참 바라보았다.
안도감이 먼저 왔다.
그다음에는 화가 났다.
그리고 바로 그다음에는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겨우 두 시간이었다.
민재는 연락하겠다고 했고,
실제로 연락했다.
그런데 자신은 이미 머릿속에서 그를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다.
응. 아직 있어.
서윤이 답했다.
20분쯤 뒤 민재가 카페에 들어왔다.
머리는 조금 헝클어져 있었고 코트 어깨에는 먼지가 묻어 있었다.
“미안.”
민재가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진짜 정신없었어.”
“괜찮아.”
서윤은 웃었다.
너무 빨리 웃었다.
민재는 메뉴판을 들었다.
“뭐 마실래? 내가 살게.”
“괜찮아. 나 이제 가려고.”
“화났어?”
“아니.”
“진짜?”
“응.”
서윤은 가방을 들었다.
“피곤해서 그래.”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서윤은 자신에게 화가 났다.
왜 그냥 말하지 못했지?
그런데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몰랐다.
두 시간 동안 당신이 바람피우는 상상을 했다고?
당신이 다른 여자와 있는 것 같았다고?
전남편이 했던 거짓말을 당신도 할 것 같았다고?
그런 말을 하면 민재는 어떻게 생각할까.
피곤한 여자.
집착하는 여자.
상처에서 못 빠져나온 여자.
무엇보다 서윤 자신이 그런 여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날 밤 민재에게 메시지가 왔다.
오늘 진짜 괜찮았어?
서윤은 한참 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썼다.
응. 잘 자.
보내려다 멈췄다.
문장을 지웠다.
다시 썼다.
사실 안 괜찮았어.
손가락이 멈췄다.
몇 초 뒤 문장을 하나 더 썼다.
근데 당신이 뭘 잘못해서 그런 건 아니야.
보내기 버튼을 누르기까지 3분이 걸렸다.
민재에게 전화가 왔다.
서윤은 받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도 받았다.
“무슨 일이야?”
민재가 물었다.
“그냥...”
서윤은 침대 끝에 앉았다.
“나도 잘 모르겠어.”
“천천히 말해.”
그 말 때문에 오히려 더 어려워졌다.
서윤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말했다.
“당신이 연락이 안 되면 이상해져.”
“이상해진다고?”
“응.”
“어떻게?”
서윤은 눈을 감았다.
“당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보여.”
민재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뜻이야?”
“전남편.”
또 침묵.
서윤은 계속했다.
“그 사람도 연락 안 될 때가 많았어. 회의라고 하고, 일이 있다고 하고. 나중에 알고 보니까...”
말이 멈췄다.
민재가 조용히 말했다.
“알아.”
서윤은 민재에게 이혼 이유를 이미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이야기한 적은 없었다.
“오늘 당신 답장이 늦었을 때...”
서윤은 숨을 한번 들이쉬었다.
“머리로는 알아. 당신은 일하고 있을 수도 있고, 운전하고 있을 수도 있고, 그냥 휴대전화를 못 봤을 수도 있다는 거.”
“응.”
“그런데 몸은 그렇게 생각 안 해.”
민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윤은 처음으로 정확한 문장을 찾았다.
“당신이 늦게 답장하면, 나는 당신이 아니라 예전 사람과 이야기하기 시작해.”
전화기 너머가 조용했다.
서윤은 갑자기 후회했다.
너무 많은 말을 했다고 생각했다.
“미안. 이상하지?”
민재가 말했다.
“아니.”
“솔직히 말해도 돼.”
“솔직히 말하면...”
민재가 잠시 생각했다.
“내가 그걸 다 이해한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 같아.”
서윤은 웃었다.
조금 실망했지만,
이상하게도 안심도 됐다.
“그래.”
“근데 네가 왜 그럴 수 있는지는 조금 알 것 같아.”
그날 이후 모든 것이 좋아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가까워질수록 서윤의 두려움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민재가 여자 동료 이야기를 하면 신경이 쓰였다.
휴대전화가 뒤집혀 있으면 이유가 궁금했다.
주말 약속이 갑자기 바뀌면 머릿속에서 작은 경보음이 울렸다.
그리고 어느 토요일 밤,
서윤은 거의 선을 넘을 뻔했다.
민재의 집이었다.
저녁을 먹고 둘이 영화를 보고 있었다.
민재가 샤워하러 들어갔다.
식탁 위에 그의 휴대전화가 있었다.
화면이 켜졌다.
메시지가 하나 왔다.
보낸 사람 이름은 여자였다.
지연
내용은 화면에 다 보이지 않았다.
오늘 얘기한 거...
그 뒤는 잘려 있었다.
서윤의 몸이 굳었다.
샤워기 물소리가 들렸다.
휴대전화는 손만 뻗으면 닿는 곳에 있었다.
비밀번호도 알고 있었다.
민재가 전에 운전하면서 내비게이션을 켜달라고 비밀번호를 말해준 적이 있었다.
서윤은 휴대전화를 바라보았다.
손을 뻗었다.
집었다.
화면을 켰다.
비밀번호 입력창이 나타났다.
손가락이 멈췄다.
머릿속에서 두 목소리가 싸웠다.
확인하면 되잖아.
아무것도 없으면 안심할 수 있잖아.
그리고 다른 목소리가 말했다.
3년 전에도 확인했어야 했잖아.
그 문장이 가장 강했다.
서윤의 손가락이 다시 움직였다.
이제 7만 누르면 됐다.
그 순간 서윤은 이상한 것을 깨달았다.
자신은 진실을 알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안전하다는 확신을 얻고 싶었다.
하지만 오늘 휴대전화를 확인해서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고 해도
내일 또 확인하고 싶어질 것이다.
다음 주에도.
다음 달에도.
확신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문제는 휴대전화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서윤은 화면을 껐다.
휴대전화를 원래 자리에 놓았다.
손이 떨렸다.
민재가 욕실에서 나왔다.
“왜 그래?”
“뭐가?”
“얼굴이 이상한데.”
“아니야.”
서윤은 자동으로 대답했다.
그리고 멈췄다.
예전 같으면 여기서 끝났을 것이다.
그녀는 다시 말했다.
“아니. 맞아.”
민재가 수건으로 머리를 닦다가 멈췄다.
서윤이 휴대전화를 가리켰다.
“메시지 왔어.”
민재가 화면을 봤다.
“아, 지연 씨.”
그 이름을 너무 자연스럽게 말해서 오히려 서윤의 가슴이 다시 뛰었다.
“회사 사람?”
“응. 오늘 회의한 분.”
서윤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말했다.
“나 방금 네 휴대전화 볼 뻔했어.”
민재의 손이 멈췄다.
이번에는 긴 침묵이었다.
“봤어?”
“아니.”
“근데 보려고 했어?”
“응.”
민재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서윤은 그 표정을 보며 생각했다.
끝났다.
그런데 이번에는 도망가지 않기로 했다.
“미안해.”
민재는 의자에 앉았다.
“솔직히 기분은 안 좋아.”
“알아.”
“내 휴대전화 몰래 보는 건 싫어.”
“알아.”
서윤은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내가 불안한 건 이해해줬으면 좋겠어.”
민재가 한참 생각했다.
“그 두 개가 같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서윤이 고개를 들었다.
“뭐가?”
“네가 불안한 걸 내가 이해하는 거랑, 내가 휴대전화 몰래 보는 건 싫다고 말하는 거.”
서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문장은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서윤은 생각했다.
자신은 지금까지 두 가지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사람을 믿는다.
아니면 믿지 않는다.
문을 연다.
아니면 벽을 세운다.
그런데 그 사이에 다른 것이 있을지도 몰랐다.
경계선.
경계선은 벽이 아니었다.
벽은 말했다.
아무도 들어오지 마.
경계선은 말했다.
여기까지는 괜찮아.
이것은 싫어.
이것은 시간이 필요해.
이것은 이야기할 수 있어.
그리고 무엇보다,
경계선에는 문이 있었다.
누구에게,
언제,
얼마나 열지는
자신이 결정할 수 있었다.
몇 주 뒤,
민재의 답장이 또 늦었다.
이번에는 세 시간이었다.
서윤은 회사에서 퇴근한 뒤 한강을 걷고 있었다.
7시 10분.
7시 46분.
8시 23분.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아무것도 없었다.
가슴에서 익숙한 느낌이 올라왔다.
또 시작이야.
그 문장이 나타났다.
곧 다음 문장도 왔다.
누구랑 있는 거야?
그리고 오래된 목소리가 속삭였다.
그때도 처음에는 이랬어.
서윤은 걸음을 멈췄다.
강 건너 불빛이 물 위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불안은 여전히 있었다.
놀랍게도 거의 예전과 같은 크기였다.
서윤은 조금 실망했다.
자신이 더 나아졌다면
이런 느낌 자체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없어지지 않았다.
그 순간 지난번 자신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서윤은 가슴 위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처음으로 불안을 없애려고 하지 않았다.
속으로 말했다.
그래. 무섭구나.
그다음 문장이 따라왔다.
그럴 수 있어.
그리고 조금 있다가,
세 번째 문장이 떠올랐다.
하지만 무섭다는 것과 위험하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야.
서윤은 민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많이 바쁜가 봐. 끝나면 연락해. 나는 좀 걸을게.
그리고 휴대전화를 가방에 넣었다.
5분 뒤 다시 꺼내고 싶었다.
꺼내지 않았다.
10분 뒤 또 확인하고 싶었다.
이번에는 꺼냈다.
아무 메시지도 없었다.
서윤은 자신에게 짜증을 내지 않았다.
다시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걸었다.
한강 바람은 차가웠다.
나뭇잎 몇 장이 보도 위를 굴러갔다.
자전거가 지나갔다.
어디선가 강아지가 짖었다.
두 사람이 편의점 컵라면을 들고 벤치에 앉아 있었다.
세상은 이상할 만큼 평범했다.
서윤은 생각했다.
민재가 자신을 배신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누구도 보장해줄 수 없다.
민재도 할 수 없다.
자신도 할 수 없다.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어느 정도 알 수 없는 미래 앞에 서는 일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예전과 달랐다.
과거에는 두려움이 생기면
그 두려움이 곧 진실이었다.
지금은 아주 작은 틈이 생겼다.
두려움과 행동 사이의 틈.
그곳에서 서윤은 선택할 수 있었다.
9시 02분.
휴대전화가 울렸다.
민재였다.
미안. 휴대전화 차에 두고 들어갔어. 지금 끝났어. 전화해도 돼?
서윤은 메시지를 읽었다.
안도했다.
하지만 웃음이 나왔다.
왜냐하면 자신이 기다린 것은
사실 이 메시지가 아니었다는 것을 조금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기다리고 있던 것은
다시는 상처받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었다.
그런 보장은 아마 오지 않을 것이다.
서윤은 잠시 강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민재의 목소리가 들렸다.
“미안. 많이 기다렸지?”
서윤은 말했다.
“조금.”
“화났어?”
서윤은 생각했다.
“아니.”
그리고 이번에는 그 말이 거짓말이 아니었다.
“근데 좀 무서웠어.”
민재가 잠시 조용해졌다.
“또?”
“응. 또.”
서윤이 웃었다.
“아마 또 그럴 것 같아.”
민재도 웃었다.
“그래.”
서윤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불안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과거도 사라지지 않았다.
준호가 했던 일도 없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과 함께
한강의 밤도 있었다.
차가운 바람도 있었다.
민재의 목소리도 있었다.
그리고 아직 결정되지 않은 내일도 있었다.
서윤은 처음으로 그것이면 충분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상처받지 않은 사람이 될 필요는 없었다.
다시는 상처받지 않을 사람도 될 수 없었다.
다만,
상처받았다는 사실에게
앞으로 누구를 사랑할 것인지까지 결정하게 하지 않을 수는 있었다.
서윤은 강을 따라 계속 걸었다.
상처도 함께 걸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처가 앞장서지 않았다.
원작과의 연결
이 이야기는 상처를 잊거나 다시 순진한 사람이 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이라는 제목을 **“상처받은 과거가 앞으로의 모든 사랑을 결정하게 하지 말라”**는 질문으로 확장한다. Part 1의 **“상처는 예언자가 아니라 기억이다”**라는 통찰과 Part 2의 애착, 자기연민, 신뢰와 경계선에 대한 논의를 서윤의 관계 속에서 보여준다. 치유는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과 행동 사이에 다시 선택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생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Story 2: 엄마의 마지막 김치찌개

어머니의 장례식이 끝난 다음 날,
현우는 냉동실에서 김치찌개를 발견했다.
작은 플라스틱 용기였다.
뚜껑 위에 노란색 테이프가 붙어 있었다.
그 위에 어머니의 글씨가 있었다.
현우 오면 주기
현우는 한참 동안 그 글씨를 바라보았다.
글씨는 살아 있었다.
조금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현’.
힘을 너무 줘서 굵어진 ‘우’.
어머니는 언제나 이름을 그렇게 썼다.
현우는 냉동실 문을 열어둔 채 서 있었다.
뒤에서 누나가 말했다.
“뭐 해?”
현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문 닫아. 다 녹겠다.”
그제야 냉동실 문을 닫았다.
김치찌개는 꺼내지 않았다.
어머니는 79세였다.
부산에서 혼자 살았다.
현우는 서울에서 직장을 다녔다.
멀다면 멀었고,
가깝다면 갈 수 있는 거리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늘 바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했고,
주말에는 쉬어야 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아이들 때문에 못 갔다.
아이들이 커서는 일이 바빠서 못 갔다.
명절에는 갔다.
어머니 생신에도 가능한 한 내려갔다.
그러니까 현우는 자신이 나쁜 아들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실제로 나쁜 아들은 아니었다.
그저,
시간이 많다고 생각한 아들이었다.
어머니는 일주일에 두세 번 전화했다.
전화 내용은 거의 같았다.
“밥 먹었니?”
“응.”
“뭐 먹었어?”
“회사 앞에서.”
“뭘 먹었냐고.”
“그냥 뭐 먹었어.”
“김치 없지?”
“있어.”
“그게 언제 만든 건데?”
“엄마, 나 지금 좀 바빠.”
“알았다.”
전화를 끊기 직전에는 늘 같은 질문이 따라왔다.
“언제 부산 내려올 거야?”
현우도 늘 비슷하게 대답했다.
“조만간 갈게.”
조만간.
그때는 아주 편리한 말이었다.
정확한 날짜가 없어도 됐다.
거짓말도 아니었다.
정말 갈 생각이었다.
다음 달일 수도 있고,
그다음 달일 수도 있었다.
어머니도 그 말이면 됐다.
“그래. 바쁜데 무리하지 마라.”
그리고 며칠 뒤 또 전화했다.
“밥 먹었니?”
장례식이 끝난 뒤 집을 정리해야 했다.
누나는 옷장을 정리했다.
현우는 부엌을 맡았다.
냉장고에는 어머니의 시간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반쯤 먹은 된장.
고무줄로 묶어놓은 파.
작은 반찬통.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
약봉지.
그리고 냉동실에는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음식들이 플라스틱 봉지에 차곡차곡 들어 있었다.
멸치.
떡.
고등어.
다진 마늘.
김치.
그 사이에
현우 오면 주기
라고 적힌 김치찌개가 있었다.
누나가 말했다.
“그거 가져가.”
현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엄마가 너 준다고 해놓은 거잖아.”
현우가 물었다.
“언제 만든 건데?”
“몰라. 얼마 안 됐을걸.”
현우는 용기를 꺼냈다.
손바닥보다 조금 컸다.
별것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무거웠다.
서울로 올라오는 KTX에서 현우는 김치찌개를 작은 보냉가방 안에 넣어두었다.
기차가 부산역을 떠날 때
창밖을 보지 않았다.
휴대전화만 봤다.
뉴스를 읽었다.
회사 메일을 확인했다.
메신저에 답했다.
무언가를 계속 해야 했다.
가만히 있으면
어머니가 죽었다는 사실이 따라올 것 같았다.
집에 도착하자 아내가 말했다.
“그거 뭐야?”
“엄마가 만들어놓은 거.”
“김치찌개?”
“응.”
“오늘 먹을까?”
현우가 너무 빨리 대답했다.
“아니.”
아내가 그를 바라보았다.
“왜?”
“오늘은 그냥... 다른 거 먹자.”
아내는 더 묻지 않았다.
현우는 김치찌개를 냉동실 가장 안쪽에 넣었다.
일주일이 지났다.
한 달이 지났다.
김치찌개는 그대로 있었다.
처음에는 먹을 시간이 없었다.
그다음에는 먹고 싶은 날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현우는 자신이 왜 먹지 않는지 알게 되었다.
먹으면 없어지기 때문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어머니가 살아 있을 때는
김치찌개를 보내면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다.
택배 상자를 열면 반찬통이 여섯 개씩 나왔다.
“엄마, 이제 그만 보내.”
“왜?”
“우리도 다 사 먹어.”
“사 먹는 거랑 이거랑 같나?”
“냉장고에 자리도 없어.”
“그러면 빨리 먹어.”
현우는 짜증을 냈다.
그런데 이제 냉동실 안의 작은 용기 하나를 버릴 수도,
먹을 수도 없었다.
가끔 현우는 아무 이유 없이 냉동실 문을 열었다.
용기를 확인했다.
현우 오면 주기.
그 글씨가 그대로 있으면 안심이 됐다.
어머니가 아주 조금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어느 토요일,
딸 수진에게 전화가 왔다.
“아빠.”
“응.”
“뭐 해?”
“일 좀 보고 있어.”
“오늘 저녁에 시간 있어?”
현우는 노트북 화면을 봤다.
월요일 회의 자료를 정리하고 있었다.
오늘 꼭 해야 하는 일은 아니었다.
“왜?”
“그냥 같이 밥 먹을까 해서.”
“오늘?”
“응.”
현우는 시계를 봤다.
“오늘은 좀 그렇고 다음 주에 먹자.”
“알았어.”
“무슨 일 있어?”
“아니. 그냥.”
“그래. 다음 주에 보자.”
“응.”
전화를 끊었다.
현우는 다시 일을 시작했다.
몇 분 뒤,
물을 가지러 부엌에 갔다.
무심코 냉동실 문을 열었다.
김치찌개가 보였다.
노란색 테이프.
현우 오면 주기.
현우는 그 글씨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문을 닫았다.
왜 화가 났는지 자신도 몰랐다.
어머니가 죽은 지 세 달쯤 되었을 때,
현우는 처음으로 꿈에서 어머니를 봤다.
특별한 꿈은 아니었다.
어머니가 부엌에서 파를 썰고 있었다.
현우가 식탁에 앉아 있었다.
어머니가 물었다.
“밥 먹었니?”
현우는 대답하려고 했다.
그런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눈을 떴다.
새벽 4시 17분이었다.
현우는 침대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
냉동실을 열었다.
김치찌개를 꺼냈다.
전자레인지에 넣으려고 했다.
그러다가 멈췄다.
용기를 바라보았다.
뚜껑을 열었다.
얼어붙은 김치와 국물이 보였다.
어머니가 만든 마지막 김치찌개.
현우는 갑자기 생각했다.
이걸 먹으면 이제 정말 없어지는구나.
뚜껑을 다시 닫았다.
냉동실에 넣었다.
그리고 부엌 바닥에 앉았다.
쉰두 살의 남자가
새벽 네 시에 냉장고 앞에 앉아 울었다.
현우는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거대한 순간들이 떠오르지 않았다.
졸업식도 아니었다.
결혼식도 아니었다.
가족여행도 아니었다.
어머니가 귤을 까던 손.
택배 상자 안에 신문지를 구겨 넣던 모습.
전화를 끊기 전에 하던 말.
“감기 조심해라.”
현우가 부산에 내려가면
아무리 늦어도 밥을 차리던 모습.
그리고 가장 많이 떠오른 것은
자신이 제대로 듣지 않았던 말들이었다.
밥 먹었니?
언제 내려올 거야?
시간이 더 지났다.
어머니의 첫 기일이 가까워졌다.
누나에게 전화가 왔다.
“다음
Story 3: 평범했던 화요일

화요일 아침 6시 42분.
지훈의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알람은 아니었다.
사진 앱에서 온 알림이었다.
10년 전 오늘
지훈은 침대에서 반쯤 눈을 뜬 채 화면을 눌렀다.
사진 한 장이 나타났다.
좁은 아파트였다.
낡은 플라스틱 식탁 위에 라면 냄비가 놓여 있었다.
열 살도 안 된 딸 민서가 젓가락으로 라면을 들어 올리고 있었고,
아들 준호는 입을 크게 벌린 채 웃고 있었다.
아내 미영은 냄비받침을 한 손에 들고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사진 한쪽에는
열 살 젊은 지훈의 얼굴 절반이 보였다.
모두 웃고 있었다.
지훈도 웃고 있었다.
그는 사진을 확대했다.
“이때가 좋았는데.”
아주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이상한 기억 하나가 돌아왔다.
사진을 찍은 바로 그날에도
자신이 했던 말이었다.
“조금만 지나면 좀 살 만해질 거야.”
지훈은 마흔여섯 살이었다.
인천 근교의 아파트에서 아내와 두 아이와 살았다.
딸 민서는 고등학교 2학년.
아들 준호는 중학교 2학년.
그리고 열두 살 된 개 보리가 있었다.
직장에서는 팀장이었다.
연봉도 10년 전보다 훨씬 높았다.
집도 더 컸다.
자동차도 좋아졌다.
아이들에게 각자 방이 있었다.
10년 전의 지훈이 지금의 삶을 봤다면
아마 성공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지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불행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행복하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아직 가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아침 식탁에서 미영이 물었다.
“오늘 몇 시쯤 와?”
“모르겠어.”
“또 늦어?”
“요즘 원래 그렇잖아.”
민서가 휴대전화를 보며 말했다.
“아빠, 토요일 기억하지?”
“뭐?”
민서가 고개를 들었다.
“학교 축제.”
“아.”
지훈은 커피를 마셨다.
“몇 시라고 했지?”
민서가 한숨을 쉬었다.
“세 번 말했는데.”
“요즘 아빠가 정신이 없어.”
“됐어.”
“갈 거야.”
“진짜?”
“가능하면.”
민서가 다시 휴대전화를 봤다.
“그럼 안 온다는 거네.”
“야, 왜 말을 그렇게 해?”
미영이 지훈을 바라보았다.
“가능하면 말고 가면 되잖아.”
지훈은 시계를 봤다.
“나 늦었어.”
현관으로 갔다.
보리가 느릿느릿 따라왔다.
지훈이 신발을 신자 보리가 꼬리를 흔들었다.
“갔다 올게.”
보리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 문을 열었다.
뒤에서 미영이 말했다.
“아버님한테 전화 좀 해.”
“왜?”
“어제 전화하셨잖아.”
“알았어.”
“맨날 안 하니까 그러지.”
“회사 가서 할게.”
문이 닫혔다.
출근길 차 안에서 아버지에게 전화하려고 했다.
그러다 회사 메신저 알림이 왔다.
회의 시간이 당겨졌다는 메시지였다.
전화를 미뤘다.
점심때 해야지.
점심에는 거래처 사람이 왔다.
퇴근할 때 해야지.
퇴근할 때는 부장이 말했다.
“지훈 팀장, 오늘 저녁 잠깐 시간 되지?”
“네.”
아버지 전화는 다음 날로 넘어갔다.
지훈에게는 이런 일이 많았다.
아주 중요한 일을 미루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작고 평범한 것들을 미뤘다.
아버지에게 전화하기.
아내와 산책하기.
아들과 농구 한 게임 하기.
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기.
보리를 조금 더 오래 산책시키기.
그런 것들은 언제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늘 나중이었다.
지훈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이번 승진.
주택대출.
아이들 대학.
노후 자금.
조금 더 큰 집.
그리고 언젠가 가족과 갈 유럽 여행.
그는 자주 말했다.
“이번 프로젝트만 끝나면.”
“올해만 지나면.”
“민서 대학 가면.”
“대출 좀 더 갚으면.”
“나중에 시간 많아지면.”
그 모든 문장은 결국 같은 뜻이었다.
지금은 아직 진짜 삶이 아니다.
그날 저녁 9시가 조금 넘어 집에 들어갔다.
미영은 소파에서 잠들어 있었다.
TV에서는 드라마가 소리 없이 재생되고 있었다.
식탁에는 랩을 씌운 된장찌개가 있었다.
민서의 방문 밑으로 불빛이 보였다.
준호는 거실 바닥에서 이어폰을 끼고 게임을 하고 있었다.
보리가 현관까지 걸어와 꼬리를 흔들었다.
예전처럼 뛰지는 못했다.
“아빠 왔어?”
준호가 화면에서 눈도 떼지 않고 말했다.
“응.”
“밥?”
“먹었어.”
사실 저녁 회식에서 거의 먹지 못했다.
하지만 다시 차려달라고 하기 싫었다.
냉장고에서 물을 꺼냈다.
휴대전화를 봤다.
부재중 전화가 하나 있었다.
아버지
오후 4시 13분.
지훈은 시계를 봤다.
9시 17분.
전화를 걸까 하다가 멈췄다.
아버지는 일찍 잤다.
내일 하지 뭐.
그때 아침에 봤던 사진이 다시 생각났다.
지훈은 휴대전화를 열었다.
10년 전의 라면 사진.
사진 속 집은 지금보다 훨씬 작았다.
그때는 그 집이 싫었다.
아이들 장난감이 거실을 차지했고,
화장실은 하나뿐이었고,
아래층에서는 아이들이 시끄럽다고 항의했다.
월급날이 오면 카드값부터 계산했다.
미영과 돈 문제로 자주 싸웠다.
그때 지훈은 정말로 생각했다.
조금만 지나면 좀 살 만해질 거야.
그런데 지금 사진을 보니
그 시절이 행복해 보였다.
“뭐 봐?”
미영이 잠에서 깨며 물었다.
“옛날 사진.”
지훈이 휴대전화를 보여줬다.
미영이 사진을 보고 웃었다.
“아, 저 집.”
“기억나?”
“당연하지.”
“좋았지?”
미영이 지훈을 이상하게 바라봤다.
“뭐가?”
“그때.”
미영이 웃었다.
“당신 기억 안 나?”
“뭘?”
“맨날 돈 없다고 스트레스받았잖아.”
지훈이 웃었다.
“그랬나?”
“아래층 아줌마 올라온 날은 당신이 이사 가고 싶다고 난리였고.”
“맞다.”
“민서 감기 달고 살았고. 준호는 밤마다 울고.”
지훈은 다시 사진을 봤다.
사진 속에는 그런 것이 하나도 없었다.
웃고 있는 얼굴들만 있었다.
미영이 말했다.
“사진은 이상해.”
“뭐가?”
“힘든 건 잘 안 찍히잖아.”
그 말이 지훈에게 오래 남았다.
그날 밤 침대에 누워 지훈은 생각했다.
어쩌면 자신은
과거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과 오늘의 가장 피곤한 오후를 비교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 게임에서 오늘은 절대로 이길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지훈은 일부러 집을 조금 천천히 바라보았다.
별것 없었다.
미영은 머리를 묶으며 커피를 마셨다.
민서는 거울 앞에서 앞머리를 만지고 있었다.
준호는 양말 한 짝을 찾고 있었다.
“엄마! 내 검은 양말 어디 있어?”
“네 방에 있겠지!”
“없어!”
“내가 네 양말까지 알아야 돼?”
보리는 식탁 아래에서 누군가 음식을 떨어뜨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끄러웠다.
지훈은 웃음이 나왔다.
민서가 물었다.
“왜 웃어?”
“아니야.”
“이상해.”
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회사에서 점심을 먹다가 아버지에게 전화했다.
“여보세요?”
아버지 목소리가 들렸다.
“아버지.”
“왜?”
“그냥 전화했어요.”
“무슨 일 있냐?”
“없어요.”
“돈 필요하냐?”
지훈이 웃었다.
“제가 아버지한테 돈을 왜 받아요.”
“그럼 왜 전화했어?”
지훈은 잠시 대답하지 못했다.
“그냥요.”
전화기 너머로 TV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가 말했다.
“밥은 먹었냐?”
“네.”
“뭐 먹었어?”
지훈은 웃었다.
“제육볶음.”
“짜게 먹지 마라.”
“네.”
대화는 4분도 안 됐다.
전화를 끊은 뒤
지훈은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 먹먹했다.
그날 오후,
팀장이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다들 조금 늦게까지 가능하죠? 자료 다시 한번 맞춰봅시다.
지훈은 습관처럼
네
라고 쓰려 했다.
그러다 멈췄다.
자료는 거의 완성돼 있었다.
내일 오전에도 할 수 있었다.
중요한 야근이 아니었다.
그저 모두가 남으니까 남는 야근이었다.
지훈은 메시지를 지웠다.
그리고 썼다.
제 파트는 마무리했습니다. 오늘은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내일 오전에 최종 확인하겠습니다.
보내고 나니 괜히 불안했다.
무책임해 보일까?
열정이 없어 보일까?
승진에 영향이 있을까?
그러다가 자신도 웃겼다.
저녁 한 번 일찍 간다고 인생이 망한다면
그 회사가 더 큰 문제였다.
집에 도착하니 7시가 조금 넘었다.
미영이 문을 열고 놀랐다.
“무슨 일 있어?”
“없는데.”
“왜 이렇게 일찍 와?”
“집에 오면 안 돼?”
미영이 웃었다.
“아니, 낯설어서.”
그날 저녁은 특별하지 않았다.
배달시킨 족발이었다.
민서는 학원에서 늦게 왔다.
준호는 밥 먹으면서 계속 휴대전화를 봤다.
미영은 음식이 너무 많다고 잔소리했다.
보리는 식탁 밑을 돌아다녔다.
민서가 말했다.
“아빠, 토요일 진짜 올 거야?”
지훈이 대답했다.
“응.”
“가능하면?”
“아니.”
지훈은 족발 한 점을 집었다.
“갈 거야.”
민서가 잠시 아빠를 바라봤다.
“진짜?”
“응.”
“왜 갑자기?”
지훈이 웃었다.
“그냥.”
식사 중 휴대전화가 울렸다.
회사 메신저였다.
지훈은 화면을 봤다.
손이 자연스럽게 휴대전화로 갔다.
그러다가 멈췄다.
휴대전화를 뒤집어 놓았다.
준호가 놀렸다.
“아빠 회사 잘렸어?”
“야.”
모두 웃었다.
그 순간 지훈은 갑자기
10년 뒤의 자신을 상상했다.
쉰여섯 살의 자신.
민서는 아마 집을 떠나 있을 것이다.
준호도 군대에 가거나 대학에 있을지 모른다.
보리는...
거기서 생각을 멈췄다.
미영의 머리에는 흰색이 더 많아질 것이다.
아버지가 그때도 전화를 받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이 식탁은
아마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일 것이다.
지훈은 순간 겁이 났다.
모두 사라진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곧 그것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현재를 사랑하기 위해
매 순간 그것을 잃는 장면을 상상해야 한다면
그것 역시 행복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미래를 그만 생각했다.
그냥 식탁을 바라보았다.
민서가 웃고 있었다.
준호가 소스를 흘렸다.
미영이 휴지를 건넸다.
보리는 떨어진 고기 한 점을 재빨리 먹었다.
그게 전부였다.
그날 밤 지훈은 사진을 찍지 않았다.
기록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저 그 안에 있었다.
며칠 뒤 토요일,
지훈은 민서의 학교 축제에 갔다.
민서는 친구들과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다.
아주 잘하지는 못했다.
음정도 조금 틀렸다.
지훈은 누구보다 크게 박수를 쳤다.
민서가 무대에서 내려와 말했다.
“아빠 진짜 왔네.”
그 말이 이상하게 아팠다.
진짜 왔네.
자신이 오지 않을 가능성을
딸이 이미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지훈은 변명하지 않았다.
“응.”
그리고 말했다.
“왔어.”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미영이 잠들었다.
민서와 준호도 뒷좌석에서 조용했다.
신호등 앞에 차가 멈췄다.
지훈은 가족들의 얼굴을 잠깐 바라보았다.
행복하다는 거대한 감정은 없었다.
눈물이 나지도 않았다.
인생의 의미를 깨달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나는 지금 내 삶 속에 있구나.
몇 주 뒤,
지훈은 다시 야근했다.
아버지 전화를 한 번 놓쳤다.
민서와 사소한 일로 싸웠다.
미영에게 짜증도 냈다.
휴대전화를 보면서 밥을 먹은 날도 있었다.
사람은 한 번 깨달았다고
영원히 깨어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지훈도 다시 잊었다.
그리고 가끔 다시 기억했다.
그 정도였다.
어느 화요일 밤,
지훈이 늦게 집에 들어왔다.
미영은 소파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민서는 자기 방에 있었다.
준호는 냉장고를 열어놓고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보리가 느린 걸음으로 현관까지 나왔다.
아버지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시간 날 때 전화해라. 별일 없다.
지훈은 신발을 벗었다.
예전 같으면 생각했을 것이다.
별일 없는 하루네.
그날은 조금 다르게 생각했다.
별일 없어서 다행인 하루네.
그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
“왜?”
“그냥요.”
“밥은 먹었냐?”
지훈이 웃었다.
“아직요.”
“밥도 안 먹고 뭐 했어?”
“일했죠.”
“그러다 몸 버린다.”
“알아요.”
평범한 대화였다.
수천 번 했던 말들이었다.
아마 다음에도 비슷할 것이다.
그래도 지훈은 이번에는 서둘러 끊지 않았다.
통화를 끝내고 식탁에 앉았다.
미영이 된장찌개를 데워주었다.
준호가 옆에서 냉장고 문을 또 열었다.
“야, 문 좀 닫아.”
“먹을 거 찾고 있잖아.”
“아까부터 뭘 그렇게 찾아?”
민서가 방에서 소리쳤다.
“엄마, 내 충전기 못 봤어?”
미영이 말했다.
“나는 너희 물건 찾는 사람이 아니야!”
집이 다시 시끄러워졌다.
지훈은 웃었다.
미영이 물었다.
“왜?”
“아니야.”
“요즘 왜 자꾸 혼자 웃어?”
지훈은 된장찌개를 한 숟갈 먹었다.
“그냥 좋아서.”
미영이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가?”
지훈은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대답했다.
“그냥 지금이.”
그날은 특별한 화요일이 아니었다.
아무도 병에 걸리지 않았다.
아무도 떠나지 않았다.
복권에 당첨되지도 않았다.
승진도 없었다.
여행도 없었다.
사진으로 남길 만한 일도 없었다.
그리고 지훈은 조금씩 알게 되었다.
언젠가 자신이 가장 그리워할 날들 가운데 많은 날이
아마 이런 날일 것이라는 것을.
특별한 일이 없어서 기억하지 못했던 날들.
그래서 행복한 줄도 몰랐던 날들.
지훈은 더 이상 완벽한 미래가 와야 삶이 시작된다고 믿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신이 기다리고 있던 미래에서
언젠가는 오늘을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기다리고 있는 오늘도, 이미 삶이었다.
원작과의 연결
이 이야기는 단순히 “현재에 감사하라”는 교훈이 아니다.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이 바라보는 삶의 덧없음과 Part 1의 **“잃고 나서 배운 것을, 아직 잃지 않은 것에게 사용한다”**는 질문을 평범한 가족의 하루로 옮긴다. Part 2의 감사에 대한 논의처럼, 감사는 힘든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 부족한 것이 있어도 이미 존재하는 좋은 것까지 보이지 않게 만들지는 않는 것이다. 행복은 미래의 완벽한 날보다, 우리가 너무 익숙해서 보지 못하는 평범한 화요일 안에 이미 있을지도 모른다.
Story 4: 하나님께 화가 난 여자

은희는 남편이 죽은 뒤에도 매주 일요일 교회에 갔다.
그것이 가장 이상한 일이었다.
교회에 가고 싶지 않았다.
기도하고 싶지도 않았다.
찬송가를 부르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일요일 아침이 되면 몸이 먼저 움직였다.
검은색 코트를 입고,
성경책을 가방에 넣고,
늘 앉던 자리로 갔다.
남편이 살아 있을 때는 둘이 함께 앉던 자리였다.
오른쪽에서 다섯 번째 줄.
통로에서 세 번째와 네 번째 의자.
은희는 여전히 세 번째 의자에 앉았다.
네 번째 의자는 비어 있었다.
사람들은 은희에게 친절했다.
예배가 끝나면 손을 잡아주었다.
“권사님, 힘드시죠?”
“기도하고 있어요.”
“힘내세요.”
은희는 웃으며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그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정말 감사했다.
반찬을 가져다준 사람도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밤늦게까지 남아준 사람도 있었다.
병원에 함께 간 사람도 있었다.
남편이 마지막으로 입원했을 때
매일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한 사람들도 있었다.
은희는 그 모든 것을 기억했다.
그래서 더 말할 수 없었다.
나는 하나님께 화가 났어요.
남편 정호가 처음 암 진단을 받은 것은 1년 반 전이었다.
처음에는 치료가 가능하다고 했다.
의사는 조심스럽게 말했지만,
은희는 희망이 있다는 부분만 들었다.
교회에서도 기도하기 시작했다.
새벽기도.
중보기도.
구역예배.
목사도 병원에 왔다.
사람들은 정호의 어깨에 손을 얹고 기도했다.
은희는 누구보다 열심히 기도했다.
“하나님, 살려주세요.”
다른 것은 필요 없다고 했다.
돈도 필요 없고,
성공도 필요 없고,
자신의 남은 인생이 힘들어도 괜찮으니
남편만 살려달라고 했다.
몇 달 뒤 검사 결과가 좋아졌다.
암의 크기가 줄었다.
의사가 말했다.
“치료 반응이 좋습니다.”
교회 사람들은 기뻐했다.
“기도가 응답됐네요.”
은희도 울었다.
감사해서 울었다.
정호가 집으로 돌아오던 날
둘은 교회에 잠깐 들렀다.
아무도 없는 예배당에 앉아 함께 기도했다.
은희는 그날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5개월 뒤 암은 다시 발견됐다.
이번에는 빨랐다.
너무 빨랐다.
정호는 다시 입원했다.
은희는 다시 기도했다.
이번에는 더 열심히 했다.
혹시 지난번보다 덜 기도해서 나빠진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새벽 네 시에도 기도했다.
병원 복도에서도 기도했다.
정호가 잠들면 침대 옆에서 손을 잡고 기도했다.
“하나님, 한 번만 더.”
그 말만 반복했다.
한 번만 더.
정호가 죽기 사흘 전,
그가 은희에게 말했다.
“당신 집에 가서 좀 자.”
“싫어.”
“얼굴이 나보다 더 안 좋아.”
“당신이나 신경 써.”
정호가 웃었다.
힘이 없어서 웃음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은희는 화를 냈다.
“웃지 마.”
“왜?”
“힘들잖아.”
정호는 한참 그녀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은희야.”
“응.”
“나 때문에 당신까지 죽지는 마.”
은희는 그 말을 듣기 싫었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마.”
“그냥.”
“하지 마.”
“알았어.”
그것이 남편과 나눈 마지막 긴 대화였다.
사흘 뒤 새벽 2시 18분,
정호는 죽었다.
은희는 그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 순간에도 기도하고 있었다.
그래서 은희에게는 한동안
기도와 남편의 죽음이 같은 기억 속에 붙어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사람들은 좋은 말을 많이 해주었다.
“이제 고통 없는 곳에 계실 거예요.”
“천국에서 다시 만나실 거예요.”
“하나님께는 우리가 모르는 계획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견디셔야 해요.”
은희는 모두에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마음속에서는 다른 목소리가 말했다.
무슨 계획인데요?
남편이 죽은 지 두 달쯤 되었을 때,
은희는 처음으로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낼 뻔했다.
구역예배가 끝난 뒤였다.
한 교인이 말했다.
“권사님이 믿음이 있으셔서 그래도 잘 견디시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이 말했다.
“맞아요. 역시 신앙이 있으니까 다르죠.”
은희는 웃었다.
“아니에요.”
“아니긴요. 저 같으면 무너졌을 거예요.”
은희는 말하고 싶었다.
저도 무너졌어요.
그런데 말하지 못했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 현관문을 닫자마자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소리 내어 말했다.
“나 하나도 안 괜찮아.”
듣는 사람은 없었다.
기도도 점점 어려워졌다.
예전에는 눈을 감으면 말이 나왔다.
감사합니다.
도와주세요.
지켜주세요.
용서해주세요.
그런데 이제 눈을 감으면 질문 하나만 나왔다.
왜요?
왜 살려준 것처럼 했다가 다시 데려갔어요?
왜 그렇게 많이 기도하게 했어요?
왜 희망을 줬어요?
왜 하필 그 사람이었어요?
왜 나를 혼자 남겼어요?
그리고 가장 무서운 질문.
기도가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면, 나는 그동안 누구에게 말하고 있었던 거예요?
은희는 그 질문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다.
그 질문을 하는 순간
자신이 믿음을 잃은 사람이 될 것 같았다.
남편을 잃은 것도 견디기 힘든데,
신까지 잃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질문을 숨겼다.
그러나 숨길수록 신에게서 더 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 일요일 목사가 설교 중에 말했다.
“고난 속에서도 감사해야 합니다.”
은희는 그 문장을 수없이 들었다.
예전에는 좋아했던 말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게 화가 났다.
뭘 감사하라는 거예요?
자신의 생각에 스스로 놀랐다.
곧바로 죄책감이 따라왔다.
이러면 안 되지.
은희는 눈을 감았다.
“하나님, 죄송합니다.”
그런데 그 순간 또 화가 났다.
내가 왜 죄송해야 하지?
그리고 그 생각을 한 자신에게 다시 죄책감을 느꼈다.
슬픔 위에 분노가 올라왔고,
분노 위에 죄책감이 올라왔다.
은희는 이제 무엇 때문에 우는지도 알 수 없었다.
남편이 죽은 지 여섯 달째 되던 어느 수요일 밤,
은희는 집에 있기 싫어서 교회에 갔다.
수요예배가 끝난 뒤였다.
사람들은 거의 돌아갔다.
예배당 불도 절반만 켜져 있었다.
은희는 늘 앉던 자리에 앉았다.
오른쪽에서 다섯 번째 줄.
세 번째 의자.
그리고 옆의 네 번째 의자를 바라보았다.
비어 있었다.
은희는 그 의자에 손을 올렸다.
“당신.”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다시 말했다.
“당신.”
그것뿐이었다.
눈물이 떨어졌다.
얼마나 지났는지 몰랐다.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나이 든 목사가 통로를 걸어왔다.
은희는 급히 눈물을 닦았다.
“아직 안 가셨어요?”
목사가 물었다.
“네.”
“괜찮으세요?”
은희는 습관처럼 대답하려 했다.
네, 괜찮아요.
그런데 그날은 그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니요.”
목사는 잠시 서 있다가 물었다.
“옆에 앉아도 될까요?”
은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목사는 정호가 앉던 네 번째 의자가 아니라
그 옆 다섯 번째 의자에 앉았다.
그 작은 거리가 은희에게 이상하게 고마웠다.
한동안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은희가 먼저 말했다.
“목사님.”
“네.”
“저 나쁜 생각해요.”
“어떤 생각이요?”
은희는 손가락을 꽉 잡았다.
“하나님한테 화가 나요.”
목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은희는 그 침묵이 무서웠다.
그래서 급하게 말했다.
“그러면 안 되는 거 알아요.”
목사가 물었다.
“누가 그러면 안 된다고 했습니까?”
은희가 그를 바라보았다.
“하나님한테 화내면 안 되잖아요.”
“왜요?”
은희는 당황했다.
목사는 다시 물었다.
“왜 하나님께 화가 났습니까?”
그 순간 은희의 얼굴이 무너졌다.
“왜 그 사람을 데려갔어요?”
목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우리 진짜 많이 기도했잖아요.”
은희의 목소리가 커졌다.
“목사님도 기도했잖아요.”
“네.”
“교회 사람들도 다 기도했잖아요.”
“네.”
“나 매일 기도했어요.”
“압니다.”
“새벽에도 했어요.”
“네.”
“병원에서도 했어요.”
은희는 울면서 말했다.
“그 사람이 자고 있을 때도 손 잡고 기도했어요.”
목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근데 왜요?”
은희가 그를 바라보았다.
“왜 하나님이 그 사람을 데려갔어요?”
목사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은희는 기다렸다.
성경구절을 말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님의 뜻.
천국.
영원한 생명.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계획.
은희는 그 모든 말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은 하나도 듣고 싶지 않았다.
목사가 입을 열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은희는 눈을 들었다.
“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저는 모릅니다.”
은희는 목사를 바라보았다.
그 대답을 예상하지 못했다.
“목사님이 모르시면 어떡해요?”
목사가 아주 작게 웃었다.
“제가 목사라고 해서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은희는 울면서 물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해요?”
목사는 잠시 생각했다.
“오늘은 아무것도 안 하셔도 됩니다.”
“기도도요?”
“기도가 안 되면 안 하셔도 됩니다.”
은희가 놀라서 바라보았다.
“그래도 돼요?”
“제가 허락할 일은 아니겠지요.”
둘 사이에 잠깐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목사가 말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잠시 후,
“하지만 오늘은 제가 여기 있겠습니다.”
그날 두 사람은 거의 40분 동안 앉아 있었다.
많이 이야기하지 않았다.
목사는 정호의 죽음에 의미를 붙이지 않았다.
은희에게 용서하라고도 하지 않았다.
감사하라고도 하지 않았다.
믿음을 더 가지라고도 하지 않았다.
그냥 앉아 있었다.
은희는 이상하게도
남편이 죽은 뒤 처음으로
누군가와 함께 제대로 슬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와도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정호는 돌아오지 않았다.
신에 대한 질문도 남아 있었다.
은희는 여전히 화가 났다.
그런데 한 가지가 달라졌다.
이제 그 화를 숨겨야만 신앙이 유지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뒤 새벽,
은희는 오랜만에 침대 옆에 무릎을 꿇었다.
기도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습관처럼 그렇게 앉았을 뿐이었다.
눈을 감았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5분쯤 지났다.
은희는 일어나려고 했다.
그때 문장 하나가 나왔다.
“하나님, 아직 화가 나 있습니다.”
은희는 눈을 떴다.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놀랐다.
곧 사과하려 했다.
하지만 멈췄다.
다시 눈을 감았다.
“왜 그 사람을 데려갔는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눈물이 났다.
“아직도 싫습니다.”
조금 있다가 말했다.
“아직도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 여기 있습니다.”
그날 기도는 그것으로 끝났다.
몇 달 뒤에도 은희의 믿음은 예전과 같지 않았다.
예전에는 기도하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날이 많았다.
이제는 기도하고도 답답한 날이 있었다.
예전에는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말을 쉽게 사용했다.
이제는 누군가 큰 상실을 겪었을 때 그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대신 반찬을 만들어 가져갔다.
병원에 함께 갔다.
전화했다.
때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옆에 앉았다.
어느 날 교회에서 젊은 여자가 은희를 찾아왔다.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사람이었다.
여자가 울면서 말했다.
“사람들이 자꾸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해요.”
은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저는 그 말이 너무 싫어요.”
여자가 고개를 숙였다.
“제가 믿음이 없는 걸까요?”
예전의 은희였다면 무엇이라고 했을까.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고 했을지도 모른다.
기도하자고 했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거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은희는 그날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말했다.
“나도 그 말이 싫었던 때가 있어요.”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은희가 말했다.
“지금도 모르는 게 많아요.”
“그러면 어떻게 견디셨어요?”
은희는 잠시 생각했다.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아주 천천히 말했다.
“그냥 모르는 채로 살아가는 법을 조금씩 배우고 있는 것 같아요.”
그날 밤 은희는 집으로 돌아왔다.
정호의 사진이 거실 선반 위에 있었다.
사진 속 남편은 웃고 있었다.
은희는 사진 앞에서 말했다.
“오늘 이상한 일이 있었어.”
마치 정호가 다른 방에 있는 것처럼 하루 이야기를 했다.
대답은 없었다.
당연했다.
은희는 여전히 그 사실이 싫었다.
아마 오래도록 싫을 것이다.
잠들기 전 은희는 짧게 기도했다.
감사합니다.
라고 시작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이해합니다.
라고도 하지 않았다.
대신 말했다.
“오늘은 조금 덜 화가 났습니다.”
잠시 생각했다.
“내일은 또 화날 수도 있습니다.”
그 말을 하고 자신도 조금 웃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했다.
“그래도 내일 다시 이야기하겠습니다.”
은희는 신에 대한 답을 얻지 못했다.
남편의 죽음에 이유가 있었는지도 몰랐다.
기도가 왜 자신이 원했던 방식으로 응답되지 않았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전에는
믿음이란 의심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했다.
어쩌면 믿음은
질문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가지고도 관계를 완전히 떠나지 않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어떤 사람에게는
그 관계를 떠나는 것이 정직한 선택일 수도 있다는 사실도
예전보다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은희는 더 이상 다른 사람의 고통을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
누군가 울면 이유를 찾아주지 않았다.
누군가 신에게 화가 났다고 하면 바로 고쳐주지 않았다.
때로는 설명보다 곁에 있는 것이 먼저라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그녀가 정호를 잃은 이유를 알게 된 것은 아니었다.
고통이 좋은 것이었다고 생각하게 된 것도 아니었다.
다만 고통 이후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는
아직 완전히 결정되지 않았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어느 늦은 밤,
은희는 교회 앞을 지나가다 잠시 멈췄다.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도시의 불빛 때문이었다.
은희는 속으로 말했다.
하나님, 계십니까?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잠시 후 다시 말했다.
저는 아직 여기 있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걸어갔다.
질문도 함께 걸었다.
슬픔도 함께 걸었다.
믿음도,
의심도 함께 걸었다.
어느 하나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은희의 삶 전체가
그 질문 하나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원작과의 연결
이 이야기는 신앙이 모든 고통을 설명하거나 해결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이 품고 있는 영적 질문을 통해, 답을 얻지 못한 뒤에도 인간은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가를 묻는다. Part 1의 **“나도 모르겠어. 하지만 여기 있을게”**라는 통찰과 Part 2의 종교적 대처, 영적 갈등에 대한 논의를 은희의 상실 속에 옮겼다. 치유는 모든 의심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슬픔과 분노와 질문이 있어도 삶 전체가 그것들만으로 채워지지는 않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Story 5: 일 년이 남았다면

성호는 죽는 것이 무섭지 않다고 생각했다.
정확히 말하면,
죽음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 않았다.
예순일곱 살.
회사 대표.
결혼 39년.
두 자녀.
손주 셋.
서울에 아파트가 있었고,
강원도에는 작은 별장도 있었다.
건강검진도 매년 받았다.
술은 줄였고,
담배는 20년 전에 끊었다.
친구들 가운데 벌써 몇 명이 세상을 떠났지만,
장례식장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언제나 같은 생각을 했다.
사람 인생 참 짧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출근했다.
그해 9월,
정기 건강검진을 받은 지 사흘 뒤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김성호 님 맞으시죠?”
“네.”
“검사 결과 중 추가로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 있어서요.”
성호는 사무실 창밖을 바라보았다.
“뭐가 나왔습니까?”
“전화로 정확히 말씀드리기는 어렵고요. 추가 검사를 받아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암입니까?”
상대방이 잠시 멈췄다.
“아직 그렇게 말씀드릴 단계는 아닙니다.”
그 문장이 오히려 더 무서웠다.
성호는 다음 주 목요일로 검사를 예약했다.
일주일.
겨우 일주일이었다.
그런데 병원 전화를 끊은 뒤부터
시간의 모양이 달라졌다.
그날 오후에도 회의가 있었다.
평소 같으면 직원의 보고서에서 숫자 하나가 틀린 것을 바로 지적했을 것이다.
그런데 성호는 그 숫자를 보면서 이상한 생각을 했다.
내가 정말 죽는다면 이 숫자가 중요할까?
곧 자신을 꾸짖었다.
아직 아무것도 확정된 게 아니야.
회의를 계속했다.
하지만 집중되지 않았다.
집에 돌아왔을 때 아내 미숙은 혼자 저녁을 먹고 있었다.
“왔어요?”
“응.”
“밥은?”
“먹었어.”
사실 먹지 않았다.
미숙이 말했다.
“찌개 있는데 데워줄까?”
“됐어.”
성호는 서재로 들어갔다.
문을 닫았다.
책상 서랍에서 오래된 노트를 꺼냈다.
첫 페이지에 날짜를 적었다.
그리고 그 밑에 썼다.
만약 내게 1년밖에 남지 않았다면?
한참 펜을 들고 있었다.
그러다 목록을 쓰기 시작했다.
1. 회사 정리
2. 미숙이랑 유럽 한 달
3. 아이슬란드에서 오로라 보기
4. 크루즈 여행
5. 손주들과 제주도
6. 책 한 권 쓰기
7. 포르쉐 사기
성호는 마지막 문장을 보고 웃었다.
“죽기 전에 별걸 다 하고 싶네.”
그런데 조금 재미있었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욕망들이 나타났다.
뉴욕.
스위스.
남미.
골프 여행.
좋은 와인.
비즈니스석으로 세계일주.
목록은 금방 스무 개를 넘었다.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다.
미숙은 옆에서 자고 있었다.
성호는 천장을 바라보았다.
문득 생각했다.
미숙이는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아직 모른다.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아직 확정된 것도 없는데 괜히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옆에 누워 있는 아내의 숨소리가 이상하게 크게 들렸다.
39년 동안 들었던 소리였다.
한 번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소리.
다음 날 아침,
미숙은 혼자 식탁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성호는 늘 그렇듯 커피만 들었다.
“안 먹어요?”
“시간 없어.”
“계란이라도 먹고 가.”
“됐어.”
현관으로 가다가 성호는 잠깐 멈췄다.
뒤를 돌아보았다.
미숙은 혼자 국을 먹고 있었다.
그 장면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회사에 갔다.
검사까지 6일.
성호는 인터넷에서 증상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검색하면 할수록 자신은 더 심각한 병에 걸렸다.
밤에는 생존율까지 찾아봤다.
10년 생존율.
5년 생존율.
전이.
항암.
수술.
그러다가 휴대전화를 덮었다.
정말 1년이라면?
노트를 다시 펼쳤다.
그런데 두 번째 날부터 목록이 조금 달라졌다.
동생에게 전화하기.
성호는 그 문장을 쓰고 한참 바라보았다.
동생 성진과는 4년째 거의 연락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상속 문제로 싸웠다.
돈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서로 했던 말이 문제였다.
성호는 동생이 먼저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성진도 아마 똑같이 생각했을 것이다.
성호는 노트에 적었다.
성진에게 전화하기.
그러다 옆에 괄호를 썼다.
(사과할지는 모르겠음.)
자신도 웃었다.
죽음을 생각해도 자존심은 완전히 죽지 않았다.
셋째 날,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빠, 이번 주 일요일 시간 있어?”
“왜?”
“민준이가 할아버지랑 야구장 가고 싶대.”
성호는 자동으로 대답하려 했다.
이번 주는 좀 바쁜데.
그 문장이 입까지 올라왔다.
그런데 멈췄다.
“몇 시 경기야?”
딸이 잠깐 조용해졌다.
“왜?”
“몇 시냐고.”
“두 시.”
“알았어.”
“진짜?”
성호가 웃었다.
“왜 다들 내가 약속 잡으면 놀라냐?”
딸도 웃었다.
“아빠니까.”
전화를 끊은 뒤 그 말이 조금 아팠다.
그날 밤 노트의 첫 페이지를 다시 봤다.
유럽 한 달.
오로라.
크루즈.
포르쉐.
다 좋은 일이었다.
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동생에게 전화하는 일이 더 어려웠다.
아내와 아침을 먹는 일이 더 마음에 걸렸다.
손자와 야구장에 가는 일이 더 중요하게 느껴졌다.
성호는 새로운 질문을 적었다.
내가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과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중요하게 여겨야 할 일은 같은 것일까?
검사까지 4일.
성호는 회사에서 오래된 친구의 이름을 떠올렸다.
정태.
대학 때부터 친구였다.
10년 전 둘이 함께 사업을 하려다가 크게 싸웠다.
그 뒤 연락이 끊겼다.
누가 더 잘못했는지는 이제 기억도 정확하지 않았다.
그런데 당시 했던 말 하나는 기억났다.
“너는 사람보다 돈이 먼저야.”
성호는 그 말에 화가 나서 말했다.
“너는 그래서 평생 그 모양인 거야.”
그것이 마지막 대화였다.
성호는 휴대전화를 들었다.
정태의 번호는 아직 있었다.
전화를 걸지는 못했다.
대신 메시지를 썼다.
잘 지내냐? 갑자기 생각났다.
10분 뒤 답장이 왔다.
안 죽었냐?
성호는 웃었다.
그리고 이상하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직은.
그렇게 답했다.
검사까지 3일.
성호는 처음으로 미숙과 아침을 먹었다.
거창한 일이 아니었다.
미숙이 물었다.
“오늘 회사 안 가요?”
“가.”
“근데 왜 앉았어?”
“밥 먹으려고.”
미숙이 성호를 이상하게 봤다.
“어디 아파?”
성호는 숟가락을 멈췄다.
순간 모든 것을 말할까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 말하지 않았다.
“아니.”
“진짜?”
“응.”
미숙이 국을 한 그릇 더 떠줬다.
둘은 특별한 대화를 하지 않았다.
미숙은 아파트 관리비 이야기를 했다.
세탁기가 이상한 소리를 낸다고 했다.
주말에 마트에 가야 한다고 했다.
성호는 그 이야기를 들었다.
평소라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을 이야기였다.
그날은 이상하게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검사까지 이틀.
성호는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네 번 갔다.
“여보세요?”
동생 목소리가 들렸다.
성호는 갑자기 할 말이 없어졌다.
“나다.”
“알아.”
침묵.
“잘 지내냐?”
“갑자기?”
“그냥.”
“형이 그냥 전화하는 사람이야?”
성호는 웃었다.
“아니지.”
다시 침묵.
성진이 물었다.
“무슨 일 있어?”
성호는 말하고 싶었다.
나 죽을지도 몰라.
그 말을 하면 모든 것이 쉬워질 것 같았다.
동생도 부드러워질 것이다.
그러나 성호는 말하지 않았다.
대신 말했다.
“그때 내가 심한 말 했다.”
전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뭐?”
“아버지 돌아가시고.”
“갑자기 그 얘기는 왜 해?”
“그냥 생각났어.”
성호는 손에 땀이 났다.
“미안했다.”
긴 침묵.
그리고 동생이 말했다.
“나도.”
두 글자였다.
그걸로 4년이 없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둘 사이에 아주 작은 길 하나가 다시 생겼다.
검사 전날 밤,
성호는 노트를 펼쳤다.
처음 쓴 목록을 봤다.
세계여행.
오로라.
크루즈.
포르쉐.
그 밑에는 새로운 목록이 생겨 있었다.
미숙과 아침 먹기.
성진에게 전화하기.
정태 만나기.
손주 학교 한번 데리러 가기.
아들에게 먼저 전화하기.
미숙과 바닷가 걷기.
성호는 두 목록을 오래 바라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첫 번째 목록은
죽기 전에 보고 싶은 것들이었다.
두 번째 목록은
죽기 전에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둘 다 중요했다.
하지만 같지는 않았다.
검사 당일.
병원 대기실에서 성호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어떤 사람은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보호자의 손을 잡고 있었다.
어떤 노인은 잠들어 있었다.
성호는 자신이 이곳에 있는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도,
직함도,
회사 규모도
그 의자에서는 별 의미가 없었다.
이름이 불렸다.
검사는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의사는 모니터를 보며 설명했다.
성호는 절반도 듣지 못했다.
마지막 문장만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의사가 말했다.
“걱정하셨겠지만 악성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성호는 의사를 바라보았다.
“암이 아닙니까?”
“현재 검사상으로는 아닙니다.”
“확실합니까?”
의사가 웃었다.
“추적 관찰은 하셔야 하지만, 지금 걱정하시는 그런 상황은 아닙니다.”
성호는 의자에 기대었다.
몸에서 힘이 빠졌다.
웃음이 나왔다.
“감사합니다.”
병원을 나왔다.
밖은 평범한 오후였다.
사람들이 걸어 다녔다.
택시가 지나갔다.
누군가는 커피를 들고 있었다.
성호는 미숙에게 전화했다.
이번에는 모든 것을 말했다.
미숙은 처음에는 화를 냈다.
“그걸 왜 혼자 알고 있었어?”
그러다 울었다.
“괜찮대.”
성호가 말했다.
“진짜 괜찮대.”
미숙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오늘 일찍 와.”
“그래.”
그날 저녁 가족 단톡방에는 축하 메시지가 쏟아졌다.
딸은 말했다.
아빠 이제 진짜 건강 챙겨.
아들은 말했다.
술 좀 그만 드세요.
손자는 이상한 춤을 추는 이모티콘을 보냈다.
성호는 오랜만에 마음이 가벼웠다.
밤이 되었다.
서재로 들어갔다.
책상 위에 노트가 있었다.
성호는 첫 페이지를 펼쳤다.
만약 내게 1년밖에 남지 않았다면?
한참 바라보다가 노트를 덮었다.
이제 필요 없었다.
쓰레기통에 넣으려고 했다.
손이 멈췄다.
이상한 질문이 떠올랐다.
1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을 때 중요했던 것이
왜 20년이 남았다고 생각하면 중요하지 않게 되는가?
성호는 의자에 다시 앉았다.
내일도 회사에 갈 것이다.
사업도 계속할 것이다.
회의도 할 것이다.
돈도 벌 것이다.
노후 계획도 세울 것이다.
여행도 갈 것이다.
그것들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성호는 삶을 너무 오래
나중에 제대로 살기 위한 준비기간처럼 사용하고 있었다.
조금 더 성공하면.
조금 덜 바빠지면.
은퇴하면.
시간이 생기면.
그런데 시간이 생기는 날은 오지 않았다.
시간은 항상 이미 사용되고 있었다.
성호는 노트를 다시 펼쳤다.
새 페이지에 한 문장을 썼다.
기다리고 있는 오늘도 이미 삶이다.
다음 날 아침 7시 12분.
성호는 정장을 입었다.
넥타이를 맸다.
가방을 들었다.
평소라면 부엌으로 가서 커피 한 잔을 들고 바로 나갔을 것이다.
미숙은 식탁에 혼자 앉아 있었다.
김.
계란말이.
된장국.
밥 한 그릇.
성호는 현관 쪽으로 두 걸음 갔다.
멈췄다.
뒤를 돌아보았다.
미숙이 물었다.
“왜?”
성호는 식탁으로 걸어갔다.
의자를 뺐다.
“밥 줘.”
미숙이 시계를 봤다.
“안 늦어?”
“조금.”
“회의 있다며.”
“있어.”
“그럼 가야지.”
성호가 앉았다.
“가.”
밥그릇을 앞으로 당겼다.
그리고 말했다.
“아침 먹고 갈게.”
미숙은 아무 말 없이 밥을 퍼줬다.
성호는 된장국을 먹었다.
조금 짰다.
“오늘 국 좀 짜다.”
미숙이 바로 말했다.
“그러면 먹지 마.”
성호가 웃었다.
“먹을 거야.”
“아침부터 왜 그래?”
“뭐가?”
“이상해.”
“그냥 밥 먹는 건데.”
둘은 웃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순간 성호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았다.
남은 시간이 20년인지,
10년인지,
1년인지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아내와 아침을 먹었다.
그것이면 됐다.
며칠 뒤 손자를 학교에서 데려왔다.
그다음 주에는 또 야근했다.
미숙과 약속한 산책을 한 번 잊었다.
동생과도 다시 사소한 말다툼을 했다.
회사에서는 직원에게 목소리를 높였다가 후회했다.
성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지 않았다.
죽음을 가까이 느꼈다고 해서
갑자기 현자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다시 바빠졌다.
다시 잊었다.
다시 사소한 것에 화를 냈다.
하지만 이전과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가끔 자신이 잊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면 다시 돌아왔다.
식탁으로.
전화기로.
사람에게로.
오늘로.
몇 달 뒤,
성호는 정태를 만났다.
둘은 소주를 마셨다.
처음 한 시간은 옛날 사업 이야기를 했다.
두 번째 시간에는 누가 더 잘못했는지를 또 따졌다.
세 번째 시간에는 둘 다 웃었다.
완벽한 화해는 아니었다.
그래도 헤어질 때 정태가 말했다.
“다음에는 10년 뒤에 보지 말자.”
성호가 말했다.
“그래.”
이번에는 그 말을
언젠가
라는 뜻으로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어느 토요일 아침,
미숙과 동네를 걷다가 성호가 말했다.
“우리 바다 갈까?”
“언제?”
성호는 습관처럼 말하려 했다.
나중에.
그 단어가 입 앞에서 멈췄다.
“다음 주.”
미숙이 웃었다.
“갑자기?”
“응.”
“왜?”
성호가 잠시 생각했다.
“그냥 보고 싶어서.”
“뭘?”
“바다.”
미숙이 말했다.
“바다는 안 없어져.”
성호가 웃었다.
“알아.”
잠시 뒤 덧붙였다.
“근데 우리가 언제까지 같이 볼 수 있을지는 모르잖아.”
미숙이 그의 팔을 때렸다.
“아침부터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성호는 크게 웃었다.
“알았어.”
그리고 둘은 계속 걸었다.
성호는 여전히 죽는 것이 무서웠다.
아마 마지막 순간까지 무서울 것이다.
그것이 부끄럽지는 않았다.
죽음을 의식한다는 것은
죽음을 좋아하게 되는 것이 아니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에게 죽음이 가르쳐준 것은 훨씬 작았다.
시간에는 끝이 있다는 것.
그래서 모든 것을 서둘러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모든 것을 똑같이 중요하게 여기며 살 수는 없다는 뜻이었다.
성호는 처음 노트에 적었던 버킷리스트를 버리지 않았다.
오로라도 보고 싶었다.
유럽도 가고 싶었다.
좋은 여행도 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 목록 맨 위에는 나중에 한 문장을 새로 적었다.
죽기 전에 많은 것을 하는 것보다,
살아 있는 동안 중요한 것을 중요하게 여기기.
그리고 그 밑에 아주 작게 적었다.
내일이 올 것처럼 계획하자.
다음 줄.
하지만 영원히 시간이 있는 것처럼 살지는 말자.
어느 평범한 월요일 아침,
성호는 또 아내와 식탁에 앉아 있었다.
TV에서는 뉴스가 나왔다.
미숙은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
성호는 계란말이를 먹었다.
창문으로 아침 햇빛이 들어왔다.
그 순간 특별한 깨달음은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좋았다.
삶은 언제나 거대한 깨달음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대부분은 이런 순간 속에서 지나갔다.
누군가와 밥을 먹고,
전화를 받고,
출근하고,
돌아오고,
미안하다고 말하고,
다시 싸우고,
다시 웃는 동안.
성호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잠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자신은 삶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조금 알 것 같았다.
삶은 한 번도 자신을 기다린 적이 없었다.
이미 계속되고 있었다.
상처가 있는 동안에도.
사람을 잃은 뒤에도.
신에게 답을 얻지 못한 채로도.
죽음이 두려운 채로도.
불완전한 그대로.
어쩌면 죽음은 우리에게
“서둘러라.”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훨씬 조용하게,
이렇게 말하는지도 모른다.
“우선순위를 잘못 정하지 마라.”
성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갔다 올게.”
미숙이 말했다.
“일찍 와.”
예전 같으면 말했다.
가능하면.
성호는 현관문을 열다가 돌아보았다.
“응.”
그리고 덧붙였다.
“일찍 올게.”
문이 닫혔다.
평범한 하루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제 성호는 알고 있었다.
그 평범한 하루보다
더 나중에 시작되는 진짜 삶은 없다는 것을.
기다리고 있는 오늘도, 이미 삶이기 때문이다.
원작과의 연결
이 이야기는 “인생은 짧으니 모든 것을 버리고 꿈을 좇으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이 품고 있는 삶과 죽음의 감각을 현대인의 일상으로 확장한다. Part 1의 **“기다리고 있는 오늘도 이미 삶이다”**라는 통찰과 Part 2의 죽음에 대한 실존적 질문을 성호의 일주일에 담았다. 죽음을 기억한다는 것은 삶을 서두르는 것이 아니라, 아직 곁에 있는 사람과 평범한 오늘을 덜 하찮게 여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지막 글

슬픔이 작아지는 것이 아니라, 삶이 더 커지는 것
다섯 사람의 문제는 모두 달랐습니다.
서윤은 다시 배신당할까 두려웠습니다.
현우는 어머니를 놓아주는 것이 어머니를 잊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지훈은 행복이 언제나 지금보다 조금 더 먼 곳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은희는 남편을 잃었을 뿐 아니라 자신이 믿어왔던 신에게도 질문을 던져야 했습니다.
성호는 죽음이 가까워졌다고 생각하고 나서야 자신이 계속 삶을 미래로 미루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다섯 이야기는 결국 같은 곳으로 향합니다.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는 것.
서윤의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두려움과 행동 사이에 작은 공간이 생겼습니다.
현우의 슬픔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에게 받은 사랑을 아직 살아 있는 사람에게 건넬 수 있습니다.
지훈은 다시 바빠지고 다시 잊습니다.
그러나 가끔 평범한 화요일이 얼마나 귀한지 알아차립니다.
은희는 하나님에게서 완전한 답을 얻지 못합니다.
대신 질문을 숨기지 않는 법을 배웁니다.
성호 역시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죽음을 생각하며 삶을 서두르는 대신, 중요한 것을 중요하게 여기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다섯 이야기에서 치유는 결승선이 아닙니다.
치유란 상처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처와의 관계가 달라지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슬픔도 마찬가지입니다.
슬픔이 작아지는 것이 아니라, 삶이 더 커지는 것.
삶이 커진다는 것은 과거를 지우는 것이 아닙니다.
어두운 실을 아름답다고 부르는 것도 아닙니다.
고통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었다고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하나의 어두운 실이 삶이라는 천 전체의 색을 결정하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이라는 제목도 이제 조금 다르게 읽을 수 있습니다.
상처받지 않은 척하라는 말이 아니라,
상처받았다는 사실에게 앞으로의 삶 전체를 결정할 권한까지 주지는 말라.
그리고 어쩌면 더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상처받은 자신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사랑하라.
우리는 자꾸 기다립니다.
상처가 나으면.
슬픔이 끝나면.
돈이 충분해지면.
아이들이 크면.
일이 덜 바빠지면.
신에 대한 답을 찾으면.
죽음이 덜 무서워지면.
그때 제대로 살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날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아침은 옵니다.
누군가 우리에게 전화를 합니다.
식탁에는 밥이 놓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옆방에 있습니다.
늙어가는 부모가 우리의 목소리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아주 평범한 화요일이 지나갑니다.
어쩌면 우리가 언젠가 가장 그리워하게 될 것은 바로 그런 날들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 세 부분의 긴 대화와 다섯 이야기가 마지막에 남기는 질문은 아주 단순합니다.
삶이 완전해진 뒤에 사랑할 것입니까?
아니면 불완전한 이 삶을 지금 사랑할 것입니까?
왜냐하면,
기다리고 있는 오늘도, 이미 삶이기 때문입니다.
등장인물 소개
서윤 | 「답장이 늦는 사람」
38세 출판사 편집자. 전남편의 배신 이후 새로운 사랑 앞에서도 과거의 위험을 먼저 떠올린다. 그녀의 이야기는 상처가 기억일 수는 있어도 미래의 운명일 필요는 없다는 가능성을 탐구한다.
현우 | 「엄마의 마지막 김치찌개」
52세 회사원. 어머니가 남긴 마지막 음식을 먹지 못한 채 보관한다. 그의 이야기는 사랑하는 사람을 기억하는 것과 계속 아파하는 것이 반드시 같은 일인지 묻는다.
지훈 | 「평범했던 화요일」
46세 회사원이며 두 아이의 아버지.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느라 지금의 삶을 계속 지나친다. 그의 이야기는 잃고 나서 배운 것을 아직 잃지 않은 것에게 사용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은희 | 「하나님께 화가 난 여자」
60세의 오랜 신앙인. 남편을 잃은 뒤 하나님에게 분노하지만 그 감정조차 숨기려 한다. 그녀의 이야기는 답을 얻는 믿음보다 답이 없는 곳에서도 정직하게 질문할 수 있는 믿음을 바라본다.
성호 | 「일 년이 남았다면」
67세 사업가. 심각한 병일 수 있다는 가능성과 마주한 뒤 자신의 삶을 다시 바라본다. 그의 이야기는 죽음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서두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을 중요하게 여기라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질문으로 다섯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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