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글
박경리의 『토지』는 처음에는 땅에 관한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질문은 달라집니다.
왜 인간은 땅을 잃었을 때 재산만 잃었다고 느끼지 않는가.
빼앗긴 것을 되찾으면 상처도 함께 치유되는가.
한은 기억인가, 상처인가, 정체성인가.
역사를 실제로 이어 온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리고 땅도, 가족도, 사랑하는 사람도 잃을 수 있는 인간은 왜 다시 다음 날을 살아가는가.
Part 1에서는 최서희, 김길상, 이용, 공월선, 조준구, 김환이 자신의 삶 안에서 이 질문들을 마주했습니다.
Part 2에서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납니다.
『대지』의 작가 펄 S. 벅, 『토지』 연구자 이승윤, 트라우마와 회복을 연구한 주디스 허먼, 기억과 포스트메모리를 연구한 마리안느 허시, 여성사 연구자 정현백, 기억과 서사적 정체성을 깊이 탐구한 철학자 폴 리쾨르가 평사리에 모입니다.
이들은 『토지』에 하나의 정답을 붙이려 하지 않습니다.
대신 서로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펄 벅은 왕룽과 최서희를 바라보며 묻습니다.
인간이 땅을 소유하는 것일까. 아니면 인간의 삶이 땅에 잠시 머무는 것일까.
주디스 허먼은 묻습니다.
빼앗긴 것을 되찾는 것과 잃어버린 자신을 되찾는 것은 같은가.
마리안느 허시는 묻습니다.
한 세대의 상처는 다음 세대에게 무엇으로 남는가. 기억인가, 침묵인가, 아니면 감정인가.
정현백은 역사의 시선을 바꿉니다.
왜 전쟁과 정치에는 이름이 남는데, 사람을 먹이고 키우고 돌본 이들은 생활이라는 말 속에 사라졌는가.
폴 리쾨르는 묻습니다.
과거를 잊지 않으면서도, 과거에게 미래 전체를 맡기지 않을 수 있는가.
그리고 이승윤은 마지막으로 『토지』 전체를 향해 묻습니다.
이 수많은 인물들이 지나간 뒤에도 남는 진짜 중심은 생명 자체가 아닐까.
이 대화는 땅에서 시작합니다.
그러나 결국 인간이 어떻게 상처를 기억하고, 서로를 살게 하며, 계속 살아가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향합니다.
※ 본 글은 실제 인터뷰나 실제 대화가 아니라, 주제를 이해하기 쉽게 풀어가기 위해 구성한 가상의 상상 대화입니다. 등장인물의 발언은 실제 발언이 아니며, 특정 인물의 공식 견해를 대변하지 않습니다.
Topic 1: 땅은 인간의 것인가, 인간이 땅의 것인가

평사리의 아침은 조용했다.
섬진강 위로 엷은 안개가 떠 있었고, 멀리 들판에는 아직 햇빛이 완전히 내려앉지 않았다.
낡은 나무 탁자 위에는 두 권의 책이 놓여 있었다.
박경리의 『토지』.
그리고 펄 S. 벅의 『대지』.
펄 벅이 두 책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먼저 입을 열었다.
펄 S. 벅:
“나도 땅에 관한 소설을 썼습니다. 박경리도 땅에 관한 소설을 썼고요. 그런데 정말 우리가 땅에 관해 쓴 것일까요?”
이승윤이 미소를 지었다.
이승윤:
“아마 그래서 두 작품의 제목이 그렇게 단순하면서도 무거운 것 같습니다. 『대지』와 『토지』. 제목만 보면 땅 이야기 같지만, 책을 읽고 나면 결국 인간 이야기였다는 걸 알게 되니까요.”
펄 S. 벅:
“내 소설에서 왕룽은 땅을 떠나면 불안해집니다. 돈을 벌어도, 도시로 가도, 결국 다시 땅으로 돌아가죠. 처음에는 그걸 아주 현실적인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땅이 있어야 먹고살 수 있으니까요.”
주디스 허먼:
“생존의 기반이라는 뜻이군요.”
펄 S. 벅:
“그렇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땅은 먹고사는 수단 이상이 됩니다. 왕룽에게 땅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확인하는 장소가 됩니다.”
폴 리쾨르가 『토지』의 표지를 손끝으로 가볍게 만졌다.
폴 리쾨르:
“그렇다면 질문을 조금 바꿀 수 있겠군요. 인간이 땅을 소유하는 것인지, 아니면 인간이 자기 이야기를 땅에 묶어 두는 것인지.”
이승윤:
“최서희에게는 그 문제가 더 복잡합니다. 왕룽에게 땅은 삶을 일으키는 기반에 가깝지만, 서희에게 땅은 이미 잃어버린 세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마리안느 허시:
“가족의 기억까지 포함해서요?”
이승윤:
“그렇죠. 집안, 조상, 어린 시절, 죽은 사람들, 빼앗긴 것들. 서희가 되찾으려는 것은 토지 문서에 적힌 면적만이 아닙니다.”
펄 벅이 고개를 끄덕였다.
펄 S. 벅:
“그 점에서 왕룽과 서희는 비슷하면서도 다르군요. 왕룽은 땅을 얻으며 자기 삶을 세우고, 서희는 땅을 되찾으며 무너진 삶을 다시 세우려 합니다.”
주디스 허먼:
“그 차이는 아주 중요합니다.”
모두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주디스 허먼:
“처음 얻는 것과 빼앗겼다가 되찾는 것은 심리적으로 같은 경험이 아닙니다. 서희에게 땅에는 상실 이전의 삶이 붙어 있습니다.”
정현백:
“그리고 그 상실은 개인적인 사건만도 아니죠. 그 시대에 땅을 잃는다는 것은 가족의 몰락뿐 아니라 사회 변화, 계급 관계, 식민지화 과정과도 연결됩니다.”
마리안느 허시:
“그러니까 한 사람의 기억과 한 시대의 기억이 같은 땅 안에서 겹치는군요.”
이승윤:
“그렇습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창밖에서 바람이 논 위를 지나갔다.
펄 벅이 다시 물었다.
펄 S. 벅:
“그렇다면 첫 번째 질문을 해 봅시다. 사람은 왜 땅을 잃었을 때 단순히 재산을 잃었다고 느끼지 않을까요?”
정현백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정현백:
“전근대와 근대를 거치는 한국 사회에서 땅은 경제적 자원만이 아니었습니다. 가족의 위치, 혈연, 공동체 안에서의 관계, 조상과 후손의 연결이 모두 걸려 있었죠.”
폴 리쾨르:
“그렇다면 장소가 정체성의 일부가 됩니다.”
마리안느 허시:
“저는 거기에 기억을 더하고 싶습니다. 어떤 집이나 땅은 그곳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보다 훨씬 많은 것을 품게 됩니다. 가족이 반복해서 이야기하면서 장소가 기억의 저장소가 되기 때문입니다.”
주디스 허먼:
“상실이 큰 이유도 거기에 있겠죠. 집을 잃는 순간 벽과 지붕만 잃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서는 내가 누구였는가’라는 감각까지 흔들릴 수 있습니다.”
펄 벅이 천천히 말했다.
펄 S. 벅:
“왕룽도 그랬습니다. 도시에서 굶주리며 살아갈 때도 그에게는 돌아갈 땅이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습니다. 다른 것은 다 사라져도 땅은 자기 삶이 다시 시작될 수 있는 곳이었어요.”
이승윤:
“서희에게는 반대 방향의 움직임이 보입니다. 돌아갈 곳이 있기 때문에 버티는 것이 아니라, 돌아갈 곳을 빼앗겼기 때문에 반드시 되찾으려는 힘이 생깁니다.”
폴 리쾨르:
“흥미롭군요. 한 사람에게 땅은 미래를 가능하게 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과거를 되찾게 하는 약속이 되는군요.”
주디스 허먼:
“하지만 바로 거기서 위험한 기대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펄 S. 벅:
“어떤 기대입니까?”
주디스 허먼:
“잃어버린 장소를 되찾으면, 잃어버리기 전의 자신도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입니다.”
방 안이 조용해졌다.
마리안느 허시가 『토지』 쪽으로 몸을 조금 기울였다.
마리안느 허시:
“서희가 되찾고 싶었던 것이 정말 땅이었을까요?”
이승윤:
“물론 땅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걸 상징으로만 만들어 버리면 작품을 지나치게 추상적으로 읽게 됩니다. 재산도 실제였고, 빼앗긴 것도 실제였습니다.”
정현백:
“맞습니다. 물질적인 박탈을 심리적 상징으로만 바꾸면 안 됩니다.”
이승윤:
“그런데 동시에 서희의 집착이 재산 가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도 분명합니다.”
펄 S. 벅:
“그러면 이런 질문이 가능하겠군요.”
그녀가 잠시 말을 멈췄다.
펄 S. 벅:
“서희가 되찾으려 한 것은 땅이었을까요, 아니면 땅을 빼앗기기 전의 자기 자신이었을까요?”
아무도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폴 리쾨르가 조용히 말했다.
폴 리쾨르:
“사람은 과거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마리안느 허시:
“하지만 돌아가고 싶어 할 수는 있죠.”
주디스 허먼: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그 목표를 향해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정현백:
“특히 상실이 폭력적으로 일어났다면 더 그렇습니다. 내가 선택해서 떠난 것이 아니라 빼앗겼다면, 되찾는 행위는 정의의 문제까지 됩니다.”
이승윤:
“서희에게 조준구에게 빼앗긴 땅을 되찾는 일은 단순한 재산 회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가족의 명예와 자신의 의지, 과거의 부정의를 바로잡는 일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펄 S. 벅:
“그렇다면 땅은 기억이고, 정의이고, 자기 자신이군요.”
이승윤:
“어느 하나만은 아닐 겁니다.”
펄 벅이 창밖의 들판을 바라보았다.
펄 S. 벅: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폴 리쾨르:
“무엇입니까?”
펄 S. 벅:
“왕룽은 땅을 얻을수록 더 많은 땅을 원합니다. 처음에는 생존을 위해 필요했던 것이 나중에는 소유의 욕망으로 변합니다.”
정현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현백:
“땅이 인간에게 뿌리를 주기도 하지만, 땅을 소유한다는 사실이 사람을 다른 사람 위에 서게 만들기도 합니다.”
펄 S. 벅:
“그렇습니다. 왕룽은 자신이 땅의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성공한 뒤에는 땅을 통해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 시작합니다.”
폴 리쾨르:
“그러면 ‘땅이 인간을 살린다’는 말도 아름답게만 들을 수는 없겠군요.”
이승윤:
“『토지』도 마찬가지입니다. 땅은 생명의 터전이지만 동시에 권력과 욕망과 계급 갈등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정현백:
“누가 땅을 가질 수 있었는가, 누가 남의 땅을 경작했는가, 누가 떠나야 했는가. 그런 질문을 빼고 토지를 낭만적으로 바라볼 수는 없습니다.”
마리안느 허시:
“그렇다면 장소를 사랑하는 것과 장소를 소유하려는 것은 서로 다른 감정일 수도 있겠네요.”
펄 S. 벅:
“아주 다른 감정일지도 모릅니다.”
폴 리쾨르가 두 책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폴 리쾨르:
“두 번째 질문을 해 보죠. 우리가 ‘내 땅’이라고 말할 때, 그 ‘내’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정현백:
“법적으로는 소유권이겠죠.”
폴 리쾨르:
“하지만 인간의 삶에서는?”
마리안느 허시:
“‘내가 기억하는 곳.’”
주디스 허먼:
“‘내가 안전했다고 느꼈던 곳.’ 또는 반대로, 안전을 빼앗긴 곳.”
펄 S. 벅:
“‘내 가족이 먹고살았던 곳.’”
이승윤:
“‘내가 누구인지를 형성한 곳.’”
리쾨르가 말했다.
폴 리쾨르:
“그렇다면 소유권 문서는 땅의 모든 의미를 기록하지 못합니다.”
정현백:
“그렇죠. 하지만 소유권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도 아닙니다.”
주디스 허먼:
“두 가지를 함께 봐야 합니다. 실제로 빼앗긴 물질적 권리를 인정하면서, 그 손실이 인간 내부에 남긴 흔적도 보는 것.”
펄 벅이 웃었다.
펄 S. 벅:
“왕룽이라면 아주 간단하게 말할지도 모르겠군요. ‘땅이 있어야 먹고산다.’”
이승윤:
“서희라면 조금 다르게 말할 것 같습니다.”
펄 S. 벅:
“뭐라고 할까요?”
이승윤이 잠시 생각했다.
이승윤:
“‘이 땅이 없으면 내가 누구인지 설명할 수 없다.’”
펄 벅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잠시 뒤 그녀가 세 번째 질문을 던졌다.
펄 S. 벅:
“그러면 인간이 땅을 소유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폴 리쾨르가 웃었다.
폴 리쾨르:
“사람은 몇십 년을 삽니다. 땅은 그보다 오래 남아 있죠.”
정현백:
“하지만 땅도 변합니다. 전쟁으로 경계가 바뀌고, 개발로 사라지고, 강의 흐름이 달라지고, 사람이 떠나면 황폐해집니다.”
마리안느 허시:
“그리고 한 세대가 ‘우리 집’이라고 부른 곳을 다음 세대는 전혀 알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주디스 허먼:
“그렇다면 인간과 땅의 관계는 영구적 소유보다는 일시적인 관계에 가까울지도 모르겠습니다.”
펄 벅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펄 S. 벅:
“내가 『대지』를 쓰던 때에는 인간이 땅에서 태어나고, 땅에서 먹고, 결국 땅으로 돌아간다는 감각이 매우 강했습니다.”
그녀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인간이 땅을 가진다고 말하는 것보다, 잠시 그 위에서 살아갈 기회를 받은 것이라고 보는 편이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승윤이 말했다.
이승윤:
“『토지』가 마지막까지 보여 주는 것도 비슷합니다. 사람은 끊임없이 바뀝니다. 죽고, 태어나고, 떠나고, 돌아옵니다. 집안도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납니다. 나라까지 사라졌다가 다시 생깁니다.”
폴 리쾨르:
“그런데 땅 위의 이야기는 계속되는군요.”
이승윤:
“예.”
펄 벅은 탁자 위에 손을 올렸다.
한쪽에는 『대지』가 있었다.
다른 쪽에는 『토지』가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펄 S. 벅:
“어쩌면 두 작품 모두 땅을 이야기하면서, 결국 땅을 지나가는 인간을 이야기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리안느 허시가 물었다.
마리안느 허시:
“지나간다는 표현이 중요하군요.”
펄 S. 벅:
“네. 왕룽도 지나갑니다. 서희도 지나갑니다. 우리도 지나갑니다.”
정현백이 창밖을 보았다.
멀리 한 사람이 논둑을 따라 걷고 있었다.
정현백:
“그리고 이름이 남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도요.”
잠시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그때 주디스 허먼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주디스 허먼:
“그런데 아직 하나의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펄 S. 벅:
“무엇입니까?”
허먼은 『토지』를 바라보았다.
주디스 허먼:
“만약 서희가 빼앗긴 땅을 되찾았다면, 왜 마음까지 되돌아오지는 않았을까요?”
침묵이 내려앉았다.
펄 벅이 아주 천천히 말했다.
펄 S. 벅:
“그렇군요.”
그녀는 손끝으로 책 표지를 가볍게 눌렀다.
“빼앗긴 것을 되찾으면, 상처도 치유되는가.”
그 질문은 다음 대화가 시작될 자리처럼 그들 사이에 남았다.
Topic 2: 빼앗긴 것을 되찾으면 인간은 치유되는가

평사리의 햇빛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었다.
아까까지 들판 위에 남아 있던 안개는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탁자 주위에는 첫 번째 대화가 남긴 질문이 아직 가라앉지 않고 있었다.
빼앗긴 것을 되찾으면, 상처도 치유되는가.
펄 벅이 먼저 입을 열었다.
펄 S. 벅:
“서희는 결국 빼앗긴 땅을 되찾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순간을 승리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요?”
이승윤이 잠시 생각했다.
이승윤:
“승리라고 부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완전한 회복이라고 부르기는 어렵겠죠.”
주디스 허먼:
“그 두 단어를 분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현백:
“승리와 회복이 다르다는 말입니까?”
주디스 허먼:
“네. 정의가 이루어지는 것과 마음이 치유되는 것은 같은 사건이 아닙니다.”
펄 벅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펄 S. 벅:
“하지만 정의가 없으면 치유도 어렵지 않습니까?”
주디스 허먼:
“그럴 수 있습니다. 빼앗긴 것을 돌려받는 일, 잘못을 인정받는 일, 책임을 묻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다만 그것이 모든 것을 원래대로 돌려놓지는 못합니다.”
마리안느 허시:
“특히 죽은 사람이 있다면요.”
허먼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디스 허먼:
“그렇죠.”
방 안이 조용해졌다.
이승윤이 『토지』를 펼쳤다.
이승윤:
“서희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더 분명해집니다. 그녀는 조준구에게 빼앗긴 것을 되찾기 위해 오랫동안 살아갑니다. 그 목표가 그녀를 버티게 한 것도 사실입니다.”
폴 리쾨르:
“목표가 삶의 방향을 제공한 셈이군요.”
이승윤:
“그렇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점 때문에 질문이 생깁니다.”
그가 책을 덮었다.
“목표를 이루고 나면 무엇이 남는가.”
펄 벅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펄 S. 벅:
“복수를 위해 살아온 사람이 복수를 끝낸 뒤에 마주하는 공허함.”
주디스 허먼:
“혹은 회복을 복수와 같은 것으로 생각해 온 사람이, 두 가지가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순간.”
정현백:
“서희에게 조준구는 단순히 미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 사람을 통해 가족의 몰락과 빼앗긴 땅, 어린 시절의 상실이 하나로 묶여 있었죠.”
마리안느 허시:
“그러면 조준구를 이긴다고 해서 그 모든 상실을 이기는 것은 아니군요.”
이승윤:
“바로 그 문제입니다.”
펄 벅이 조금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펄 S. 벅:
“제가 서희에게 직접 물을 수 있다면,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이 가장 되찾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리쾨르가 말했다.
폴 리쾨르:
“그리고 아마 서희 자신도 처음부터 그 답을 알지는 못했을 겁니다.”
주디스 허먼:
“사람은 종종 하나의 구체적인 목표에 상실 전체를 걸어 둡니다. 집, 돈, 재판의 승리, 가해자의 처벌. 그것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매우 중요합니다. 다만 인간의 마음은 훨씬 더 많은 것을 잃었을 수 있습니다.”
펄 S. 벅:
“어떤 것들 말입니까?”
허먼은 천천히 답했다.
주디스 허먼:
“안전하다는 감각. 세상이 어느 정도 믿을 만하다는 감각. 가족은 계속 곁에 있을 것이라는 믿음. 어린 시절의 자기 자신. 미래에 대한 자연스러운 기대.”
마리안느 허시가 말을 이었다.
마리안느 허시:
“그리고 가족의 이야기가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도요.”
정현백이 창밖을 보며 말했다.
정현백:
“서희가 잃은 것은 집 한 채가 아니었으니까요.”
펄 벅이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렸다.
펄 S. 벅:
“그렇다면 첫 번째 질문은 이것이겠군요.”
그녀가 또렷하게 말했다.
“정의를 되찾는 것과 상처가 치유되는 것은 왜 다른가?”
주디스 허먼이 바로 답하지 않았다.
잠시 후 말했다.
주디스 허먼:
“정의는 바깥에서 일어날 수 있습니다.”
폴 리쾨르:
“바깥에서?”
주디스 허먼:
“재산이 반환됩니다. 판결이 내려집니다. 가해자가 처벌받습니다. 사회가 잘못을 인정합니다. 이런 변화는 실제이고 중요합니다.”
그녀가 손을 가슴 가까이에 놓았다.
“하지만 상처는 안쪽에도 남아 있습니다.”
펄 S. 벅:
“그러면 바깥의 정의와 안쪽의 회복이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겁니까?”
주디스 허먼:
“그렇습니다. 때로는 아주 다른 속도로.”
이승윤:
“서희가 땅을 되찾았다고 해서 죽은 사람들이 돌아오지는 않습니다.”
그 말이 떨어지자 모두 조용해졌다.
펄 벅이 아주 낮게 말했다.
펄 S. 벅:
“그날 밤에도 죽은 사람들은 죽어 있었겠군요.”
이승윤:
“네.”
잠시 뒤 그가 덧붙였다.
“그날 밤에도 죽은 사람들은 죽어 있었습니다.”
그 말은 이상할 만큼 단순했고, 그래서 더 무거웠다.
정현백이 말했다.
정현백:
“그렇다고 해서 땅을 되찾은 일이 의미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주디스 허먼: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정현백:
“그 점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마음의 평화가 더 중요하니 재산이나 정의에 집착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펄 S. 벅:
“그렇군요.”
정현백:
“빼앗긴 것은 돌려받아야 합니다. 잘못은 잘못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했다고 해서 사람이 자동으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폴 리쾨르:
“정의는 과거를 바로잡으려 하지만, 시간 자체를 되돌릴 수는 없으니까요.”
마리안느 허시:
“시간이 바로 핵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펄 S. 벅:
“어떤 의미에서요?”
마리안느 허시:
“서희가 빼앗긴 순간과 되찾은 순간 사이에는 수많은 해가 있습니다. 그 사이에 사람이 달라졌습니다. 가족도 달라졌고요.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되어 같은 장소에 다시 서는 겁니다.”
리쾨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폴 리쾨르:
“그렇다면 회복은 ‘이전으로 돌아감’이 아니라 ‘이후를 살아갈 수 있게 됨’에 더 가까울 수 있겠군요.”
허먼이 그 말을 받아 말했다.
주디스 허먼:
“저도 그렇게 보고 싶습니다.”
펄 벅이 잠시 침묵한 뒤 물었다.
펄 S. 벅:
“두 번째 질문입니다. 복수는 사람을 자유롭게 할 수 있을까요?”
정현백이 한숨처럼 웃었다.
정현백:
“아주 오래된 질문이군요.”
폴 리쾨르: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질문이기도 합니다.”
주디스 허먼:
“복수하고 싶은 마음 자체를 쉽게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펄 벅이 눈썹을 올렸다.
펄 S. 벅:
“왜 그렇습니까?”
주디스 허먼:
“심각한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분노는 매우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이 일이 잘못되었다’는 감각이 분노 속에 들어 있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분노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닙니다.”
마리안느 허시:
“그럼 무엇이 문제입니까?”
주디스 허먼:
“내 삶 전체가 가해자와의 관계 속에 붙잡혀 있느냐는 겁니다.”
리쾨르가 천천히 말했다.
폴 리쾨르:
“미워하는 동안에도 우리는 그 사람에게 묶여 있을 수 있다는 말이군요.”
주디스 허먼:
“그렇습니다.”
이승윤이 서희와 조준구의 관계를 떠올리듯 말했다.
이승윤:
“서희가 조준구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당신은 땅을 빼앗았다고 생각했겠죠. 나는 세상을 빼앗겼습니다.”
펄 벅의 눈빛이 달라졌다.
펄 S. 벅:
“그 차이가 크군요.”
이승윤:
“조준구에게는 재산이었을 수 있습니다. 서희에게는 세계였습니다.”
정현백:
“그러니 서희에게 그를 이긴다는 것은 단순한 경쟁의 승리가 아니었겠죠.”
이승윤:
“네. 하지만 그를 이긴 뒤에도 그가 빼앗아 간 세계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마리안느 허시:
“그때 서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허먼이 말했다.
주디스 허먼:
“바로 거기서 회복의 다른 단계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펄 S. 벅:
“다른 단계?”
주디스 허먼:
“가해자를 중심으로 살지 않는 것.”
리쾨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폴 리쾨르:
“용서하라는 말입니까?”
허먼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주디스 허먼:
“아닙니다.”
방 안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주디스 허먼:
“회복과 용서를 같은 것으로 만들면 안 됩니다.”
정현백:
“그 점은 아주 중요하군요.”
주디스 허먼:
“피해자가 반드시 용서해야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생각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용서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용서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문제 자체를 더 이상 자기 삶의 중심에 두지 않습니다.”
펄 벅이 말했다.
펄 S. 벅:
“그러면 용서하지 않고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겁니까?”
주디스 허먼:
“그럴 수 있습니다.”
이승윤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승윤:
“서희라면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당신을 용서하지 않습니다.”
잠시 침묵.
그리고 그가 이어 말했다.
“하지만 이제 당신 때문에 살고 싶지도 않습니다.”
아무도 바로 말을 잇지 못했다.
마리안느 허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마리안느 허시:
“그 문장은 용서보다 더 강할 수도 있겠네요.”
폴 리쾨르:
“관계를 끊는 선언이니까요.”
주디스 허먼:
“정확히는 가해자가 더 이상 내 삶의 중심을 차지하지 못하게 하는 선언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정현백:
“잊어버리는 것은 아니죠?”
주디스 허먼:
“아닙니다.”
마리안느 허시:
“기억을 지우는 것도 아니고요.”
주디스 허먼:
“그렇습니다.”
리쾨르가 생각에 잠긴 얼굴로 말했다.
폴 리쾨르:
“그러면 우리가 찾는 말은 ‘잊음’이 아니라 ‘거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펄 S. 벅:
“과거와의 거리?”
폴 리쾨르:
“과거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과거가 현재의 모든 선택을 대신하지 못하게 하는 거리.”
허먼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디스 허먼:
“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덧붙였다.
“과거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과거가 더 이상 내 미래의 모든 문장을 대신 쓰지 못하게 하는 것.”
펄 벅이 그 문장을 반복했다.
펄 S. 벅:
“내 미래의 모든 문장을 대신 쓰지 못하게 한다.”
바람이 창문을 스쳤다.
멀리서 새 한 마리가 논 위로 낮게 날아갔다.
정현백이 말했다.
정현백: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개인의 상처가 사회의 상처와 연결되어 있다면요.”
마리안느 허시:
“가족의 기억으로 남기도 하고요.”
정현백:
“그렇죠. 식민지 경험, 전쟁, 이산, 계급의 상처 같은 것은 한 사람의 마음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펄 S. 벅:
“다음 세대에게 넘어간다는 뜻입니까?”
마리안느 허시:
“때로는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때로는 침묵으로 넘어갑니다.”
폴 리쾨르:
“침묵으로도?”
마리안느 허시:
“네. 가족이 어떤 일을 전혀 말하지 않아도 아이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특정한 이름을 피하고, 특정한 장소에서 분위기가 달라지고, 누군가의 사진이 서랍 안에 숨겨져 있다면요.”
주디스 허먼:
“상처는 말로만 전달되지 않습니다.”
이승윤:
“그렇다면 서희 한 사람의 상처를 넘어, 『토지』 전체에 퍼져 있는 감정으로 가야겠군요.”
펄 벅이 그를 바라보았다.
펄 S. 벅:
“어떤 감정입니까?”
이승윤은 바로 답하지 않았다.
펄 벅이 세 번째 질문을 던졌다.
“치유된다는 것은 결국 무엇을 뜻하는가?”
허먼이 손을 모았다.
주디스 허먼:
“상처가 없었던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정현백:
“잊는 것도 아니고.”
마리안느 허시:
“역사를 없애는 것도 아니고.”
폴 리쾨르:
“과거와 화해했다는 아름다운 결론을 반드시 얻는 것도 아니겠군요.”
주디스 허먼:
“네. 저는 오히려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돌아오는 것을 중요하게 봅니다.”
펄 S. 벅:
“선택?”
주디스 허먼:
“과거 때문에 자동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삶에서 내가 무엇을 할지 선택할 수 있게 되는 것.”
이승윤:
“그렇다면 서희에게 회복은 조준구를 이기는 순간보다, 조준구가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있게 되는 순간에 가까울 수도 있겠군요.”
허먼은 그 말을 듣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주디스 허먼:
“아주 중요한 차이입니다.”
펄 벅이 말했다.
펄 S. 벅:
“『대지』에서도 비슷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왕룽은 오랫동안 땅이 모든 문제의 답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땅을 많이 가져도 가족의 균열까지 막지는 못합니다.”
정현백:
“소유는 안전을 줄 수 있지만, 모든 관계를 구해 주지는 못하죠.”
펄 S. 벅: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는 두 작품이 아주 다른 문화와 역사를 다루면서도 비슷한 질문을 한다고 느낍니다.”
폴 리쾨르:
“무엇을 가졌는가보다, 그것을 통해 무엇을 되찾고 싶어 하는가.”
펄 S. 벅:
“네.”
마리안느 허시가 조용히 말했다.
마리안느 허시:
“그런데 서희가 조준구를 용서하지 않는다고 합시다.”
주디스 허먼:
“네.”
마리안느 허시:
“그렇다면 그 분노와 기억은 어디로 갑니까?”
아무도 바로 답하지 않았다.
정현백:
“사라지지는 않겠죠.”
폴 리쾨르:
“기억은 형태를 바꿀 수는 있어도, 단순히 삭제되지는 않으니까요.”
이승윤:
“아마 그 지점에서 한국어의 한이라는 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펄 벅이 고개를 들었다.
펄 S. 벅:
“한.”
이승윤:
“네.”
그는 창밖의 들판을 바라보았다.
“되찾아도 남아 있는 것.”
잠시 뒤 정현백이 말했다.
“잊지 못해서 남아 있는 것만도 아니고요.”
마리안느 허시가 물었다.
“그렇다면 한은 상처입니까? 기억입니까? 아니면 사람을 계속 살아가게 만드는 무엇입니까?”
아무도 쉽게 대답하지 않았다.
펄 벅이 『토지』 위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다음 대화의 제목처럼 한 단어를 말했다.
“한.”
그 한 단어가 다음 질문을 열었다.
Topic 3: 한은 기억인가, 상처인가, 정체성인가

평사리의 햇빛은 이제 들판 전체에 내려앉아 있었다.
아침 안개는 거의 사라졌지만, 여섯 사람의 대화에는 다른 종류의 안개가 남아 있었다.
조금 전 마리안느 허시는 물었다.
“그렇다면 한은 상처입니까? 기억입니까? 아니면 사람을 계속 살아가게 만드는 무엇입니까?”
펄 벅은 『토지』 위에 손을 올린 채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펄 S. 벅:
“제가 한이라는 말을 완전히 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승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승윤:
“그 말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펄 S. 벅:
“슬픔이라고 번역하면 부족하고, 원한이라고 해도 부족하고, 비애라고 해도 부족하겠죠?”
이승윤:
“네. 그리고 한을 하나의 감정으로만 정의하려 할수록 오히려 멀어질 수 있습니다.”
주디스 허먼:
“저는 특히 한을 곧바로 트라우마와 같은 것으로 부르는 데 조심하고 싶습니다.”
펄 S. 벅:
“둘은 다릅니까?”
주디스 허먼:
“겹치는 부분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트라우마는 특정한 심리적 경험과 반응을 설명하기 위한 개념입니다. 한은 훨씬 더 넓은 역사적, 문화적, 관계적 의미를 품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정현백:
“한에는 개인의 고통만 들어 있지 않습니다.”
그녀가 창밖을 바라보았다.
“식민지 경험, 전쟁, 가난, 계급, 가족, 여성의 삶, 이루지 못한 사랑, 억울함, 기다림, 떠나지 못한 마음. 그런 것들이 서로 분리되지 않은 채 쌓이기도 합니다.”
마리안느 허시:
“그렇다면 한은 한 사람이 혼자 만들어 낸 감정이라고만 보기는 어렵겠군요.”
이승윤:
“그렇습니다. 어떤 한은 한 사람의 생애보다 오래 남기도 하니까요.”
펄 벅이 물었다.
“그렇다면 첫 번째 질문입니다. 한은 개인의 상처입니까, 역사가 개인 안에 남은 흔적입니까?”
정현백이 먼저 대답했다.
정현백:
“둘 중 하나로 고르기 어렵습니다.”
폴 리쾨르:
“왜 그렇습니까?”
정현백:
“역사는 언제나 추상적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라가 식민지가 되었다는 문장은 역사책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그 역사적 사건은 실제 사람의 집을 잃게 하고, 가족을 흩어지게 하고, 누군가를 감옥에 보내고, 어떤 여성을 평생 기다리게 합니다.”
마리안느 허시:
“큰 역사가 개인의 몸과 가족 안으로 들어오는군요.”
정현백:
“그렇죠.”
이승윤:
“『토지』가 강한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역사를 사건 목록으로 보여 주지 않습니다. 역사가 한 사람의 결혼에 들어오고, 밥상에 들어오고, 사랑에 들어오고, 땅에 들어옵니다.”
펄 S. 벅:
“그 점에서는 『대지』와도 닮았습니다.”
이승윤:
“어떤 점에서요?”
펄 S. 벅:
“전쟁이나 기근이 왕룽에게는 정치적 사건으로 먼저 오지 않습니다. 먹을 것이 사라지고, 가족이 굶고, 땅을 떠나야 하는 경험으로 옵니다.”
정현백:
“맞습니다. 역사란 많은 사람에게 그렇게 옵니다.”
주디스 허먼:
“그리고 그런 경험은 사건이 끝났다고 해서 바로 끝나지 않습니다.”
폴 리쾨르:
“사건은 끝나도 그 사건이 만든 시간은 계속된다는 뜻입니까?”
주디스 허먼: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마리안느 허시가 조용히 말했다.
마리안느 허시:
“저는 여기서 세대의 문제를 생각하고 싶습니다.”
펄 S. 벅:
“다음 세대 말입니까?”
마리안느 허시:
“네. 어떤 사람은 직접 전쟁을 경험하지 않았습니다. 식민지 시기를 살지도 않았습니다. 가족이 쫓겨나는 장면을 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그 사건들이 자기 삶 안에 깊이 들어와 있을 수 있습니다.”
정현백:
“가족 이야기 때문입니까?”
마리안느 허시:
“이야기뿐만은 아닙니다.”
그녀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사진. 침묵. 반복되는 이야기. 말하지 않는 이름. 가족이 특정한 장소를 피하는 방식. 어떤 질문을 했을 때 갑자기 어른들의 얼굴이 굳어지는 순간.”
폴 리쾨르:
“말하지 않은 것도 기억이 될 수 있다는 말이군요.”
마리안느 허시:
“그렇습니다.”
주디스 허먼:
“아이들은 가족의 감정적 분위기를 배우기도 합니다. 정확한 사건을 몰라도요.”
펄 S. 벅:
“그러면 다음 세대는 자기 것이 아닌 기억을 가지고 살 수도 있습니까?”
마리안느 허시:
“정확히 같은 기억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전 세대의 경험이 이미지와 이야기와 감정을 통해 이후 세대의 정체성을 구성할 수는 있습니다.”
이승윤:
“한도 그런 방식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요?”
허시는 잠시 생각했다.
마리안느 허시:
“저는 한이라는 개념 전체를 제 연구 용어로 설명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가족의 고통이 다음 세대의 삶을 구성하는 방식은 분명 존재합니다.”
펄 벅이 책상 위에 놓인 두 책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펄 S. 벅:
“그렇다면 기억을 이어 주는 것은 좋은 일입니까?”
아무도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폴 리쾨르:
“기억에는 의무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특히 부정의가 있었을 때, 잊지 않는 것은 중요합니다.”
정현백:
“그렇지만 기억이 어떤 형태로 전달되는지도 중요하겠죠.”
펄 S. 벅:
“무슨 뜻입니까?”
정현백이 말했다.
정현백:
“아이에게 ‘이 일이 있었다’고 가르치는 것과 ‘그러니 너도 저 사람들을 미워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닙니다.”
마리안느 허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리안느 허시:
“바로 그 차이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기억하는 것과 미워하도록 가르치는 것은 다릅니다.”
방 안이 조용해졌다.
펄 벅이 그 말을 다시 되뇌었다.
펄 S. 벅:
“기억하는 것과 미워하도록 가르치는 것은 다르다.”
폴 리쾨르가 손을 모았다.
폴 리쾨르:
“그렇다면 두 번째 질문을 해 봅시다.”
“우리는 과거를 잊지 않으면서도, 과거에게 미래를 맡기지 않을 수 있는가?”
주디스 허먼이 말했다.
주디스 허먼:
“가능해야 합니다.”
펄 S. 벅:
“가능해야 한다?”
주디스 허먼:
“그렇지 않으면 피해를 입은 세대뿐 아니라 그 다음 세대까지 계속 가해자의 영향 아래 살게 됩니다.”
마리안느 허시:
“하지만 ‘이제 미래를 살아라’라는 말이 기억을 버리라는 압력으로 사용될 수도 있습니다.”
정현백:
“한국 역사에서는 특히 조심해야 할 문제입니다.”
펄 S. 벅:
“왜 그렇습니까?”
정현백:
“상처를 말하는 사람에게 너무 빨리 ‘이제 잊자’고 하면, 그것은 화해가 아니라 침묵을 요구하는 말이 될 수 있으니까요.”
폴 리쾨르:
“그렇다면 기억과 해방을 반대말로 만들어서는 안 되겠군요.”
마리안느 허시:
“네.”
주디스 허먼:
“기억하면서도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승윤:
“『토지』의 인물들에게도 그런 차이가 있을 것 같습니다.”
펄 S. 벅:
“어떤 차이입니까?”
이승윤:
“상처를 품고 사는 것과, 상처에 붙잡혀 사는 것.”
그가 한 번 더 또렷하게 말했다.
“품고 사는 것과 붙잡혀 사는 것은 다릅니다.”
펄 벅이 고개를 숙이고 잠시 생각했다.
펄 S. 벅:
“그 차이를 실제 삶에서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주디스 허먼:
“쉽지 않습니다.”
마리안느 허시:
“기억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붙잡혀 있다고 할 수는 없겠죠.”
주디스 허먼:
“그렇습니다. 자주 생각한다고 해서 반드시 병적인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 기억이 현재의 삶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입니다.”
폴 리쾨르:
“현재를 대신 살아 버리는가.”
주디스 허먼:
“네.”
정현백:
“그리고 다음 세대의 선택까지 대신하려 하는가.”
마리안느 허시:
“그것도 중요합니다.”
펄 벅이 말했다.
펄 S. 벅:
“그렇다면 이런 표현은 어떨까요.”
그녀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기억하되, 거기서 살지는 않는 것.”
마리안느 허시가 미소를 지었다.
마리안느 허시:
“좋은 표현입니다.”
폴 리쾨르:
“과거를 지우지 않지만, 과거를 현재의 주소로 만들지도 않는다는 뜻이군요.”
잠시 후 이승윤이 말했다.
이승윤:
“하지만 한을 이야기할 때 우리가 빠지기 쉬운 다른 위험도 있습니다.”
펄 S. 벅:
“어떤 위험입니까?”
이승윤:
“한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인이 강해졌다고 너무 쉽게 말하는 겁니다.”
주디스 허먼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주디스 허먼:
“그 점은 아주 중요합니다.”
정현백:
“저도 동의합니다.”
펄 S. 벅:
“왜 위험합니까?”
주디스 허먼:
“고통이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고 말하기 시작하면, 고통 자체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기 쉽습니다.”
정현백:
“식민지 지배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강해졌다고 말한다면, 어느 순간 식민지 지배가 우리에게 필요했던 것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마리안느 허시:
“전쟁도 마찬가지겠군요.”
정현백:
“그렇습니다.”
주디스 허먼:
“어떤 사람은 고통 속에서 새로운 힘을 발견합니다. 어떤 사람은 평생 깊은 상처를 입습니다. 어떤 사람은 살아남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통을 성장의 도구처럼 이야기하면 안 됩니다.”
방 안이 오래 조용했다.
펄 벅이 천천히 말했다.
펄 S. 벅:
“그러면 한이 사람을 살게 했다는 말도 조심해야겠군요.”
이승윤:
“네.”
펄 S. 벅:
“하지만 『토지』의 인물들은 그렇게 많은 것을 견디고도 계속 살아갑니다.”
이승윤:
“그렇기 때문에 질문을 바꾸는 편이 좋습니다.”
펄 S. 벅:
“어떻게요?”
이승윤은 창밖의 논을 바라보았다.
이승윤:
“한이 사람을 살게 한 것이 아니라…”
잠시 말을 멈췄다.
“한을 가지고도 살아가려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고.”
허먼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주디스 허먼:
“그 차이는 큽니다.”
마리안느 허시:
“고통에게 공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돌리는 것이니까요.”
정현백:
“그리고 살아남지 못한 사람을 약한 사람으로 만들지도 않고요.”
펄 벅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세 번째 질문을 꺼냈다.
“한이 정체성의 일부라면, 그것을 내려놓는 순간 우리는 자신을 배신하는 것일까?”
폴 리쾨르가 먼저 말했다.
폴 리쾨르:
“사람은 자기 과거와 동일하지 않습니다.”
펄 S. 벅:
“조금 더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폴 리쾨르:
“나는 내가 겪은 일들로 구성되지만, 그 일들의 합계만은 아닙니다. 인간의 정체성은 계속 이야기되고 수정됩니다.”
마리안느 허시:
“그렇다면 가족에게 물려받은 기억도 나의 일부일 수 있지만, 나의 전부는 아니겠군요.”
폴 리쾨르:
“그렇습니다.”
정현백:
“그런데 역사적 기억을 내려놓는다는 표현은 조금 조심하고 싶습니다.”
펄 S. 벅:
“왜요?”
정현백:
“무엇을 내려놓는 것인지 분명해야 하니까요. 사실을 내려놓는 것인지, 책임을 내려놓는 것인지, 미움을 내려놓는 것인지 서로 다릅니다.”
주디스 허먼:
“아주 중요한 구별입니다.”
마리안느 허시:
“기억을 보존하면서도, 그 기억이 요구하는 감정까지 그대로 물려줄 필요는 없습니다.”
이승윤:
“결국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넘길 것인가의 문제가 되겠군요.”
펄 벅이 말했다.
펄 S. 벅:
“그렇다면 부모가 아이에게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네요.”
그녀는 잠시 생각했다.
“이것은 우리 가족에게 일어난 일이다.”
“잊지 말아라.”
“하지만 네가 누구를 사랑할지, 누구와 친구가 될지, 네 미래를 어떻게 만들지는 네가 선택해라.”
마리안느 허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리안느 허시:
“그것이 가능하다면 기억은 짐만이 아니라 관계가 될 수도 있습니다.”
폴 리쾨르:
“죽은 사람과 산 사람 사이의 관계.”
정현백:
“과거와 미래 사이의 관계.”
주디스 허먼:
“다만 그 관계가 명령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승윤이 말했다.
이승윤:
“『토지』의 언어로 말하면 이런 문장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가 천천히 말했다.
“우리의 한을 아이의 운명으로 만들지 않는 것.”
아무도 바로 말을 잇지 않았다.
멀리서 누군가가 논두렁을 따라 걸어가고 있었다.
바구니를 든 나이 든 여자였다.
조금 뒤 다른 여자가 집 앞에서 빨래를 널었다.
누군가는 아기를 업고 있었다.
정현백이 창밖을 바라보다 말했다.
정현백:
“한에 대해 이야기하면 한 가지 문제가 더 생깁니다.”
펄 S. 벅:
“어떤 문제입니까?”
정현백:
“누가 그 한을 실제로 살아 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펄 S. 벅:
“누가?”
정현백은 창밖을 가리켰다.
정현백:
“역사책에 이름이 남은 사람들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마리안느 허시가 말했다.
마리안느 허시:
“오히려 이름이 남지 않은 사람이 훨씬 많았겠죠.”
정현백:
“남자들이 전쟁과 정치와 독립운동으로 기록될 때, 집에서 아이를 키우고, 밥을 하고, 아픈 사람을 돌보고, 기다리고, 가족을 이어 간 사람들은 무엇으로 기록되었을까요?”
펄 S. 벅:
“생활.”
정현백:
“그렇죠.”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전쟁은 역사라고 부르면서, 사람을 먹이고 살린 일은 왜 생활이라고만 불렀을까요?”
펄 벅의 시선이 창밖의 여성에게 머물렀다.
그녀는 자신의 소설 속 오란을 떠올리는 듯했다.
펄 S. 벅:
“그 질문은 제가 오랫동안 생각해 온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승윤이 말했다.
이승윤:
“『토지』에도 그런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정현백:
“그렇다면 다음에는 그 사람들을 봐야겠군요.”
펄 S. 벅:
“역사에 이름이 남지 않은 사람들.”
정현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음 대화의 문을 여는 듯 물었다.
“역사는 정말 누가 만들었을까요?”
Topic 4: 역사에서 보이지 않았던 사람들은 누구인가

평사리의 들판에는 이제 사람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논두렁을 따라 걷는 노인.
마당에서 채소를 다듬는 여자.
아이 손을 잡고 우물가로 가는 젊은 어머니.
멀리서는 누군가 장작을 쌓고 있었다.
정현백이 한참 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정현백:
“저 사람들의 이름을 우리는 알까요?”
아무도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펄 벅이 창밖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펄 S. 벅:
“대부분은 모르겠죠.”
정현백:
“그렇죠.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폴 리쾨르:
“무엇이 말입니까?”
정현백:
“전쟁을 시작한 사람의 이름은 남습니다. 법을 만든 사람의 이름도 남습니다. 왕과 장군과 정치가의 이름도 남죠. 그런데 전쟁이 끝난 뒤 사람들을 먹인 사람의 이름은 거의 남지 않습니다.”
마리안느 허시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리안느 허시:
“아이를 살린 사람, 병든 사람을 돌본 사람, 집을 다시 일으킨 사람도요.”
정현백:
“네.”
펄 벅이 조용히 말했다.
펄 S. 벅:
“제 소설의 오란도 생각나는군요.”
이승윤:
“『토지』의 공월선도 그렇습니다.”
펄 S. 벅:
“그들은 역사책의 중심에 서지는 않지만, 누군가의 삶에서는 중심이었겠죠.”
정현백이 말했다.
정현백:
“그게 오늘 우리가 봐야 할 문제입니다.”
펄 벅이 첫 번째 질문을 꺼냈다.
“왜 싸운 사람은 역사에 들어가고, 사람을 살게 한 사람은 생활로 남는가?”
정현백이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뒤 말했다.
정현백:
“역사는 오랫동안 큰 사건을 중심으로 기록되어 왔습니다.”
폴 리쾨르:
“큰 사건이라는 건 무엇입니까?”
정현백:
“전쟁, 정권 변화, 혁명, 조약, 독립운동, 경제 위기 같은 것들이죠.”
펄 S. 벅:
“날짜를 붙일 수 있는 것들.”
정현백:
“맞습니다. 시작과 끝을 비교적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일들.”
마리안느 허시:
“밥을 짓는 일에는 시작일과 종료일이 없으니까요.”
정현백:
“그렇죠.”
주디스 허먼:
“누군가를 돌보는 일도 비슷합니다. 한 번의 극적인 사건보다 매일 반복되는 행위에 가깝습니다.”
이승윤:
“그래서 기록하기 어렵고, 기록하더라도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취급되기 쉽습니다.”
펄 벅이 미소를 지었다.
펄 S. 벅:
“그런데 사람은 매일 먹어야 합니다.”
정현백:
“바로 그겁니다.”
창밖에서 한 여자가 큰 대야에 채소를 씻고 있었다.
펄 벅이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펄 S. 벅:
“전쟁은 몇 년에 시작했는지 적을 수 있습니다. 누가 지휘했는지도 적을 수 있고요.”
그녀가 손을 들었다.
“하지만 어느 여자가 어느 날 새벽에 일어나 열 명의 아이에게 죽을 끓였는지는 기록되지 않습니다.”
주디스 허먼:
“그 죽이 없었다면 그 아이들 중 누군가는 살아남지 못했을 수도 있는데도요.”
정현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현백:
“그래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일’의 기준 자체를 다시 봐야 합니다.”
폴 리쾨르:
“우리가 큰 것과 작은 것을 잘못 나누어 온 것일 수도 있겠군요.”
정현백:
“네.”
이승윤이 『토지』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이승윤:
“『토지』에는 아주 많은 사람이 나옵니다. 700명에 이를 정도로 수많은 인물이 얽혀 있죠.”
펄 S. 벅:
“그 많은 사람을 통해 박경리가 무엇을 보여 준다고 생각합니까?”
이승윤:
“역사는 한 사람의 영웅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 같습니다.”
정현백:
“그리고 한 종류의 노동으로도 완성되지 않죠.”
이승윤:
“맞습니다. 누군가는 싸우고,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남고, 누군가는 농사를 짓고, 누군가는 장사를 하고, 누군가는 아이를 키웁니다.”
마리안느 허시:
“그 모든 것이 함께 있을 때 공동체가 이어집니다.”
펄 벅이 두 번째 질문을 꺼냈다.
“먹이고, 키우고, 돌보고, 기다리는 것도 역사인가?”
주디스 허먼이 먼저 말했다.
주디스 허먼:
“저는 그렇다고 봅니다.”
폴 리쾨르:
“어떤 의미에서요?”
주디스 허먼:
“사람의 삶을 유지시키는 행위라는 점에서요.”
정현백:
“특히 여성의 노동이 오랫동안 그런 식으로 보이지 않게 처리되어 왔습니다.”
펄 S. 벅:
“보이지 않게?”
정현백:
“가족을 먹이고, 아이를 키우고, 병든 사람을 돌보고, 남편이나 자식을 기다리고, 집을 유지하는 일은 중요하지 않은 일이어서가 아니라 너무 당연한 일처럼 취급되었기 때문에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마리안느 허시:
“당연하다고 여겨진 일이 실제로는 공동체를 유지한 핵심이었는데요.”
정현백:
“그렇습니다.”
펄 벅이 조용히 말했다.
펄 S. 벅:
“오란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방 안이 잠시 조용해졌다.
펄 S. 벅:
“사람들은 왕룽의 성공을 볼 때 땅을 봅니다. 하지만 그 집이 처음부터 무너지지 않고 버틴 데에는 오란의 노동이 있었습니다.”
정현백:
“공월선도 비슷하게 볼 수 있습니다.”
이승윤:
“공월선을 이용과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만으로 기억한다면 그녀를 너무 작게 만드는 겁니다.”
마리안느 허시:
“그녀가 사랑한 것과 그녀가 살아낸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니까요.”
이승윤:
“그렇습니다.”
펄 벅이 천천히 말했다.
펄 S. 벅:
“오란을 단지 왕룽의 아내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하군요.”
정현백:
“바로 그 문제입니다.”
폴 리쾨르가 말했다.
폴 리쾨르:
“그렇다면 역사라는 것은 이름을 남기는 문제라기보다, 관계를 유지하는 문제로도 볼 수 있겠군요.”
정현백:
“네.”
주디스 허먼:
“사람이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만든 사람들.”
펄 벅이 그 말을 듣고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펄 S. 벅:
“그러면 역사에 던질 질문도 바꿔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모두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펄 S. 벅:
“‘누가 역사에 이름을 남겼는가’가 아니라…”
그녀가 창밖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누가 사람들이 다음 날까지 살아 있게 했는가.”
그 말이 방 안에 오래 남았다.
정현백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현백:
“그 질문이라면 역사책에 들어갈 사람의 수가 엄청나게 많아지겠네요.”
펄 S. 벅: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정현백:
“아마도요.”
마리안느 허시가 말했다.
마리안느 허시:
“기억도 비슷합니다. 가족에게는 역사책보다 다른 사람이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펄 S. 벅:
“예를 들면요?”
마리안느 허시:
“매일 도시락을 싸 준 어머니. 겨울마다 장작을 해 온 할아버지. 전쟁 중 아이들을 숨긴 이웃. 그 사람들은 국가의 기억에서는 작을 수 있지만 가족의 기억에서는 중심입니다.”
폴 리쾨르:
“큰 역사와 작은 역사를 나누는 기준 자체가 흔들리는군요.”
마리안느 허시:
“네.”
정현백이 세 번째 질문을 꺼냈다.
“그렇다면 『토지』의 진짜 주인공은 영웅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인가?”
이승윤이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조금 뒤 말했다.
이승윤:
“저는 ‘진짜 주인공’이라는 표현에는 조금 조심하고 싶습니다.”
펄 S. 벅:
“왜 그렇습니까?”
이승윤:
“『토지』가 한 사람에게 의미를 모으지 않으려는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폴 리쾨르:
“서희도 아니고, 길상도 아니고?”
이승윤:
“둘 다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둘만으로 작품을 설명하면 『토지』가 작아집니다.”
정현백:
“평범한 사람들 전체가 주인공이라고 하면 어떨까요?”
이승윤이 잠시 생각했다.
이승윤:
“그 표현은 가깝습니다.”
펄 S. 벅:
“하지만?”
이승윤:
“사람들도 결국 지나갑니다.”
방 안이 잠시 조용해졌다.
펄 벅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논두렁을 걷던 노인은 어느새 보이지 않았다.
채소를 씻던 여자도 집 안으로 들어갔다.
펄 S. 벅:
“사람도 지나간다.”
이승윤:
“네.”
폴 리쾨르:
“공동체도 사라질 수 있습니다.”
마리안느 허시:
“기억도 사라질 수 있고요.”
정현백:
“이름은 더 쉽게 사라집니다.”
펄 벅은 오랫동안 들판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말했다.
펄 S. 벅:
“중국 농촌에서도 그런 것을 많이 봤습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사람이 죽습니다.”
“집이 무너집니다.”
“전쟁이 옵니다.”
“가난이 옵니다.”
“그런데 어느 아침이 되면 누군가는 또 밥을 합니다.”
“누군가는 밭으로 갑니다.”
“아이가 태어납니다.”
“누군가는 사랑하고, 울고, 일합니다.”
그녀는 이승윤을 바라보았다.
펄 S. 벅:
“그렇다면 사람이 아니라면 무엇이 주인공일까요?”
이승윤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긴 침묵 뒤에 말했다.
이승윤:
“생명일지도 모릅니다.”
주디스 허먼이 그 말을 듣고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주디스 허먼:
“다만 여기서 한 가지는 꼭 조심했으면 합니다.”
펄 S. 벅:
“무엇입니까?”
주디스 허먼:
“‘생명은 계속된다’는 말을 너무 아름답게 만들지 않는 겁니다.”
정현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디스 허먼:
“계속되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완전히 무너진 사람도 있고요. 어떤 사람에게는 다시 일어나는 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마리안느 허시:
“삶이 계속된다고 말하면서, 살아남지 못한 사람을 지워서는 안 되겠군요.”
주디스 허먼:
“맞습니다.”
이승윤:
“그렇다면 ‘생명은 언제나 승리한다’고 말할 수는 없겠네요.”
주디스 허먼:
“저는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펄 S. 벅:
“그럼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요?”
허먼은 잠시 생각했다.
주디스 허먼:
“어떤 생명은 계속되려고 합니다.”
방 안이 다시 조용해졌다.
멀리서 아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조금 뒤 누군가 그 아이를 달래는 목소리도 들렸다.
정현백이 말했다.
정현백:
“어쩌면 우리가 지금까지 본 모든 것이 그 질문으로 모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펄 S. 벅:
“어떤 질문이요?”
정현백은 창밖을 보았다.
정현백:
“땅도 빼앗깁니다.”
“가족도 사라집니다.”
“나라도 잃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도 떠납니다.”
“역사에 이름조차 남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도 사람은 왜 다음 날 다시 일어날까요?”
아무도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펄 벅은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주디스 허먼은 창밖의 길을 바라보았다.
마리안느 허시는 오래된 집의 문을 바라보았다.
폴 리쾨르는 눈을 감고 있었다.
이승윤은 『토지』의 표지를 바라보았다.
잠시 뒤 펄 벅이 아주 조용히 말했다.
“모든 것을 잃어도, 인간은 왜 살아가는가.”
그 질문이 마지막 대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Topic 5: 모든 것을 잃어도 인간은 왜 살아가는가

※ 아래 대화는 각 인물의 저술과 연구 분야에서 영감을 받아 구성한 가상의 문학적 대화입니다. 실제 발언이나 인용이 아닙니다.
평사리에는 어느새 오후의 빛이 내려앉고 있었다.
논은 바람에 따라 한쪽으로 누웠다가 다시 일어났다.
멀리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조금 뒤 누군가 아이를 달래는 목소리가 따라왔다.
조금 전 정현백이 물었다.
“모든 것을 잃어도, 인간은 왜 다음 날 다시 일어나는가.”
펄 벅은 오래도록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다 아주 조용히 말했다.
펄 S. 벅:
“사실 저는 이 질문에 아름다운 답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주디스 허먼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주디스 허먼:
“저도 그렇습니다.”
마리안느 허시:
“사랑 때문이라고 말하기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모두 잃은 사람도 있으니까요.”
정현백:
“희망 때문이라고 말하기에도, 희망을 느끼지 못하면서 살아간 사람도 있고요.”
폴 리쾨르:
“책임 때문이라고 하기에도, 책임질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이승윤이 말했다.
이승윤:
“그렇다면 질문을 조금 다르게 봐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펄 S. 벅:
“어떻게요?”
이승윤:
“사람은 매일 아침 ‘왜 살아야 하지?’라는 질문에 답한 뒤에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펄 벅이 그 말을 듣고 미소를 지었다.
펄 S. 벅:
“그렇군요.”
이승윤:
“어떤 날은 이유를 몰라도 일어납니다.”
주디스 허먼:
“어떤 날은 물을 마십니다.”
마리안느 허시:
“창문을 엽니다.”
정현백:
“아이에게 밥을 줍니다.”
폴 리쾨르:
“누군가의 이름을 부릅니다.”
펄 벅이 천천히 말했다.
펄 S. 벅:
“그리고 그렇게 하루가 시작되는군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펄 벅이 첫 번째 질문을 꺼냈다.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것은 사랑인가, 희망인가, 책임인가, 한인가, 아니면 생명 그 자체인가?”
이승윤이 웃었다.
이승윤:
“하나를 고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펄 S. 벅:
“그래도 하나씩 생각해 보죠.”
그녀가 자신의 소설을 바라보았다.
펄 S. 벅:
“예전의 저라면 땅이라고 말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정현백:
“왕룽처럼요?”
펄 S. 벅:
“네. 왕룽은 땅으로 돌아가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땅이 있으면 먹고살 수 있고, 가족을 유지할 수 있으니까요.”
그녀가 잠시 말을 멈췄다.
“하지만 사람은 땅을 잃고도 살아갑니다.”
이승윤:
“서희도 결국 땅을 되찾았지만, 그녀를 살아가게 한 것이 오직 땅뿐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겠죠.”
마리안느 허시:
“그녀에게는 죽은 사람들의 기억도 있었습니다.”
주디스 허먼:
“분노도 있었고요.”
정현백:
“책임도 있었습니다.”
폴 리쾨르:
“미래도 있었고.”
펄 벅이 허먼에게 물었다.
펄 S. 벅:
“책임은 사람을 살게 할 수 있습니까?”
주디스 허먼:
“그럴 수 있습니다.”
펄 S. 벅:
“사랑과 비슷한 겁니까?”
주디스 허먼: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정현백:
“그 차이가 중요합니다.”
주디스 허먼:
“어떤 사람은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어떤 사람은 사랑을 느낄 여유조차 없지만 아이를 먹여야 하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마리안느 허시: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무 지쳐서 감정을 느끼기 어려울 수도 있고요.”
주디스 허먼:
“그렇죠.”
펄 S. 벅:
“그런 날에도 삶은 계속됩니다.”
주디스 허먼:
“네.”
폴 리쾨르가 말했다.
폴 리쾨르:
“기억도 사람을 붙들어 줄 수 있습니다.”
마리안느 허시:
“하지만 동시에 짓누를 수도 있습니다.”
폴 리쾨르:
“그렇습니다.”
펄 S. 벅:
“그럼 한은 어떻습니까?”
이승윤이 바로 대답했다.
이승윤:
“한이 사람을 살게 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펄 S. 벅:
“Topic 3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요.”
이승윤:
“네. 한은 어떤 사람에게는 힘의 방향이 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무거운 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주디스 허먼:
“그리고 어떤 사람을 무너뜨릴 수도 있습니다.”
정현백:
“그러니 한을 생존의 비밀처럼 말하면 안 되겠죠.”
이승윤:
“그렇습니다.”
그는 잠시 생각했다.
“한이 사람을 살린 것이 아니라, 한을 안고도 살아가려는 사람이 있었던 겁니다.”
펄 벅이 그 말을 천천히 받아들였다.
펄 S. 벅:
“그렇다면 결국 사람 안에 무언가가 있는 걸까요?”
이승윤:
“저는 그걸 생명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주디스 허먼이 곧바로 말했다.
주디스 허먼:
“다만 그 말도 조심해야 합니다.”
이승윤:
“왜요?”
주디스 허먼:
“생명력이 있다는 말을 너무 쉽게 하면, 견디지 못한 사람을 약한 사람처럼 만들 수 있으니까요.”
정현백:
“살아남지 못한 사람이 생명력이 부족했던 것은 아니죠.”
주디스 허먼:
“그렇습니다.”
마리안느 허시:
“그럼 생명이라는 말을 어떻게 써야 할까요?”
허먼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주디스 허먼:
“아마도 인간에게는 이유를 설명하기 전에 움직이는 것이 있다는 정도로요.”
펄 S. 벅:
“이유보다 먼저 움직이는 것.”
주디스 허먼:
“네.”
폴 리쾨르:
“씨앗이 왜 싹을 틔우는지 설명하지 않고 싹을 틔우는 것처럼?”
펄 벅이 작게 웃었다.
펄 S. 벅:
“그 비유는 마음에 드네요.”
바깥에서 바람이 불었다.
논 끝에서 한 아이가 달리기 시작했다.
아이는 몇 번이나 넘어질 듯 휘청거리면서도 계속 달렸다.
펄 벅이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펄 S. 벅:
“어쩌면 삶이라는 것은 거대한 결심보다 작은 행동들의 연속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디스 허먼: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펄 S. 벅:
“일어난다.”
“물을 마신다.”
“밥을 만든다.”
“누군가에게 대답한다.”
“문을 연다.”
마리안느 허시:
“누군가의 사진을 다시 본다.”
정현백:
“장사를 다시 연다.”
폴 리쾨르:
“오늘의 문장을 하나 더 쓴다.”
이승윤이 말했다.
이승윤:
“생명은 거창한 선언보다 그런 데서 더 잘 보일지도 모르겠네요.”
펄 벅이 두 번째 질문을 꺼냈다.
“고통은 인간을 강하게 만드는가, 아니면 인간은 고통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가?”
주디스 허먼이 바로 말했다.
주디스 허먼:
“저는 두 번째 표현을 더 선호합니다.”
펄 S. 벅:
“고통에도 불구하고.”
주디스 허먼:
“네.”
정현백:
“식민지 지배가 한국인을 강하게 만들었다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마리안느 허시:
“전쟁이 사람들에게 필요했다고 말하고 싶지도 않고요.”
주디스 허먼:
“심한 고통은 사람을 파괴할 수 있습니다. 관계를 무너뜨리고, 몸을 아프게 하고,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까지 가져갈 수 있습니다.”
펄 S. 벅:
“그런데 우리는 고통을 이겨 낸 사람을 보면 자꾸 ‘그 고통 때문에 강해졌다’고 말합니다.”
주디스 허먼:
“그 사람이 강해진 것은 사실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통이 필요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폴 리쾨르가 조용히 말했다.
폴 리쾨르:
“여기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군요.”
펄 S. 벅:
“어떤 차이입니까?”
폴 리쾨르:
“‘이 고통에는 원래 의미가 있었다’고 말하는 것과, ‘이 고통 이후에 내가 의미를 만들었다’고 말하는 것의 차이입니다.”
주디스 허먼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디스 허먼:
“아주 큰 차이입니다.”
정현백이 말했다.
정현백:
“우리는 오란을 보고 ‘고생했기 때문에 위대한 여자가 되었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펄 벅이 오래 말이 없었다.
그러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펄 S. 벅:
“그렇습니다.”
정현백:
“공월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승윤:
“서희도요.”
펄 S. 벅:
“그들의 고통을 빼앗아 갈 수 있었다면, 차라리 없었어야 했겠죠.”
주디스 허먼:
“네.”
펄 S. 벅:
“그렇다면 우리가 귀하게 봐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이승윤이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말했다.
이승윤:
“고통이 있었는데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생명.”
아무도 바로 말을 잇지 않았다.
주디스 허먼이 천천히 덧붙였다.
주디스 허먼:
“그리고 사라진 사람들을 약했다고 부르지 않는 것.”
해가 조금씩 기울기 시작했다.
논 위의 빛이 금빛으로 바뀌었다.
펄 벅이 세 번째 질문을 꺼냈다.
“그렇다면 『토지』의 마지막 주인공은 결국 생명인가?”
이승윤이 웃었다.
이승윤:
“아주 큰 질문이네요.”
펄 S. 벅:
“Topic 4에서 당신이 먼저 말했습니다.”
이승윤:
“그렇죠.”
펄 S. 벅:
“서희도 지나갑니다. 길상도 지나갑니다. 월선도 지나갑니다. 조준구도 지나갑니다. 그렇다면 그들을 모두 지나면서 남는 것은 생명이라는 뜻입니까?”
이승윤은 대답하기 전에 잠시 생각했다.
이승윤:
“그렇게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리안느 허시:
“그런데 ‘생명’을 너무 추상적인 말로 만들면 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요?”
이승윤:
“맞습니다.”
폴 리쾨르:
“생명은 누군가의 실제 삶 속에서 나타나니까요.”
이승윤:
“서희의 방식으로 나타나고, 길상의 방식으로 나타나고, 월선의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펄 벅이 장난스럽게 물었다.
펄 S. 벅:
“조준구의 방식으로도요?”
잠시 침묵.
이승윤이 씁쓸하게 웃었다.
이승윤:
“불편하지만,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정현백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정현백:
“그 말은 조금 설명해야겠네요.”
이승윤:
“생명 그 자체가 도덕적으로 선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펄 S. 벅:
“살아 있으려는 욕망도 다른 사람을 해칠 수 있으니까요.”
이승윤:
“그렇습니다.”
폴 리쾨르:
“살아가는 것과 잘 살아가는 것은 다른 문제군요.”
이승윤:
“네.”
정현백이 말했다.
정현백:
“그렇다면 박경리의 생명사상을 단순히 ‘살아남아라’라고 읽어서는 안 되겠네요.”
이승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정현백:
“사람은 혼자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니까요.”
마리안느 허시:
“가족과도 연결되어 있고.”
주디스 허먼:
“공동체와도 연결되어 있고.”
펄 S. 벅:
“땅과도 연결되어 있고.”
폴 리쾨르:
“죽은 사람들의 기억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승윤이 말했다.
이승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단지 생존이 아니라, 다른 생명을 짓밟지 않으면서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펄 벅이 고개를 끄덕였다.
펄 S. 벅:
“조준구도 살고 싶어 했습니다.”
정현백:
“하지만 다른 사람을 밀어내면서 살려고 했죠.”
이승윤:
“그래서 생명이라는 말에는 관계가 함께 들어가야 합니다.”
펄 벅이 두 책을 다시 바라보았다.
『대지』.
『토지』.
그녀가 말했다.
펄 S. 벅:
“Topic 1에서 우리는 인간이 땅을 소유하는지, 땅이 인간을 소유하는지 물었습니다.”
폴 리쾨르:
“기억합니다.”
펄 S. 벅:
“지금은 둘 다 조금 틀린 질문처럼 느껴집니다.”
마리안느 허시:
“왜요?”
펄 벅은 창밖의 들판을 바라보았다.
펄 S. 벅:
“인간이 땅을 영원히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땅이 인간을 소유한다고 말하기도 이상합니다.”
잠시 멈췄다.
“서로 잠시 만나는 것이겠죠.”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펄 S. 벅:
“인간과 땅이 잠시 만납니다.”
“사람과 사람이 잠시 만납니다.”
“한 세대와 다음 세대가 잠시 만납니다.”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기억도 잠시 만납니다.”
폴 리쾨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폴 리쾨르:
“그리고 결국 헤어집니다.”
펄 S. 벅:
“네.”
마리안느 허시가 조용히 물었다.
마리안느 허시:
“그러면 죽은 사람들은 어디에 남습니까?”
펄 벅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승윤도 바로 말하지 않았다.
폴 리쾨르가 입을 열었다.
폴 리쾨르:
“기억 속에 남을 수 있습니다.”
마리안느 허시:
“하지만 기억도 언젠가는 사라질 수 있죠.”
폴 리쾨르:
“그렇습니다.”
주디스 허먼:
“그래서 생명이 계속된다는 말을 할 때, 죽은 사람들을 지우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현백:
“이름도 남지 못한 사람들도요.”
마리안느 허시:
“살아남지 못한 사람들도.”
이승윤이 말했다.
이승윤:
“생명이 계속된다는 것은 그들이 중요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폴 리쾨르:
“그리고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은 사람을 대신해서 평생 고통받아야 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마리안느 허시가 그를 바라보았다.
마리안느 허시:
“기억하면서도 살아가야 한다.”
폴 리쾨르:
“네.”
펄 벅은 잠시 생각하다가 모두에게 물었다.
펄 S. 벅:
“만약 여러분이 서희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할 수 있다면 무엇을 묻겠습니까?”
정현백이 말했다.
정현백:
“당신이 끝까지 지키고 싶었던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마리안느 허시가 말했다.
마리안느 허시:
“당신은 아이들에게 무엇을 기억하게 하고, 무엇은 넘겨주고 싶지 않았습니까.”
주디스 허먼이 말했다.
주디스 허먼:
“당신이 조준구 없는 삶을 처음 상상한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폴 리쾨르가 말했다.
폴 리쾨르:
“당신의 과거가 더 이상 당신의 미래 전체를 결정하지 않는다고 느낀 순간이 있었습니까.”
이승윤은 잠시 침묵했다.
이승윤:
“저라면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다시 같은 삶을 살겠습니까?”
방 안이 조용해졌다.
펄 벅이 얼굴을 찌푸렸다.
펄 S. 벅:
“저는 그 질문에는 조금 조심하고 싶습니다.”
주디스 허먼:
“저도요.”
이승윤:
“왜요?”
주디스 허먼:
“고통을 겪은 사람에게 ‘그래도 그 삶을 다시 선택하겠습니까?’라고 묻는 것은, 그 고통까지 긍정해야 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마리안느 허시:
“사람은 자기 삶을 사랑하면서도, 그 안에서 일어난 끔찍한 일들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정현백:
“그렇다고 그 삶이 가치 없었던 것도 아니고요.”
이승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승윤:
“그렇군요.”
펄 벅이 말했다.
펄 S. 벅:
“오란에게도 같은 질문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모두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펄 S. 벅:
“그녀가 고통받았기 때문에 위대했던 것이 아닙니다.”
잠시 후 조용히 덧붙였다.
“그녀가 살았기 때문에 그 삶이 중요했던 겁니다.”
이승윤이 그 말을 받아 말했다.
이승윤:
“삶의 가치는 고통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살았다는 사실에서 나옵니다.”
햇빛이 더욱 낮아졌다.
펄 벅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 마당 끝으로 걸어갔다.
바닥의 흙을 조금 집어 손바닥 위에 올렸다.
나머지 사람들도 조용히 바라보았다.
펄 S. 벅:
“처음에는 인간이 땅을 가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손바닥의 흙을 바라보았다.
“그다음에는 땅이 인간을 가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조금씩 손가락을 폈다.
흙이 손 사이로 떨어졌다.
“지금은 어느 쪽도 아닌 것 같습니다.”
흙이 다시 땅으로 돌아갔다.
“잠시 만나는 것이겠죠.”
이승윤도 밖으로 나왔다.
이승윤:
“『토지』에서는 집안이 무너집니다.”
“다시 일어섭니다.”
“사람이 태어납니다.”
“사람이 죽습니다.”
“사랑합니다.”
“배신합니다.”
“떠납니다.”
“돌아옵니다.”
“나라를 잃습니다.”
“그리고 해방을 맞습니다.”
정현백이 말했다.
정현백:
“그런데 해방이 왔다고 모든 문제가 끝난 것도 아니죠.”
이승윤:
“그렇습니다.”
펄 벅이 『토지』와 『대지』를 돌아보았다.
펄 S. 벅:
“그러고 보면 두 제목 모두 결국 같은 것을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마리안느 허시:
“무엇을요?”
펄 벅이 말했다.
“땅 위를 지나가는 생명.”
한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멀리서 밥 짓는 연기가 올라왔다.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가 웃었다.
평범한 저녁이 시작되고 있었다.
펄 벅이 마지막으로 물었다.
펄 S. 벅:
“결국 인간은 왜 살아가는 걸까요?”
이승윤이 바로 답하지 않았다.
그는 저녁빛이 내려앉는 들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이승윤:
“꼭 이유가 있어서만은 아닐 겁니다.”
잠시 멈췄다.
“살아 있기 때문에 살아가는 날도 있습니다.”
주디스 허먼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디스 허먼:
“어떤 날은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마리안느 허시가 말했다.
마리안느 허시:
“기억하면서.”
정현백이 말했다.
정현백:
“서로를 살아 있게 하면서.”
폴 리쾨르가 말했다.
폴 리쾨르: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계속하면서.”
펄 벅은 땅을 바라보았다.
손바닥에는 이제 흙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웃었다.
해가 산 너머로 내려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누군가는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아이를 씻기고 있었다.
누군가는 오늘도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누군가는 잃어버린 사람을 기억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아무 이유도 찾지 못한 채 내일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토지』의 이야기는 끝날 수 있다.
하지만 땅 위의 생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마지막 글

다섯 번의 대화는 하나의 긴 흐름을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땅을 이야기했습니다.
왕룽에게 땅은 생존과 상승의 기반이었습니다.
최서희에게 땅은 훨씬 더 복잡했습니다.
가족.
기억.
상실.
정의.
그리고 빼앗기기 전의 자기 자신.
그래서 첫 번째 질문은 자연스럽게 두 번째 질문으로 이어졌습니다.
빼앗긴 것을 되찾으면 인간도 되돌아오는가.
답은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서희는 땅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수는 없습니다.
잃어버린 어린 시절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날 밤에도 죽은 사람들은 죽어 있습니다.
여기서 Part 2는 중요한 구별을 만들었습니다.
정의와 복수는 같지 않습니다.
복수와 회복도 같지 않습니다.
용서와 자유 역시 같은 말이 아닙니다.
빼앗긴 것을 돌려받는 일은 중요합니다.
잘못을 잘못이라고 말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회복은 과거가 사라지는 순간이 아닙니다.
오히려,
과거가 더 이상 내 미래의 모든 문장을 대신 쓰지 못하게 되는 것.
그것이 회복에 더 가까울 수 있습니다.
그 질문은 곧 한으로 이어졌습니다.
한을 단순히 슬픔이나 원망이나 트라우마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었습니다.
개인의 상처와 가족의 기억.
역사적 폭력과 침묵.
사랑과 기다림.
억울함과 분노가 서로 겹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차이가 나타났습니다.
기억하는 것과 미워하도록 가르치는 것은 다릅니다.
과거를 기억해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음 세대가 반드시 같은 증오를 물려받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한을 아이의 운명으로 만들지 않는 것.
그것은 기억을 버리는 일이 아닙니다.
기억이 다음 세대의 선택을 대신하지 못하게 하는 일입니다.
Part 2는 또 하나의 위험을 피했습니다.
고통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
한이 사람을 살렸다고 말하면, 고통 자체에 의미를 부여할 위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고통은 사람을 파괴하기도 합니다.
전쟁도, 식민지 지배도, 폭력도 사람에게 필요했던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대화는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한이 사람을 살린 것이 아니다.
한을 안고도 살아가려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가 존중해야 하는 것은 고통 자체가 아니라,
고통이 있었는데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생명입니다.
그리고 살아남지 못한 사람을 약했다고 부르지 않는 것입니다.
Topic 4에서는 역사 자체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었습니다.
전쟁을 일으킨 사람의 이름은 남습니다.
정치를 바꾼 사람의 이름도 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밥을 해 준 사람.
아이를 키운 사람.
병자를 돌본 사람.
기다린 사람.
가족을 이어 간 사람의 이름은 쉽게 사라집니다.
그래서 펄 벅은 역사에 대한 질문을 바꿉니다.
“누가 역사에 이름을 남겼는가”가 아니라
“누가 사람들이 다음 날까지 살아 있게 했는가.”
그 질문은 오란을 다시 보게 합니다.
공월선을 다시 보게 합니다.
그리고 『토지』의 수많은 이름 없는 사람들을 다시 보게 합니다.
마지막 Topic 5에서는 모든 질문이 하나로 모였습니다.
모든 것을 잃어도 인간은 왜 살아가는가.
사랑 때문이라고만 할 수 없었습니다.
희망 때문이라고도 할 수 없었습니다.
책임, 기억, 한만으로도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유를 찾기 전에 먼저 일어납니다.
물을 마십니다.
문을 엽니다.
밥을 합니다.
아이에게 대답합니다.
누군가의 이름을 부릅니다.
삶은 때로 거대한 결심보다 그런 작은 행동 속에서 계속됩니다.
그래서 Part 2는 하나의 조심스러운 답에 도달했습니다.
생명.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생명은 단순한 생존 본능이 아닙니다.
조준구 역시 살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짓밟으며 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생명사상은 단순히 살아남는 문제가 아닙니다.
다른 생명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
그리고 마지막에는 땅의 의미도 달라졌습니다.
처음에는 인간이 땅을 소유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음에는 땅이 인간을 품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펄 벅은 다른 생각에 도달합니다.
인간과 땅은 서로를 영원히 소유하지 않는다.
잠시 만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과 사람도 잠시 만납니다.
세대와 세대도 잠시 만납니다.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의 기억도 잠시 만납니다.
그리고 헤어집니다.
그렇다고 그 만남이 의미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펄 벅의 손에서 흙이 다시 땅으로 떨어집니다.
『대지』와 『토지』는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를 그리고 있지만, 마지막에는 비슷한 것을 바라봅니다.
땅 위를 지나가는 생명.
그래서 Part 2의 마지막 질문은 처음의 질문과 조금 달라집니다.
처음에는 물었습니다.
왜 인간은 살아가는가.
그러나 다섯 번의 대화를 지나고 나면 더 중요한 질문이 남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서로를 어떻게 살아 있게 할 것인가.
Short Bios:
펄 S. 벅
미국 소설가이자 『대지』의 작가. 중국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농민, 가족, 가난, 여성, 전통과 변화, 인간과 땅의 관계를 작품 속에 담았습니다. 1938년 노벨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이번 대화에서는 『대지』의 왕룽과 오란을 『토지』의 인물들과 비교하며 땅과 생명의 의미를 묻습니다.
이승윤
박경리 『토지』의 서사 구조와 생명사상을 연구해 온 한국문학 연구자. 『토지』의 수많은 인물이 만들어 내는 다성적 구조와 인간, 공동체, 자연의 관계를 중심으로 작품을 읽습니다. 이번 대화에서는 『토지』의 중심을 한 인물에 한정하지 않고 생명이라는 더 큰 질문으로 연결합니다.
주디스 허먼
트라우마와 회복에 관한 연구로 잘 알려진 정신의학자. 폭력 이후의 안전, 기억, 선택, 관계 회복 문제를 탐구해 왔습니다. 이번 대화에서는 정의와 회복, 복수와 자유, 용서와 치유를 구별하며, 고통을 미화하지 않는 시각을 제시합니다.
마리안느 허시
문학과 문화, 기억 연구를 해 온 학자. 특히 이전 세대의 경험이 사진, 이야기, 침묵, 가족 감정을 통해 다음 세대에 전달되는 현상을 설명하는 포스트메모리 개념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번 대화에서는 한과 역사적 기억이 세대를 넘어 어떻게 남는지를 묻습니다.
정현백
한국의 역사학자이자 여성사 연구자. 여성, 가족, 민족주의, 사회운동, 역사에서 보이지 않았던 사람들의 삶을 연구해 왔습니다. 이번 대화에서는 전쟁과 정치만이 아니라 먹이고, 돌보고, 기다리고, 가족을 이어 온 행위 또한 역사로 보아야 하는지 묻습니다.
폴 리쾨르
프랑스 철학자. 기억, 망각, 용서, 역사, 서사적 정체성에 관한 깊은 사유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번 대화에서는 인간이 과거를 기억하면서도 그 과거가 미래 전체를 결정하지 않도록 할 수 있는지를 탐구합니다.
이 글의 대화는 실제 대담이 아닙니다. 각 인물의 저술, 연구 분야, 공개적으로 알려진 사상과 『토지』의 주제를 바탕으로 구성한 가상의 문학적 대화입니다. 대화 속 문장은 실제 발언이나 직접 인용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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