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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대표하는 작가 10인이 말하는 인간, 가족, 사회, 그리고 미래

April 6, 2026 by Leave a Comment

프로그램 소개

오늘은 한국문학의 깊은 결을 함께 만나는, 조금 특별한 시간입니다.

오랫동안 사랑받아 왔고, 많은 독자들의 마음속에 깊이 남아 있는 열 명의 작가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한강, 신경숙, 김영하, 박완서, 황석영, 조남주, 김훈, 윤흥길, 천선란, 공지영.

살아온 시대도 다르고, 문장의 결도 다르고, 바라보는 인간의 모습도 서로 다릅니다.
그런데도 이 작가들의 작품 속에는 한국이라는 사회가 지나온 시간, 가족의 온기와 답답함, 말로 다 하지 못한 상처, 외로움의 무게, 그리고 끝내 사람을 놓지 않으려는 마음이 함께 흐르고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는 다섯 가지 질문을 따라 이야기를 나누어보려 합니다.

사람은 왜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가.
고독과 불안, 상처를 사람은 어떻게 끌어안고 살아가는가.
가족은 사람을 지키는가, 아니면 묶어두는가.
사회는 사람을 키우는가, 아니면 상처 입히는가.
그리고 미래의 독자에게 단 한 작품만 남긴다면, 무엇을 쓰고 싶은가.

이 시간은 단순한 문학 대담이 아닙니다.
사람이 어디에서 다치고, 어디에서 버티고, 무엇을 품은 채 살아가는지를, 서로 다른 작가들의 말로 천천히 들여다보는 시간입니다.

정답은 아마 쉽게 하나로 모이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말들에 더 오래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다른 목소리들이 오갈 때마다, 우리는 한국문학이 오래 붙잡아온 질문들뿐 아니라, 자기 안에 오래 남아 있던 감정과 기억에도 조금씩 가까워질 수 있을지 모릅니다.

오늘의 이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자기 안의 상처를 함부로 지나치지 않는 시간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가족과 사회를 조금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 시간이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한국문학을 더 깊이 읽고 싶어지는 첫 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디스클레이머

※ 본 글은 실제 대화를 기록한 것이 아닌,
사회 문제를 다양한 관점에서 탐구하기 위한 가상의 대화 형식 콘텐츠입니다.
등장 인물의 발언은 실제 견해와 다를 수 있으며,
특정 인물이나 단체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습니다.


Table of Contents
프로그램 소개
주제 1 - 사람은 왜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가
주제 2 - 고독과 불안, 상처를 사람은 어떻게 끌어안고 살아가는가
주제 3 - 가족은 사람을 지키는가, 아니면 묶어두는가
주제 4 - 사회는 사람을 키우는가, 아니면 상처 입히는가
주제 5 - 미래의 독자에게 단 한 작품만 남긴다면, 무엇을 쓰겠는가
마지막 맺는 글

주제 1 - 사람은 왜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가

사람은 왜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가

유희열
오늘 이 자리에 모인 분들을 보고 있자니, 이미 하나의 문학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첫 번째 질문은 가장 뿌리 쪽에서 시작해 보고 싶습니다.
사람은 왜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가.
쓰지 않아도 살아갈 수는 있을 텐데, 그럼에도 결국 쓰게 되는 이유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먼저 그 이야기부터 들어보고 싶습니다.

김이나
글을 쓰는 이유라는 건, 예쁘게 정리하려고 하면 얼마든지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실제로는 훨씬 절실하고, 훨씬 사적이고, 또 쉽게 설명되지 않는 무엇일 수도 있겠죠.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어서인지, 아니면 자기 안에서 도저히 잠재울 수 없어서인지.
오늘은 그 ‘말이 되기 전의 무언가’까지 함께 들어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한강 작가님부터 말씀해 주시겠어요?

1. 쓰는 일은, 상처를 언어로 옮기는 일인가

한강
저에게 쓰는 일은, 보이지 않는 고통에 손을 대보려는 일에 가깝습니다.
사람 안에는 밖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상처가 있지요.
말이 되지 않는 괴로움,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침묵, 이미 무너져버린 것의 흔적 같은 것들요.
그런 것들에 닿으려고 할 때 저는 자꾸 글이라는 형식으로 가게 됩니다.

치유하려고 쓰느냐고 묻는다면,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먼저는 거기에 분명 어떤 고통이 있었다는 사실을, 없었던 일처럼 지나가게 두지 않기 위해 쓰는 것 같습니다.

유희열
없었던 일로 만들지 않기 위해 쓴다.
굉장히 조용한 말인데도, 힘이 크네요.

신경숙
저는 조금 더 생활 가까운 데서 시작되는 것 같아요.
사람은 살아가면서 너무 많은 감정을 삼키고 지나가잖아요.
가족에 대한 마음, 어머니에 대한 마음, 딸로서 끝내 하지 못했던 말, 사랑했지만 닿지 못했던 마음 같은 것들요.
그런 감정들은 바쁜 하루하루 속에서 금방 지나가 버리기 쉽죠.

그런데 글을 쓸 때만은, 그렇게 지나가 버린 감정들을 다시 손바닥 위에 올려놓을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잊혀진 감정들을 다시 불러오기 위해 글을 쓰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이나
그 ‘다시 불러온다’는 감각이 참 한국문학답게 느껴져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고 지나온 것들을 다시 데리러 가는 느낌이 있네요.

박완서
저는 인간의 삶 속에 숨어 있는 상처와 우스움 같은 것들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어요.
큰 역사도 있지만, 부엌의 공기, 가족 사이의 침묵, 이웃과 부딪히는 피로, 여자들의 한숨, 그런 작은 생활의 장면들 안에도 인간의 진실이 아주 많이 들어 있거든요.
제가 쓰지 않고는 못 견디는 건, 그 진실이 너무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거기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놀라지 않는 얼굴을 하고 있는데, 사실은 아주 깊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죠. 저는 그걸 쓰고 싶었습니다.

2. 쓰는 일은, 나를 구하는 일인가 사회를 바라보는 일인가

유희열
여기서 조금 넓혀보고 싶습니다.
쓰는 일은 나 자신을 위한 일인지, 아니면 사회를 향한 일인지.
이 부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황석영
둘 중 하나로만 나누기는 어렵겠지요.
사람은 사회 바깥에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니까요.
시대의 압력, 정치, 가난, 폭력, 역사적 상처 같은 것들은 결국 개인의 내면 안으로 들어옵니다.

그러니 개인을 쓴다는 것은 사회를 쓰는 일이기도 하고, 사회를 쓴다는 것은 개인을 쓰는 일이기도 합니다.
저는 늘 그 떼어낼 수 없음 속에서 써왔던 것 같습니다.
쓰지 않고는 못 견디는 건, 내 안에까지 밀고 들어온 시대의 무게를 그냥 받아들이고만 있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공지영
저는 사람이 사람답게 대접받지 못하는 장면을 보면 그냥 지나치기 어렵습니다.
상처받은 사람, 낮춰진 사람, 밀려난 사람, 목소리가 있어도 닿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는 그걸 단지 ‘소재’처럼 볼 수가 없어요.
제가 쓰는 건 정의를 말하려는 것이라기보다, 그 사람의 아픔을 독자 가까이까지 데려오고 싶어서인 것 같습니다.
멀리 있는 일로 그냥 두고 싶지 않은 마음, 그 마음이 저를 책상 앞에 앉히는 것 같아요.

조남주
저는 사회 안에서 너무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에 자꾸 걸립니다.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규칙, 무의식적인 기대, 설명되지 않은 불공정 같은 것들요.
모두가 그걸 평범하다고 말할수록, 정말 그런가 하고 자꾸 다시 보게 돼요.

쓰는 일은 어쩌면 그런 ‘당연함’에 작은 금을 내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을 단번에 바꾸지는 못하겠죠.
하지만 읽는 사람이 한 번쯤 멈춰 서게는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김영하
저는 조금 다른 입구에서 말하자면, 일단은 ‘재미있다’는 감각이 굉장히 중요해요.
이 사람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 관계는 어디서 비틀어졌을까, 이 침묵 뒤에는 뭐가 있을까.
그런 질문들이 자꾸 궁금해집니다.

그런데 그렇게 깊이 파고들다 보면 결국 시대나 사회를 만나게 되더라고요.
개인적인 것처럼 보였던 것이 사실은 굉장히 사회적인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쓰는 이유의 입구는 호기심일지 몰라도, 출구에 가면 결국 인간과 시대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3. 쓰는 일은, 하지 못했던 말을 대신 하는 일인가

김이나
한국 작가분들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하지 못했던 말’이라는 표현이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어요.
실제로 쓰는 일은, 평소에는 하지 못했던 말을 하기 위한 자리이기도 할까요?

김훈
저는 쓰는 일이 침묵에 형체를 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많은 말을 하지만, 정작 무거운 것들은 입안에서 그냥 사라져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죽음, 상실, 패배, 책임 같은 것들은 쉽게 말해지지 않지요.

그래서 문장에는 무게가 필요합니다.
말하지 못했던 것을 값싼 말로 흘려보내지 않고, 제대로 버텨낼 수 있는 문장으로 써야 합니다.
저에게 글을 쓴다는 건, 말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는 문장을 찾아가는 일입니다.

윤흥길
저는 사람이 오랫동안 품고 살아온 기억을 쓰고 싶었습니다.
시대가 바뀌면 사람들은 빨리 다음으로 건너가고 싶어 하지요.
되새기고 싶지 않은 일도 있고, 잊는 편이 더 편한 일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잊은 척한다고 해서 기억이 사라지는 건 아니더군요.
형태를 바꾸어 오래 남습니다.
제가 쓰지 않고는 못 견디는 건, 그렇게 남아 있는 것들이 지금의 삶을 여전히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천선란
저는 조금 밝은 쪽에서 말해보자면, 쓰는 일은 ‘우리가 아직 이렇게 살아볼 수도 있지 않을까’를 시험해보는 일이기도 해요.
현실에서는 사람들끼리 금방 포기하기도 하고, 끝내 말을 못 하기도 하고, 관계를 닫아버리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이야기 안에서는 조금 다른 대화를 시도해볼 수 있어요.
조금 더 다정한 관계를 상상해볼 수도 있고, 조금 더 이상한 사람이 있어도 괜찮은 세계를 만들 수도 있고요.

그래서 저는 현실에서 하지 못한 말을 대신 하는 것만이 아니라, 현실에 아직 오지 않은 다정함을 먼저 써보고 싶은 것 같아요.

유희열
그 말 참 좋네요.
기록하는 데서 멈추는 게 아니라, 인간의 가능성을 먼저 써보는 일이라는 느낌이 있어요.

4. 쓰는 사람은, 괴로워서 쓰는 건가

유희열
여기서는 조금 솔직한 이야기를 여쭙고 싶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결국 괴로워서 쓰는 걸까요.
상처가 있어서 쓰는 건지, 아니면 그것만은 아닌 건지 궁금합니다.

한강
괴로움은 분명 출발점이 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괴롭다고 해서 바로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괴로움 자체는 아직 형체를 갖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쓰는 일은 오히려 그 윤곽을 조용히 확인해보는 일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무엇이 부서졌는지, 무엇이 남아 있는지, 무엇을 끝내 바라보아야 하는지.
그걸 확인하는 시간이 제게는 필요합니다.

김영하
저는 괴로움만으로는 오래 못 쓴다고 생각해요.
분명 시작점에는 상처나 위화감이 있을 때가 많죠.
그런데 거기에 어떤 흥미가 없으면 끝까지 못 가는 것 같아요.

재미라고 해서 가벼운 뜻은 아닙니다.
복잡한 인간을 들여다보는 재미, 잘 모르겠는 것에 가까이 가는 재미, 문장이 딱 맞아떨어졌을 때 오는 감각 같은 것들요.
그런 게 있으니까 쓰는 일이 괴롭기만 한 채로 끝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신경숙
저는 괴로움만이 아니라, 그리움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 사람, 계절, 가족의 공기 같은 것들요.
이미 지나가 버린 것을 그냥 잃어버린 채로 두고 싶지 않을 때, 쓰고 싶어집니다.

그러니 글쓰기에는 슬픔과 함께 애정도 들어 있는 것 같아요.
괴로워서 쓴다, 그 말만으로는 조금 모자랄지도 모르겠습니다.

박완서
맞아요.
인간을 보고 있으면 화도 나고, 기가 막히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데, 또 어딘가 우습고, 끝내 미워할 수만은 없거든요.
저는 그 전부를 쓰고 싶었습니다.
괴로움만 있었다면 이렇게 오래 인간을 써오지는 못했을 거예요.

결국은, 사람을 완전히 싫어할 수 없어서 쓰는 거겠지요.

김이나
지금 그 말씀, 참 오래 남을 것 같아요.
사람을 끝내 싫어할 수 없어서 쓴다.
이건 오늘 대화 전체의 중심이 될 수도 있겠네요.

5. 쓰지 않아도 되는 삶이 있다 해도, 그래도 쓰겠는가

유희열
마지막으로 조금 짓궂은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만약 글을 쓰지 않아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삶이 있었다면, 그래도 여러분은 쓰셨을까요?

황석영
아마 썼을 겁니다.
시대를 산다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의 이야기를 짊어지는 일이니까요.
그걸 본 사람은 완전히 침묵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공지영
저도 쓸 것 같습니다.
사람의 아픔을 보고도 “나는 상관없습니다” 하는 얼굴로는 있기 어려워서요.

조남주
저도 아마 쓰겠지요.
사회 안의 이상함을 한 번 보고 나면, 그걸 내 안에만 두고 있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천선란
저도 쓸 것 같아요.
사람들이 조금 더 다정하게 연결될 수 있는 장면을 상상하는 걸 좋아하니까요.

김훈
저도 쓸 겁니다.
말로 옮기지 않으면 내 안에서 흐릿하게 무너져버리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윤흥길
쓰겠지요.
기억이라는 건 그대로 두면 가라앉는데, 가라앉게 둘 수 없는 것들도 있으니까요.

신경숙
저도 쓸 것 같습니다.
떠나간 사람들을 다시 만나볼 수 있는 길이, 제게는 쓰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김영하
저도 쓸 것 같아요.
결국 저는 인간이라는 게 뭔지 생각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생각만 하는 것보다 써보는 편이 훨씬 재밌고요.

한강
저도 쓸 것 같습니다.
말이 되지 않는 것에 가까이 가보려는 그 시간이, 제게는 꼭 필요하니까요.

박완서
네, 저도 쓰겠지요.
살아가는 동안 벌어지는 작은 진실들을 못 본 척하기는 어렵거든요.

유희열
결국 다들, 쓰는 일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하는 거군요.

김이나
벗어나지 못한다기보다, 그게 이미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이 되어버린 것 같아요.
글쓰기라는 게 직업인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세상을 보는 눈 자체가 되는 거겠지요.

6. 진행자 정리

유희열
오늘 첫 번째 주제만으로도 꽤 깊은 데까지 왔습니다.
쓴다는 건 나를 드러내기 위한 일이기보다, 없었던 일처럼 지워진 고통을 남기기 위한 일이고, 잊힌 감정을 다시 불러오는 일이고, 사회 안의 너무 당연한 것들에 작은 금을 내는 일이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습니다.

김이나
제게 가장 오래 남는 건, 쓰는 이유가 하나가 아니라는 점이었어요.
상처, 기억, 애정, 분노, 호기심, 위화감, 다정함에 대한 바람.
입구는 다 다르지만, 결국 모든 말 속에 공통으로 흐르는 것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건 아마, 인간 안에서 아직 말이 되지 못한 것을 그냥 지나가게 두지 않으려는 마음 이겠지요.

유희열
다음 주제에서는, 그렇게 아직 말이 되지 못한 고통 그 자체에 조금 더 가까이 가보면 좋겠습니다.
이어서 나눌 이야기는,
주제 2 ‘고독과 불안, 상처를 사람은 어떻게 끌어안고 살아가는가’ 입니다.

주제 2 - 고독과 불안, 상처를 사람은 어떻게 끌어안고 살아가는가

고독과 불안, 상처를 사람은 어떻게 끌어안고 살아가는가

유희열
주제 1에서는 왜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지, 그 아주 깊은 뿌리 쪽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번에는 조금 더 사람의 안쪽으로 들어가 보고 싶습니다.
고독과 불안, 상처를 사람은 어떻게 끌어안고 살아가는가.
이건 작가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을 사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겠지요.

김이나
한국문학에는 그냥 “외롭다”, “힘들다”로는 다 담기지 않는 감정이 있는 것 같아요.
말로 다 못 한 상처, 가족 안에서 삼켜야 했던 마음, 사회 속에서 혼자 남겨지는 느낌 같은 것들요.
오늘은 고독을 없애는 방법이라기보다, 고독과 상처가 있는 채로 사람은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가를 함께 들어보면 좋겠습니다.
그럼 신경숙 작가님부터 말씀해 주실까요.

1. 고독은 사람을 약하게 만드는가, 아니면 깊게 만드는가

신경숙
고독은 분명 사람을 약하게 만듭니다.
특히 가족 안에서 느끼는 고독은, 혼자 있는 고독과는 조금 다른 무게가 있어요.
가까이에 사람이 있는데도 닿지 않는 느낌, 사랑하는데도 끝내 말이 되지 않는 마음. 그런 건 사람을 조용히 지치게 하지요.

그런데 그런 고독을 겪어본 사람은, 다른 사람의 침묵에도 조금 더 예민해질 수 있는 것 같아요.
저 사람이 왜 말이 없는지, 그 말없음 뒤에 어떤 마음이 숨어 있는지 조금 더 헤아릴 수 있게 되는 거죠.
그래서 고독은 사람을 다치게도 하지만, 조금 더 깊게 만들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유희열
가까이에 있는데도 닿지 않는 고독.
조용한데도 참 아픈 말이네요.

한강
고독은 사람의 윤곽을 또렷하게 드러내는 것 같기도 합니다.
평소에는 관계와 일상 속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던 것들이, 고독 속에서는 갑자기 선명해지지요.
자기 안의 상처, 연약함, 두려움 같은 것들이요.

그건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내가 वास्तव में 무엇에 닿아 있었는지를 알게 해주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고독이 아름답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고독 속에서만 보이는 것이 분명 있다고는 생각합니다.

박완서
저는 고독을 너무 멋있게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부엌에서 혼자 집안의 공기를 다 떠안고 있는 고독도 있고, 가족과 함께 있는데도 아무도 내 피로를 모르는 고독도 있거든요.
그런 고독은 아주 현실적이고, 생활에 가까운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람은 그런 가운데서도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세탁을 하고, 그렇게 또 살아가요.
그래서 저는 고독이 사람을 특별히 성장시킨다기보다, 고독을 안은 채로도 삶은 계속된다는 쪽을 더 오래 바라보게 됩니다.

김이나
그 말이 참 중요하네요.
예쁘게 포장하지 않는 느낌이 있어서 더 마음에 와닿습니다.

2. 불안은 없애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데리고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김이나
요즘은 불안이 없는 사람이 오히려 드문 것 같아요.
미래에 대한 불안, 관계가 깨질까 하는 불안, 기대에 못 미칠까 하는 불안.
이런 건 정말 사라질 수 있는 걸까요, 아니면 결국 안고 살아가야 하는 걸까요.

김영하
저는 불안은 아마 없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살아 있는 한, 잘 모르는 것들 속에 있으니까요.
일도 그렇고, 인간관계도 그렇고, 자기 자신도 그렇고, 다 불확실한 면이 있잖아요.

그래서 “불안이 완전히 없는 상태”를 목표로 삼으면 오히려 더 힘들어질 수도 있다고 봐요.
불안이 있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인정하는 편이, 조금은 덜 괴로울 수 있습니다.
불안이 있어도 밥을 먹고, 사람을 만나고, 글을 쓰고, 하루를 버텨낼 수는 있으니까요. 저는 그 지점에서 출발하고 싶습니다.

조남주
저도 비슷하게 생각해요.
불안이라는 게 개인의 성격 탓만은 아닌 경우가 많잖아요.
사회 구조나 기대의 방식 자체가 사람을 늘 불안하게 만들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식의 말은 조금 다르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물론 자기 안을 들여다보는 일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무엇이 사람을 이렇게까지 몰아붙이고 있는지도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불안을 느끼는 사람이 잘못된 게 아니라, 불안을 너무 당연하게 만드는 공기 쪽을 의심해봐야 한다는 거지요.

황석영
맞습니다.
개인의 불안은 때로 시대의 불안이기도 하지요.
경제, 정치, 사회의 분열 같은 것들이 사람의 마음에 그대로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그러니 불안을 단지 개인의 약함으로만 보는 건 너무 거칠어요.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매일을 살아내야 합니다.
그러니 불안을 완전히 없애는 것보다, 불안 속에서 어떻게 버티고 서 있을 것인가를 묻는 편이 훨씬 현실적입니다.
사람은 완전히 안심한 다음에야 비로소 살아가는 존재는 아니니까요.

유희열
불안이 없어지고 나서 사는 게 아니라, 불안이 있는 채로 살아간다.
참 현실에 가까운 말입니다.

3. 상처는 시간이 낫게 하는가, 아니면 오래 남는가

유희열
이 부분도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실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면 상처도 아물 거라고들 말하잖아요.
그런데 정말 그럴까 싶을 때도 있습니다.
남는 상처도 분명 있는 것 같거든요.

윤흥길
저는 오래 남는 상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시대나 가족, 상실과 얽힌 상처는 시간이 흘렀다고 해서 깨끗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지요.
겉으로는 잘 보이지 않게 될 뿐, 안쪽에서는 오래 살아남기도 합니다.

다만 남아 있는 것과 전혀 달라지지 않는 것은 같지 않습니다.
상처는 남아 있어도, 그 상처를 바라보는 거리나 방식은 달라질 수 있겠지요.
글을 쓴다는 것은, 어쩌면 그 거리를 다시 재보는 일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공지영
저는 사람이 상처를 안고서도 누군가와 연결될 수 있다고 믿고 싶어요.
물론 깊게 다친 사람에게 함부로 “다 괜찮아질 거야”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런 말은 오히려 잔인할 때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누군가가 그 상처를 제대로 봐주었을 때, 사람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숨을 쉬게 되는 것 같아요.
치유라는 큰 말보다, 혼자 두지 않는 것이 더 가까운 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천선란
저는 상처가 있다고 해서 모든 게 끝났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사람은 상처받은 다음에도 누군가와 웃을 수 있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 수도 있고, 예상하지 못한 따뜻한 시간을 만나기도 하잖아요.
그럴 때 상처가 사라진 건 아니지만, 그 사람의 세계는 분명 조금 넓어져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그런, 상처를 안은 채로도 생겨나는 부드러운 시간을 쓰고 싶고, 실제 삶 속에서도 그런 일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한강
상처는 사라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오직 절망만을 뜻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상처가 한 사람의 감각을 바꾸고, 타인을 만지는 방식을 바꾸고, 세계를 바라보는 눈을 바꾸기도 하니까요.

중요한 건 상처를 없었던 일처럼 만들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 나은 척하지 않는 것.
어쩌면 거기서부터만 시작될 수 있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4. 약함을 드러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인가

김이나
이건 정말 많은 분들이 마음속으로 붙들고 있는 질문일 것 같아요.
약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 도움을 청한다는 것, 그건 부끄러운 일일까요.

김훈
사람은 쉽게 약함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건 단지 체면 때문만은 아니지요.
약한 모습을 보였을 때 실제로 상처받은 경험이 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약함을 숨긴다고 해서 그걸 단순히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숨긴 채로 오래 두면 점점 더 무거워집니다.
그래서 적어도, 자기 자신의 약함을 스스로 버리지 않는 일은 필요합니다.
남에게 보여주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이 그 약함을 경멸하지 않는 것. 저는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박완서
저는 약한 모습을 보이는 데 서툰 사람들을 참 많이 봐왔어요.
특히 가족 안에서는 더 그렇지요.
엄마는 강해야 하고, 아버지는 약한 소리를 하면 안 되고, 딸은 참아야 하고.
그런 역할들 속에서 사람들이 조금씩 닳아갑니다.

그래서 약함을 드러내는 것이 부끄러운 게 아니라, 약함을 드러낼 수 없는 분위기 자체가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조남주
저도 정말 그렇게 생각합니다.
약한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건 그 사람이 덜 성숙해서가 아니라, 그런 모습을 보였을 때 책임감이 없다고 여겨지거나 가치가 떨어진 것처럼 취급받는 사회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개인에게 “좀 더 솔직해져라”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느껴요.
솔직할 수 있는 관계와 공간이 있어야 하니까요.

사람이 약함을 드러낼 수 있는 건, 결국 안전하다고 느낄 때라고 생각합니다.

김영하
그렇다고 해서 누구에게나 다 보여주는 게 정답은 아니겠지요.
약함을 드러낼 상대는 분명 고르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차갑게 말해서가 아니라, 현실적인 이야기예요.

믿을 수 있는 사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 조금씩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많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저는 “모든 걸 다 털어놓는 용기”보다, 안전한 사람에게 조금씩 건네는 감각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유희열
그 말이 참 와닿네요.
강해지는 문제라기보다, 안심할 수 있는 자리를 찾는 문제 같기도 합니다.

5. 고독과 상처 속에 있는 사람에게 지금 건네고 싶은 말

유희열
마지막으로, 이 주제에서는 꼭 이걸 여쭙고 싶습니다.
지금 고독과 불안, 상처 속에서 조금 숨이 막히는 사람에게 한마디를 건넨다면, 어떤 말을 하고 싶으신가요.

신경숙
당신이 느끼는 외로움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스스로에게 “이 정도는 괜찮아”라고만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먼저 그 외로움을 제대로 인정해주는 것부터 시작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강
고통을 너무 빨리 정리하려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말이 되지 않더라도, 그 아픔에는 분명한 의미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지금은 아직 만질 수 없더라도, 없었던 일처럼만은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김영하
오늘 하루를 작은 크기로 끝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습니다.
모든 걸 한꺼번에 해결할 필요는 없어요.
제대로 자고, 조금 먹고, 잠깐 바깥 공기를 마시는 것 정도면 되는 날도 있습니다.

박완서
생활은 생각보다 사람을 붙잡아 줍니다.
밥을 먹는 일, 누군가에게 차 한 잔을 내는 일, 창문을 여는 일 같은 사소한 것들이 사람을 조금씩 제자리로 데려오기도 하거든요.

황석영
자기 고통을 자기 혼자만의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시대와 사회가 사람을 괴롭게 만들 때도 분명히 있으니까요.
당신이 약해서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조남주
당신이 힘든 건 게을러서도 아니고, 모자라서도 아닙니다.
그렇게 느끼게 만드는 분위기와 기준 쪽을 한 번쯤 의심해보셔도 좋겠습니다.

김훈
힘들 때일수록 자기 자신을 함부로 다루지 않았으면 합니다.
사람이 가장 차가운 말을 듣는 순간은, 의외로 자기 자신이 자기에게 그 말을 할 때인 경우가 많으니까요.

윤흥길
잊으려고만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잊히지 않는 것이 있다는 건, 그만큼 깊이 살아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천선란
앞으로도 아직 다정한 사람들은 있을 거예요.
지금 당장은 보이지 않아도, 아직 만나지 못했을 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세상을 너무 빨리 다 닫아버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공지영
혼자 견디는 것만을 너무 대단한 일이라고 여기지 않았으면 합니다.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 도움을 청하는 것, 그것도 분명 사람이 살아가는 힘 중 하나니까요.

6. 진행자 정리

김이나
오늘은 고독과 불안을 “이겨내는 이야기”라기보다, 그것이 있는 그대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함께 들여다본 시간 같았어요.
사라지지 않는 것도 있고, 오래 남는 것도 있지만, 그 안에서도 사람은 관계를 맺고, 생활을 이어가고, 작은 다정함에 기대어 숨을 쉬어갈 수 있다는 점이 참 오래 남습니다.

유희열
그러네요.
고독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을 수도 있고, 불안도 다 사라지지 않을 수 있고, 상처도 깨끗하게 닫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 없었던 일처럼 만들지 않는 것
  • 혼자 두지 않는 것
  • 자기 자신을 버리지 않는 것
  • 작은 생활을 계속 이어가는 것
    그런 방식으로 사람은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오늘 많이 느꼈습니다.

김이나
다음 주제에서는, 개인의 고독과 상처가 더 큰 관계 안에서 어떻게 흔들리는지를 보게 될 것 같아요.
이어서 나눌 이야기는,
주제 3 ‘가족은 사람을 지키는가, 아니면 묶어두는가’ 입니다.

주제 3 - 가족은 사람을 지키는가, 아니면 묶어두는가

가족은 사람을 지키는가, 아니면 묶어두는가

유희열
이번 주제는 아마 많은 분들의 마음에 아주 가까이 닿을 것 같습니다.
가족은 원래 가장 가까운 존재이지요. 나를 지켜주는 자리이기도 하고, 돌아갈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가장 깊이 상처받는 곳이기도 하고, 가장 많은 말을 삼키게 되는 곳이기도 한 것 같아요.
오늘은 그 두 얼굴을, 미화하지도 않고 냉정하게 잘라내지도 않은 채, 그대로 들어보고 싶습니다.
가족은 사람을 지키는가, 아니면 묶어두는가.

김이나
한국문학에서 가족은 정말 큰 주제인 것 같아요.
사랑, 책임, 죄책감, 침묵, 기대, 희생 같은 것들이 다 얽혀 있잖아요.
따뜻함이 분명 있는데도 숨막히는 면이 있고, 놓고 싶지 않은데 자꾸 다치게 되는 관계이기도 하고요.
오늘은 가족을 좋다, 나쁘다로 나누기보다, 사람이 가족이라는 너무 가까운 관계 안에서 어떻게 상처받고, 기대고, 거리를 배워가는지 그걸 함께 들여다보면 좋겠습니다.
신경숙 작가님부터 말씀해 주실까요.

1. 가족은 안식처인가, 아니면 침묵이 쌓이는 곳인가

신경숙
가족은 원래 안식처여야 하는데, 실제로는 침묵이 쌓이는 곳이 되기 쉬운 것 같아요.
너무 가까우니까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하고 넘기게 되지요.
알아주길 바라면서도 끝내 말로 꺼내지 못하고, 말하지 않아도 통할 거라고 믿는 사이에 긴 시간이 지나가 버리기도 하고요.

특히 엄마와 딸, 부모와 자식 사이에는 사랑이 있어서 더 말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는 것 같아요.
원망만은 아닌데, 막상 입 밖에 내면 관계가 깨질 것 같아서 삼키게 되는 말들요.
그래서 가족은 분명 지켜주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장 깊은 오해가 오래 머무는 곳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유희열
가까우니까 설명하지 않고, 가까우니까 오해도 더 깊어진다.
정말 그렇지요.

박완서
저는 가족이라는 게 결국 생활 그 자체라고 생각해요.
아주 아름다운 개념이라기보다, 밥을 먹고, 피곤해서 들어오고, 빨랫감이 쌓이고, 다 못한 말이 남고, 그런 가운데 서로를 보살피기도 하고 또 상처 주기도 하는 관계 말입니다.

그래서 가족은 지켜주는 쪽이냐, 얽어매는 쪽이냐 둘 중 하나로는 말할 수 없어요.
어느 날은 위로가 되고, 어느 날은 견디기 버거운 짐이 되기도 하니까요.
어제는 사랑이었는데 오늘은 숨막힘일 수도 있고요.
그 흔들림 전체를 품고 있는 관계가 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이나
좋다, 나쁘다로 딱 잘라지지 않는다는 말씀이네요.
날마다 표정이 달라지는 관계처럼 들립니다.

공지영
그런데 저는 가족이 가장 안전한 곳이라는 전제를 한 번쯤은 의심해봐도 된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은 가족도 분명히 많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있어야 할 자리에서 상처를 받는 사람도 있고, 지켜줘야 할 관계 안에서 오래 자기 자신을 작게 만들며 살아온 사람도 많아요.

그래서 가족이니까 무조건 아름답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게 중요한 건, 그 관계 안에서 사람이 정말 사람답게 대접받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2. 가족의 사랑은 사람을 강하게 하는가, 아니면 옭아매는가

유희열
가족의 사랑이 큰 힘이 되는 건 분명하지요.
그런데 또 사랑이기 때문에 거절하기 어렵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참게 되는 일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조남주
가족의 사랑은 자주 기대의 얼굴을 하고 나타나는 것 같아요.
널 위해서 그러는 거야, 걱정돼서 하는 말이야, 다 너 잘되라고 그러는 거야.
그런 말을 들으면 상처를 받아도 반박하기가 어려워지지요.

그런데 그 안에는 성 역할에 대한 기대, 나이에 맞는 삶에 대한 압박, 부모니까 당연하다는 감각 같은 것들이 함께 들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사랑이 그대로 자유를 빼앗는 일이 생기기도 해요.
사랑 자체가 나쁘다는 뜻은 아니고, 사랑의 이름으로 상대를 규정해버리는 순간이 너무 괴로운 것 같습니다.

천선란
저는 가족의 사랑이 조금 더 서툴러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해도 되고, 늘 다 책임지지 못해도 되고, 매번 꼭 맞는 말을 하지 못해도 되잖아요.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는 가족이라면 이래야 한다, 부모라면 이래야 한다, 딸이라면 이래야 한다는 틀이 너무 강해서, 그 안에 못 들어가면 금방 죄책감이 되는 것 같아요.

가족의 사랑을 조금 더 느슨하게 생각할 수 있다면, 사람도 훨씬 숨 쉬기 편해지지 않을까 싶어요.

황석영
가족은 사회의 가장 작은 단위이지만, 동시에 사회의 가치관이 가장 쉽게 스며드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위계, 역할 의식, 성공에 대한 기대, 희생의 미화 같은 것들이 가족의 사랑과 뒤섞이면, 어디까지가 돌봄이고 어디부터가 통제인지 점점 흐려지지요.

그래서 가족을 이야기할 때는 사적인 감정만 볼 것이 아니라, 그 뒤에 놓인 시대와 사회의 모양까지 같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영하
저는 가족의 사랑이 굉장히 강한 만큼, 그만큼 쉽게 거칠어지기도 한다고 생각해요.
가까우니까 설명을 생략하고, 가까우니까 예의를 덜 지키고, 가까우니까 상대를 안다고 착각하는 거죠.
그런데 오히려 정말 가까운 사람일수록, 함부로 안다고 생각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한 것 아닐까요.
가족에게는 남에게 하는 정도의 배려가 아니라, 어쩌면 그보다 더 세심한 태도가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이나
그 말이 참 오래 남네요.
가족이라고 해서 막 대해도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조심해야 한다는 뜻처럼 들려요.

3. 부모와 자식 사이에는 왜 이렇게 말하지 못한 것이 많은가

김이나
부모와 자식 사이는 사랑이 깊은 관계일 텐데도, 유난히 말하지 못한 것들이 많지요.
미안하다는 말, 고맙다는 말, 서운했다는 말, 힘들었다는 말.
왜 이렇게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말이 막히는 걸까요.

신경숙
부모와 자식 사이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쌓여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한두 번의 사건이 아니라, 몇 년, 몇십 년 동안 이어진 공기가 있잖아요.
그러니 한 문장으로 끝낼 수가 없고, 어디서부터 꺼내야 할지도 모르게 되는 거지요.

게다가 부모도 불완전한 인간인데, 자식은 자꾸 부모에게 부모다운 역할을 기대하게 되고, 부모는 또 자식에게 자신의 바람을 포개게 됩니다.
그렇게 겹쳐진 것들이 오래 쌓이면, 사랑은 있어도 말이 오갈 길은 점점 좁아지는 것 같아요.

박완서
저는 부모와 자식 사이가 조금 잔인한 관계일 때도 있다고 생각해요.
쉽게 끊어낼 수도 없고, 완전히 멀어질 수도 없으니까요.
그러니 작은 참음들이 조금씩 쌓여갑니다.

그런데도 이상한 건, 그렇게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서로를 신경 쓰고 있다는 거예요.
부모와 자식은 완전히 서로를 이해하는 관계라기보다, 끝내 다 이해할 수는 없어도 계속 이어져 있는 관계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한강
말하지 못한 것이 많은 건, 말을 꺼내려다가 닿지 못했던 경험이 이미 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한두 번, 무언가를 말해보려다 삼킨 기억, 닿지 못한 침묵 같은 것들이요.
그런 경험이 쌓이면 말 자체가 이미 아픔을 품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부모와 자식 사이에 필요한 것은 올바른 설명 이전에, 상대의 침묵이 어떤 무게를 갖고 있는지를 느껴보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김훈
부모와 자식 사이는 말보다 먼저 몸이 기억하는 부분이 큽니다.
말투, 발소리, 식탁의 공기, 혼났을 때의 정적 같은 것들요.
그래서 어른이 되고 나서도 부모 앞에 서면 문득 다시 아이가 되어버리는 순간이 있습니다.

이 관계의 어려움은, 이성만으로는 다 풀리지 않는 데 있는 것 같아요.
기억이 먼저 반응해버리기 때문입니다.

4. 가족에게서 멀어지는 것은 배신인가

유희열
이 질문은 실제로 많은 분들이 마음속에 오래 안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족과 거리를 두는 것, 따로 살아가는 것, 내 삶을 선택하는 것.
그건 배신일까요, 아니면 꼭 필요한 성장일까요.

조남주
저는 거리를 두는 것이 배신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가까운 관계 안에서는 내가 무엇을 느끼는지조차 잘 보이지 않을 때가 많아요.
특히 기대에 오래 맞춰 살아온 사람일수록, 자기 목소리가 안 들리게 되거든요.

그래서 멀어지는 건 관계를 끊기 위한 게 아니라, 오히려 관계를 다시 보기 위한 과정일 수도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특히 “가족인데”라는 말로 많은 인내를 요구하잖아요.
그런데 거리는 때로 아주 정직한 태도이기도 하다고 생각해요.

공지영
정말 그렇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무너져가고 있는데도 부모니까, 자식이니까, 가족이니까 하면서 버티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자기 자신을 지키는 일이 꼭 이기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제대로 서 있지 못하면 결국 누구도 제대로 돌볼 수 없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가족과 거리를 두는 일을 무조건 나쁜 것으로 말하는 문화는, 조금씩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천선란
저는 거리를 차가움이 아니라 호흡이라고 생각하고 싶어요.
같은 가족이어도 늘 같은 온도로 붙어 있을 수는 없잖아요.
가까이 있는 편이 좋은 시기도 있고, 조금 떨어져 있어야 오히려 더 다정해질 수 있는 시기도 있으니까요.

거리 덕분에 보이는 것도 있죠.
멀어져 보고 나서야 상대의 서툼이나 외로움이 비로소 보이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멀어지는 걸 실패로만 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윤흥길
다만 멀어지는 일에는 죄책감도 따라옵니다.
특히 오랫동안 가족의 책임을 짊어져온 사람일수록 그 죄책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지요.
그래서 거리만 두면 곧바로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도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더라도 죄책감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이 잘못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겠지요.
사람은 때때로 자기 삶을 살기 위해 아픈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5. 가족에게 지금 단 한마디를 전한다면

김이나
마지막으로, 이 주제에서는 이 질문을 꼭 드리고 싶어요.
만약 가족에게 지금 단 한마디만 건넬 수 있다면, 어떤 말을 전하고 싶으신가요.
미안하다는 말이어도 좋고, 고맙다는 말이어도 좋고, 바람이어도 좋습니다.

신경숙
“그때 조금 더 들었어야 했는데.”
그 말을 전하고 싶어요.
분명 내게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나는 제대로 듣지 못했던 것 같아서요.

박완서
저는 “잘 살아줘서 고맙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반듯하지 않아도, 다들 저마다의 무게를 견디며 살아낸 거니까요.

한강
“침묵에도 이유가 있었다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
그 말을 남기고 싶습니다.
말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없었던 것들도 있었다는 걸요.

김영하
저는 “다 안다고 생각해서 미안하다”일 것 같아요.
가족은 가까운 만큼, 상대를 너무 쉽게 안다고 착각하게 되니까요.

황석영
“당신의 삶은 가족의 역할만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었다.”
그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가족을 위해 오래 살아온 사람일수록, 그런 말이 필요할 때가 있으니까요.

조남주
저는 “당신 잘못이 아니었다.”
그 말을 꼭 하고 싶습니다.
가족 안에서 상처받은 사람일수록, 자기 탓으로 여기며 살아온 시간이 너무 길 때가 많으니까요.

김훈
“잘 버텼다.”
그 말이 떠오릅니다.
가족의 역사 안에는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인내가 너무 많으니까요.

윤흥길
저는 “나는 잊지 않았다.”
그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함께 있었던 시간도, 아픔도, 다정함도, 다 사라져버린 것은 아니라고.

천선란
“이제는 조금 더 편하게 만나고 싶다.”
그 말을 건네고 싶어요.
역할이나 기대 말고, 한 사람으로 서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요.

공지영
“조금만 더 자신을 아꼈으면 좋았을 텐데.”
그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가족을 위해 너무 오래 자기 자신을 뒤로 미루어온 사람들에게요.

6. 진행자 정리

유희열
오늘은 가족이라는 것이 위로가 되기도 하고, 짐이 되기도 하고, 사랑이 되기도 하고, 침묵이 되기도 한다는 걸 아주 선명하게 본 것 같습니다.
가족은 단순한 선도 악도 아니라, 가장 가까운 만큼 가장 크게 흔들리는 관계라는 생각이 듭니다.

김이나
저는 오늘, 가족의 문제는 사랑이 없어서만 생기는 게 아니라는 점이 특히 오래 남아요.
사랑이 있는데 말하지 못하고, 소중해서 더 함부로 굴고, 걱정해서 더 얽어매게 되는 거잖아요.
그 복잡함을 제대로 보지 않으면 가족을 쉽게 미화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쉽게 버릴 수도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희열
그 안에서도 거리를 두는 일, 자기 자신을 지키는 일, 늦게라도 말을 건네는 일이 분명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이야기도 오늘 많이 나왔습니다.
다음에는 이 가족 바깥의 더 큰 공기, 더 큰 구조를 바라보게 될 것 같네요.
이어서 나눌 이야기는,
주제 4 ‘사회는 사람을 키우는가, 아니면 상처 입히는가’ 입니다.

주제 4 - 사회는 사람을 키우는가, 아니면 상처 입히는가

사회는 사람을 키우는가, 아니면 상처 입히는가

유희열
여기까지 글쓰기, 고독, 가족의 이야기를 나누어 왔는데요.
이제는 조금 더 큰 공기 쪽으로 시선을 돌려보고 싶습니다.
사람은 혼자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니까요.
학교, 직장, 세상, 제도, 경쟁, 평가, 시대의 분위기 같은 것들 속에서 우리는 모르는 사이에 상처를 입기도 하고, 또 반대로 지탱되기도 합니다.
오늘은 그 질문을 정면으로 드려보고 싶습니다.
사회는 사람을 키우는가, 아니면 상처 입히는가.

김이나
한국문학 안에는 이 질문이 아주 깊게 흐르고 있는 것 같아요.
노력하면 보상받는다는 이야기 뒤에서, 누가 조용히 닳아가고 있었는지.
멀쩡해 보이는 구조 안에서, 누가 계속 바깥으로 밀려나고 있었는지.
오늘은 사회를 무조건 믿거나 무조건 비난하는 쪽이 아니라, 사람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깎이고, 어떻게 버티고, 어떻게 저항하는지 그 움직임을 함께 보고 싶습니다.
그럼 조남주 작가님부터 말씀해 주실까요.

1. 사회는 사람을 떠받치는 구조인가, 아니면 끝없이 시험하는 공간인가

조남주
저는 지금의 사회가 사람을 지탱해준다기보다, 계속 시험하고 있다는 느낌을 더 많이 받아요.
제대로 해내는지, 뒤처지지 않는지, 분위기를 읽는지, 성과를 내는지, 기대에 맞는지를 끊임없이 묻는 것 같거든요.
그런데 그 시험의 기준은 늘 공평하지도 않습니다.
성별, 나이, 학력, 일하는 방식, 가족 사정 같은 것들로 처음부터 기울어져 있는 경우도 많고요.

그래서 사회는 원래 사람을 살게 해주는 장치여야 하는데, 실제로는 사람에게 계속 자기 가치를 입증하라고 요구하는 곳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유희열
“입증하라고 요구하는 곳”이라는 말이 정말 지금의 공기를 잘 보여주는 것 같네요.

황석영
사회는 사람을 길러내는 힘도 있고, 상처 입히는 힘도 함께 갖고 있습니다.
문제는 어느 얼굴이 더 강하게 드러나느냐겠지요.
제도가 사람을 보호하고, 공동체가 사람을 받쳐주고, 노동이 존엄을 주는 방향으로 작동한다면 사회는 분명 사람을 키웁니다.

하지만 경쟁만 커지고, 약한 사람의 목소리는 닿지 않고, 역사에서 배워야 할 것도 배우지 못한다면, 사회는 사람을 닳게 만드는 기계처럼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라는 것을 마치 자연현상처럼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는 사람이 만든 것이니, 다시 바꾸는 책임도 결국 사람에게 있는 것이겠지요.

공지영
저는 사람이 사람답게 취급받고 있는지를 먼저 보고 싶어요.
제도가 그럴듯하고 말이 그럴듯해도, 그 안의 사람들이 늘 지쳐 있고, 겁먹어 있고,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다 쓰고 버려지는 것처럼 느낀다면, 그 사회는 분명 사람을 다치게 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사회를 이야기할 때 숫자나 성과보다, 그 안에 있는 한 사람의 얼굴을 먼저 떠올리고 싶어요.
사람 얼굴이 어두워지는 사회라면, 뭔가 잘못된 거라고 믿습니다.

2. 경쟁은 사람을 단단하게 하는가, 아니면 무너뜨리는가

김이나
한국 사회를 이야기할 때 경쟁을 빼놓기는 어렵지요.
경쟁이 사람을 성장시킨다는 말도 있고, 노력의 동력이 된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을 아주 오래 지치게 하고, 끊임없이 비교하게 만들고, 끝내 망가뜨리기도 하잖아요.
이 부분은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김영하
저는 경쟁 그 자체가 절대적으로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사람은 누군가와의 비교를 통해 자기 위치를 알기도 하고, 실력을 키우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문제가 되는 건, 경쟁이 삶 전체를 지배하기 시작할 때입니다.
어디에 있어도 비교당하고, 쉬고 있어도 뒤처지는 것 같고, 남의 성공이 곧 내 실패처럼 느껴질 때가 있잖아요.

거기까지 가면 경쟁은 사람을 키우는 도구가 아니라, 사람을 늘 결핍 속에 살게 하는 장치가 되는 것 같습니다.

천선란
저는 경쟁보다 먼저 안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안심할 수 있는 자리에서 애쓰는 것과, 여기서 떨어지면 끝이라는 마음으로 애쓰는 건 전혀 다르잖아요.
지금은 실패해도 괜찮다고 느끼기 어려운 공기가 너무 강한 것 같아요.
그래서 애쓴다는 것 자체가 금방 공포와 붙어버리는 느낌이 있습니다.

저는 사람이 몰려야 더 잘 자란다, 이런 생각은 한 번쯤 의심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훈
경쟁은 사람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이기고 싶은 마음, 지기 싫은 마음, 질투, 허영, 두려움 같은 것들이 전부 올라오니까요.
그런 점에서는 경쟁 속에서 인간의 어떤 본모습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본모습이 드러나는 것과, 그 상태가 건강하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지요.
사람이 늘 전쟁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건 자연스러운 상태가 아닙니다.
삶 전체를 승패로만 보게 되면, 결국 사람의 마음은 바싹 마르게 되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박완서
무엇보다 경쟁의 공기가 집 안까지 들어오는 순간이 참 힘들지요.
부모는 걱정해서 비교하고, 아이는 사랑받고 싶어서 무리하고, 다들 좋은 뜻으로 시작했는데 결국 같이 지쳐갑니다.
저는 경쟁이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기보다, 경쟁을 견뎌낸 사람이 나중에 강해 보일 뿐인 경우도 많다고 생각해요.
그 뒤에서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조용히 닳아 없어졌을 테니까요.

3. 사회가 말하는 ‘보통’은 누구를 다치게 하는가

유희열
이 부분도 참 깊습니다.
사회에는 늘 ‘보통’이라는 말이 있지요.
보통 학교에 가고, 보통 취직하고, 보통 결혼하고, 보통 그렇게 살아간다고 말하는 식으로요.
그런데 그 ‘보통’이 가장 많은 사람을 아프게 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조남주
맞아요. 저는 그 지점이 정말 크다고 생각해요.
‘보통’이라는 건 많은 경우 힘 있는 쪽에 더 편한 기준이거든요.
그 기준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설명을 요구받고, 뒤처진 사람처럼 보이고, 뭔가 잘못된 사람처럼 취급되기 쉽습니다.
여성,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사람, 결혼하지 않은 사람, 아이를 낳지 않은 사람, 경쟁에서 내려온 사람, 마음이 지쳐 잠시 멈춘 사람들.
그 많은 사람들에게 ‘보통이 아니다’라는 시선이 오래 향해 있었지요.

그런데 사실 더 거칠고 폭력적인 쪽은 오히려 ‘보통’이라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한강
저는 ‘보통’이라는 말 안에 아주 조용한 폭력이 숨어 있을 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눈에 확 띄는 폭력은 아니라서 잘 지나가지만, 그 말에 오래 깎여나가는 사람들이 있지요.
그리고 더 깊은 문제는, 그렇게 다친 사람이 자기 고통을 결국 자기 탓으로 돌리게 된다는 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부족해서, 내가 맞지 않아서, 내가 이상해서 힘든 거라고 믿게 되는 거죠.

사회가 사람을 상처 입히는 방식은 큰 사건 안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일상의 언어 안으로도 스며든다고 생각합니다.

신경숙
‘보통’에 맞추려다 보면 자기 마음을 잃어버릴 때도 있는 것 같아요.
폐 끼치지 않으려고, 제대로 사는 것처럼 보이려고, 걱정 끼치지 않으려고.
그렇게 자기 자신을 계속 다듬고 접어넣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원래 무엇을 바랐는지조차 모르겠는 상태가 되기도 합니다.

저는 그런 조용한 길 잃음도 사회가 사람에게 남기는 상처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윤흥길
그리고 ‘보통’은 언제나 역사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어떤 시대에는 당연했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 숨 막히는 기준처럼 보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사람은 자기가 익숙한 기준을 너무 쉽게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사회의 ‘보통’을 의심해보는 건, 결국 시간을 길게 보는 눈과도 연결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 공기만이 전부라고 믿지 않는 것, 거기서 조금의 자유가 시작될지도 모르겠습니다.

4. 그럼에도 사람은 사회 속에서 어디서 희망을 얻는가

김이나
여기까지 오니 이야기가 꽤 묵직해졌네요.
그렇다면 이런 사회 속에서도 사람은 어디에서 희망을 얻을 수 있을까요.
사회가 완전히 다정하지 않다면, 무엇이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걸까요.

천선란
저는 작은 관계라고 생각해요.
큰 사회는 쉽게 바뀌지 않지만, 눈앞의 한 사람과 맺는 관계는 누군가를 꽤 많이 살릴 수 있거든요.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 쉽게 단정하지 않는 사람, 쉬어도 된다고 말해주는 사람, 조금 달라도 같이 있어주는 사람.
그런 작은 관계는 사회 그 자체는 아니지만, 사회에 눌려 부서지지 않게 해주는 피난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거기서 희망을 봅니다.

공지영
저는 목소리를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힘들다고 말하는 것, 부당하다고 말하는 것, 아프다고 말하는 것.
그 말 한마디가 사람을 고립에서 조금 돌려놓을 때가 있습니다.

물론 말하는 건 쉽지 않지요. 다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아무렇지 않은 척만 계속하면, 더 깊은 곳에서 망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한 사람에게라도 자기 말을 건넬 수 있다는 건 아주 큰 일입니다.

황석영
희망은 막연한 낙관과는 다르다고 봅니다.
현실이 거칠다는 걸 알고도, 그럼에도 사람이 아직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것. 그게 희망이겠지요.
사회는 거대한 것처럼 보이지만, 처음부터 완성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만든 것이라면, 사람의 손으로 다시 고쳐갈 수도 있는 겁니다.

그 감각을 놓지 않는 것이 절망에 다 잠기지 않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영하
저는 완벽한 답을 너무 빨리 요구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회 문제라는 건 한 권의 책으로 다 정리되는 것도 아니고, 하나의 생각으로 한 번에 해결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렇다고 해서 다 해결하지 못하니 아무 의미도 없다고 해버리면, 너무 허무해집니다.

누군가 한 사람의 시선이 조금 달라지고, 어떤 문장이 오래 남고, 누군가가 조금 숨 쉬기 편해지는 것.
그런 작은 변화는 생각보다 무시할 수 없다고 저는 믿습니다.

5. 지금의 한국 사회에 단 하나의 말을 건넨다면

유희열
마지막으로 이 주제에서는 꼭 이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지금의 한국 사회에 단 하나의 말을 건넬 수 있다면, 어떤 말을 남기고 싶으신가요.
짧아도 좋습니다.

조남주
비교하기 전에, 각자의 조건이 얼마나 다른지 먼저 봐주었으면 합니다.
노력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이 너무 많으니까요.

한강
보이지 않는 고통을 없는 것처럼 지나치지 않았으면 합니다.
보이지 않는 아픔일수록 오래 남는 경우가 있으니까요.

황석영
사회는 원래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감각을 잃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래야 바꿀 수 있다는 마음도 남을 테니까요.

공지영
사람을 끝까지 써버리는 방식으로 사회를 굴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참는 것을 지나치게 미덕으로 만들면, 결국 누군가는 부서집니다.

김영하
조금 늦는다고 해서 인생이 실패한 것은 아니라는 감각이 필요합니다.
그 감각이 없으면 모두가 계속 숨이 찰 수밖에 없어요.

신경숙
지쳐 있는 사람을 함부로 게으르다고 보지 않았으면 합니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사정이 사람마다 있으니까요.

박완서
생활의 무게를 가볍게 보지 않았으면 합니다.
작은 일상의 피로가 사람을 가장 깊이 닳게 만들기도 하니까요.

김훈
말을 너무 가볍게 쓰지 않았으면 합니다.
사회가 거칠어질 때는 늘 말부터 거칠어지니까요.

윤흥길
지금만 보고 모든 것을 판단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지금의 공기만이 역사의 전부는 아니니까요.

천선란
다정함을 유치하다고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이 오래 살아남으려면 다정함이 꼭 필요하니까요.

6. 진행자 정리

김이나
오늘은 사회라는 큰 이야기를 하면서도, 결국 그 안에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이 계속 떠오르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경쟁, 보통, 평가, 기대 같은 것들이 사람을 깎아내릴 수 있다는 이야기와 함께, 작은 관계와 문장과 시선의 변화가 사람을 붙잡아주는 힘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도 오래 남습니다.

유희열
맞아요.
사회는 사람을 키울 수도 있고, 상처 입힐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그걸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바꾸고 다시 생각해보려 하느냐인 것 같아요.
오늘 나온 말들을 붙잡아보면,

  • 너무 쉽게 비교하지 않는 것
  • 눈에 보이지 않는 고통을 지워버리지 않는 것
  • ‘보통’이라는 기준을 의심해보는 것
  • 다정함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것
    그런 태도들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이나
다음은 이제 마지막 주제네요.
글쓰기, 고독, 가족, 사회를 지나온 끝에서, 작가들이 미래에 무엇을 남기고 싶은지 듣게 될 것 같습니다.
이어서 나눌 이야기는,
주제 5 ‘미래의 독자에게 단 한 작품만 남긴다면, 무엇을 쓰겠는가’ 입니다.

주제 5 - 미래의 독자에게 단 한 작품만 남긴다면, 무엇을 쓰겠는가

미래의 독자에게 단 한 작품만 남긴다면, 무엇을 쓰겠는가

유희열
여기까지 글쓰기, 고독, 가족,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차례로 나누어 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으로, 가장 조용하면서도 가장 큰 질문을 드려보고 싶습니다.
만약 미래의 독자에게 단 한 작품만 남길 수 있다면, 무엇을 쓰고 싶으신가요.
무엇을 건네고 싶은지, 무엇만은 잊히지 않기를 바라는지, 그 마음을 듣고 싶습니다.
작가에게는 아주 사적인 질문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본질적인 질문일 것 같습니다.

김이나
지금까지 이야기를 들으면서 느낀 건, 여러분이 써온 작품은 단순히 이야기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사람의 고통과 기억과 침묵에 오래 손을 대는 일이었다는 점이었어요.
그래서 마지막 한 작품에는, 그 작가가 끝내 놓치고 싶지 않은 시선이 가장 또렷하게 담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 한강 작가님부터 말씀해 주실까요.

1. 미래에 남기고 싶은 것은 희망인가, 아니면 상처의 기억인가

한강
저는 상처의 기억을 남기고 싶습니다.
그건 슬픔을 반복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사람은 때로 앞으로 가기 위해, 보지 않은 척하고 싶어 하지요.
고통을 덮고, 침묵을 정리하고, 없었던 일처럼 살아가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지워진 아픔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더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미래의 독자에게, 사라진 듯 보이지만 끝내 사라지지 않은 것들의 흔적을 남기고 싶습니다.
누군가의 상처가 분명 거기 있었다는 사실을,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남기고 싶습니다.

유희열
잊지 않기 위해서라기보다, 지워지지 않게 하기 위해 쓴다는 느낌이 있네요.

신경숙
저는 잃어버린 시간과, 끝내 닿지 못했던 애정을 쓰고 싶습니다.
가족이든, 사랑이든, 우정이든, 사람은 늘 충분히 전하지 못한 채 지나가는 것들이 있잖아요.
그때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떠나고 난 뒤에야 알게 되는 마음들요.

미래의 사람들도 아마 그런 후회를 안고 살아갈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 후회 속에도 분명 사랑이 있었다는 걸 알게 해주는 이야기를 남기고 싶어요.
자기 삶의 지나간 장면을 조금 더 부드럽게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이면 좋겠습니다.

박완서
저는 생활을 쓰고 싶어요.
큰 사건이 아니라, 아침 부엌, 집 안의 공기, 식탁 위의 침묵, 아무렇지 않은 대화 같은 것들요.
그런 곳에서 사람이 어떻게 상처받고, 또 어떻게 기대며 살아가는지를 남기고 싶습니다.

미래가 아무리 달라져도 사람은 결국 누군가와 밥을 먹고, 누군가를 마음에 두고, 누군가와 살아갈 거예요.
그러니까 저는 일상을 가볍게 보지 않는 작품을 남기고 싶습니다.
인간의 본모습은 의외로 그런 작은 장면들 속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고 생각하거든요.

2. 다음 시대에 가장 건네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김이나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 하는 질문은, 결국 무엇을 지키고 싶은가 하는 질문이기도 한 것 같아요.
다음 시대에 꼭 건네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황석영
저는 역사 속을 살아가는 한 사람을 쓰고 싶습니다.
미래의 독자는 자신들이 과거와는 다른 새 시대를 살고 있다고 믿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시대가 바뀌어도 사람은 열광하고, 분열하고, 잊고, 다시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역사를 큰 연표처럼 쓰고 싶지 않습니다.
한 인간의 체온을 가진 시간으로 남기고 싶어요.
미래의 독자가 자기 시대를 당연한 것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게 만드는 이야기, 그걸 쓰고 싶습니다.

공지영
저는 사람이 사람을 끝내 버리지 않는 이야기를 남기고 싶습니다.
현실에는 외면당하는 사람도 있고, 목소리가 지워지는 사람도 있고, 상처 속에 그대로 놓여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풍경을 당연한 것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아요.

미래에 한 작품을 남긴다면, 누군가의 아픔을 알아본 사람이 완전하지는 않아도 곁에 남아주는 이야기였으면 합니다.
세상을 한 번에 바꾸지 못하더라도, 한 사람을 혼자 두지 않는 마음은 남길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천선란
저는 조금 다른 사람들이 그래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미래는 더 많은 차이로 가득한 세계일 것 같거든요.
생각도 다르고, 살아가는 방식도 다르고, 쉽게 하나가 될 수 없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함께 살 수 없는 건 아니라고 믿고 싶습니다.
끝내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래도 곁에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
저는 그 작고 밝은 가능성을 남기고 싶어요.

유희열
같아지지 않아도 함께 있을 수 있다는 말, 지금에도 미래에도 참 중요한 말 같네요.

3. 미래 사회가 특히 경계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유희열
이제 조금 다른 방향에서 여쭙고 싶습니다.
미래에 무언가를 남긴다는 건, 동시에 “이건 조심했으면 좋겠다”는 뜻도 담고 있을 것 같아요.
미래 사회가 특히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조남주
저는 ‘정상’ 혹은 ‘보통’의 얼굴을 한 압력을 경계했으면 합니다.
미래는 지금보다 더 자유로워 보일지도 몰라요.
그런데 자유로워 보이는 사회일수록, 다른 방식의 기준과 평가가 더 촘촘하게 들어올 수도 있거든요.

사람들이 각자 선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주 비슷한 성공의 이미지, 행복의 이미지 안에서 여전히 조용히 밀려다니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자유라는 말 안에 숨어 있는 압박을 보게 해주는 작품을 남기고 싶어요.
네가 힘든 건 네가 부족해서가 아니라는 말을, 미래의 독자에게도 전하고 싶습니다.

김훈
저는 말의 가벼움을 경계했으면 좋겠습니다.
시대가 빨라질수록 사람은 짧고 강하고 쉽게 이해되는 말을 원하지요.
하지만 그런 말은 편리한 대신, 인간의 무게를 자꾸 흘려보냅니다.
죽음, 책임, 패배, 상실 같은 것들은 얇은 말로는 도저히 버틸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저는 미래에 급히 소비되지 않는 문장을 남기고 싶습니다.
사람이 잠시 멈추지 않으면 읽을 수 없는 문장, 그런 문장을 남기고 싶습니다.

윤흥길
저는 망각을 경계했으면 합니다.
미래의 사람들은 고통보다 효율을 택하고 싶어 할지도 모르지요.
복잡한 기억보다, 훨씬 매끄럽고 앞을 보는 이야기만 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잊은 척한 기억은 결국 다른 모습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그래서 저는 잊고 싶은 마음까지 함께 써두고 싶습니다.
잊고 싶지만 잊을 수 없는 인간의 모습 자체를 남겨두고 싶어요.

한강
저는 보이지 않는 고통에 대한 무감각을 경계했으면 합니다.
사회는 눈에 드러나는 상처에는 반응하지만, 침묵 속에서 서서히 무너지는 것들에는 쉽게 둔감해지거든요.
미래의 사회가 아무리 정돈되어 보여도, 그런 보이지 않는 아픔을 느끼는 감각을 잃는다면 인간은 아주 깊이 외로워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 외로움의 윤곽을 남기고 싶습니다.

4. 그렇다면 미래에 남길 ‘한 장면’을 고른다면

김이나
여기서는 조금 더 이미지에 가까운 질문을 드려볼게요.
만약 미래에 남길 작품 속에서 단 하나의 장면만 먼저 보여줄 수 있다면, 어떤 장면일까요.
그 장면 안에 그 작가가 끝내 남기고 싶은 세계가 가장 잘 드러날 것 같아서요.

신경숙
저는 늦은 밤의 부엌을 고를 것 같아요.
누군가는 이미 잠들어 있고, 누군가는 혼자 식탁에 앉아 있다가 문득 하지 못했던 말을 떠올리는 장면이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은 그 고요한 시간 안에, 한 사람의 인생이 다 들어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거든요.
저는 그런 장면을 남기고 싶습니다.

박완서
저는 가족이 한 식탁에 모여 앉아 있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각자 조금씩 다른 생각을 하고 있고, 완전히 서로를 아는 것도 아니고, 오해도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로요.
그런데도 같은 김이 오르는 음식을 앞에 두고 함께 앉아 있는 것.
그 아무렇지 않은 풍경 속에 인간의 슬픔도, 우스움도, 질긴 생명력도 다 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천선란
저는 조금 어색하고 멀었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같은 방향을 보며 웃게 되는 장면이 좋을 것 같아요.
완전히 화해한 것도 아니고,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도 아니지만, 그 순간만큼은 둘 사이의 벽이 잠깐 얇아지는 거죠.
저는 그런 작은 변화가 정말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세상은 아마 그런 순간들 덕분에 조금씩 부드러워지는 것 같거든요.

공지영
저는 상처받은 사람이 “도와줘”라고 말하고, 그 말이 허공으로 사라지지 않는 장면을 쓰고 싶습니다.
거창한 기적이 아니라, 그 한마디가 제대로 받아들여지는 순간이요.
저는 그것만으로도 사람의 세계가 꽤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황석영
저는 시대의 큰 흐름 속에 놓인 인물이, 결국 자기 이익이 아니라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를 기준으로 결단하는 장면을 쓰고 싶습니다.
시대의 압력 속에서야말로 인간의 뼈대가 드러난다고 생각하니까요.

김훈
저는 누군가가 죽음 앞에서, 혹은 상실을 통과한 뒤 오랜 침묵 끝에 겨우 하나의 말을 건네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말이 가장 무거워지는 순간은 그런 때라고 생각합니다.

조남주
저는 늘 ‘보통’에 맞추어 살던 사람이 어느 날 문득, “나는 사실 이게 싫었다”는 걸 깨닫는 장면을 쓰고 싶어요.
겉으로 보면 작은 깨달음일지 몰라도, 그 사람의 인생에서는 아주 큰 균열이 될 수 있으니까요.

윤흥길
저는 오래 눌러두었던 기억이, 어떤 냄새나 소리 하나로 갑자기 되살아나는 장면을 남기고 싶습니다.
기억은 사라진 것 같아도, 몸 어딘가에는 오래 남아 있으니까요.

한강
저는 고요한 방 안에서 누군가가 부서진 것에 조심스럽게 손을 대고 있는 장면을 남기고 싶습니다.
고치기 위해서라기보다, 그것이 부서졌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위해서요.
그 안에 아주 작지만 중요한 존엄이 있다고 느낍니다.

김영하
저는 한 사람이 오랫동안 믿어온 이야기의 모양이 조금씩 달라져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을 쓰고 싶습니다.
자기가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 옳다고 믿었던 것들이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이요.
저는 사람이 바로 그런 순간부터 달라지기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5. 그 한 작품을 가장 먼저 건네고 싶은 사람은 누구인가

유희열
마지막으로, 그 작품을 가장 먼저 건네고 싶은 사람이 누구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미래의 독자라고 해도, 사실은 마음속에 떠오르는 얼굴이 조금씩 다를 것 같거든요.

한강
보이지 않는 고통 속에서, 아무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건네고 싶습니다.
그 침묵에도 분명한 형태가 있다는 걸 전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신경숙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람을 마음속에서 계속 부르고 있는 사람에게 전하고 싶어요.
끝내 닿지 못한 애정에도 여전히 의미가 있을 수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습니다.

박완서
저는 자기 일상은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건네고 싶습니다.
당신의 삶 속에도 충분히 말해질 가치가 있다는 걸 전하고 싶어요.

황석영
시대의 분위기에 그대로 휩쓸려 가고 있는 사람에게 주고 싶습니다.
지금이 전부가 아니라는 감각을 조금이라도 가질 수 있도록요.

조남주
자기가 힘든 이유를 자기 탓으로만 여기며 살아온 사람에게 건네고 싶습니다.
문제는 늘 당신 안에만 있었던 게 아니라는 말을 꼭 해주고 싶어요.

김훈
너무 가벼운 말들 속에서 중요한 무언가를 잃어가고 있는 사람에게 주고 싶습니다.
잠시 멈춰서야만 읽을 수 있는 문장을 건네고 싶어요.

윤흥길
잊고 싶은데 잊히지 않는 것을 품고 사는 사람에게 주고 싶습니다.
그 기억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꼭 무의미한 것만은 아니라는 걸 전하고 싶어요.

천선란
사람과 잘 연결되지 못한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건네고 싶어요.
완전히 다 이해하지 못해도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하고 싶거든요.

공지영
오랫동안 도움을 청하는 일을 망설여온 사람에게 주고 싶습니다.
당신의 목소리는 충분히 닿을 자격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김영하
자기가 보는 세계만이 전부라고 믿고 있는 사람에게 건네고 싶습니다.
시선이 조금만 달라져도 인생은 꽤 많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전하고 싶어요.

6. 진행자 정리

김이나
오늘은 마지막 주제답게, 여러분이 미래에 무엇을 남기고 싶은지가 정말 선명하게 드러난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상처의 기억, 닿지 못한 애정, 일상의 무게, 역사 속의 인간, 보이지 않는 고통, ‘보통’이라는 압력, 도움을 청하는 목소리, 함께 살아갈 가능성.
그 결은 다 달랐지만, 결국은 하나같이 인간을 함부로 다루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이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유희열
정말 그렇네요.
미래에 단 한 작품을 남긴다고 했을 때, 더 거창하고 더 큰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는데, 오히려 오늘 여러분이 남기고 싶다고 한 것은
늦은 밤의 부엌, 같은 식탁, 받아들여지는 “도와줘”, 부서진 것에 닿는 손, 조금 달라져 보이기 시작한 세계 같은, 아주 조용한 장면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사람의 마음에 가장 오래 남는 건 바로 그런 장면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이나
이 프로그램 전체를 통해 느낀 건, 문학이라는 건 답을 서둘러 내리는 자리가 아니라, 사람이 지나쳐온 고통과 침묵과 따뜻함을 다시 만져보게 하는 자리일지도 모른다는 점이었어요.
한국문학이 오래 사랑받는 이유도 아마 거기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유희열
글쓰기에서 시작해서, 고독, 가족, 사회, 그리고 미래까지 왔습니다.
어느 주제에서든 끝내 남아 있던 것은, 상처를 없었던 일로 만들지 않는 태도, 그리고 인간의 존엄을 가볍게 다루지 않는 시선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 이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자기 자신을 조금 덜 몰아붙이는 계기가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곁에 있는 사람을 조금 더 조심스럽게 바라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이나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럼 우리는 또, 말이 사람의 가장 깊은 곳에 닿는 자리에서 다시 만나겠습니다.

마지막 맺는 글

top 10 korean writers

오늘 이 자리에서 오간 말들은 쉽게 사람을 위로하는 말은 아니었습니다.

고독은 사라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상처는 말끔히 아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가족은 늘 따뜻하기만 한 곳이 아니고, 사회 역시 공정하기만 한 얼굴로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사람은 그 안에서 누군가를 생각하고, 끝내 말을 찾고, 자기 하루를 어떻게든 건너갑니다.
오늘의 대화는 그 사실을 아주 조용하고도 깊게 보여주었습니다.

열 명의 작가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멋진 문장 몇 줄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고통을 보려는 시선이었고,
잊힌 감정을 다시 불러내려는 마음이었고,
다친 사람을 혼자 남겨두지 않으려는 태도였습니다.

한국문학이 오래도록 독자의 마음에 남는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입니다.
강한 이야기나 극적인 장면만이 아니라,
말하지 못한 것들, 삼켜진 감정들, 가족 안의 침묵, 사회 속의 숨막힘,
그리고 그 모든 것 속에서도 끝내 사라지지 않는 사람의 온기를 놓치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우리는 매일 바쁘게 살아갑니다.
비교당하고, 재촉당하고, 설명하기 어려운 피로를 안은 채 하루를 건너갑니다.
그런 삶 속에서 오늘의 이야기는 잠시 멈추어,
자기 안의 감정을 너무 쉽게 밀어두지 않는 일,
타인의 고통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만들지 않는 일,
그리고 아주 작은 다정함과 작은 말 한마디에도 사람을 살리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리게 해주었습니다.

이야기는 읽는 순간 끝나는 것이 아니고,
말 역시 듣는 순간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나누어진 목소리들도 각자의 마음속에서 조금씩 오래 이어질 것입니다.

부디 이 시간이
자기 자신을 조금 덜 몰아붙이는 밤으로 이어지기를,
누군가의 침묵을 조금 더 조심스럽게 받아들이는 내일로 이어지기를,
그리고 말이 아직도 사람을 붙들 수 있다는 믿음을 다시 건네주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함께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음에 또, 말이 사람의 깊은 곳에 닿는 자리에서 만나겠습니다.

쇼트 바이오

한강
고요한 문장 속에 상처, 침묵, 몸, 기억의 깊이를 담아내는 작가. 인간의 고통과 존엄을 섬세하고 강렬하게 그려온 한국문학의 대표적 목소리다.

신경숙
가족, 어머니, 상실, 닿지 못한 애정을 깊이 있게 그려온 작가. 사라진 시간과 말하지 못한 마음을 조용히 불러내는 힘으로 오래 사랑받아 왔다.

김영하
도시적 감각과 지적인 문체로 널리 사랑받는 작가. 인간의 내면, 시대의 공기, 관계의 균열을 날카로우면서도 읽기 좋게 풀어내는 데 강점이 있다.

박완서
한국 현대문학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가. 가족, 전후의 삶, 여성의 현실, 일상 속에 숨어 있는 슬픔과 우스움을 깊고 생생하게 그려냈다.

황석영
역사와 사회, 민중의 삶을 큰 시야로 담아온 작가.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과 삶의 무게를 놓치지 않는 힘 있는 작품 세계로 잘 알려져 있다.

조남주
오늘의 한국 사회가 품고 있는 압박과 불균형을 예리하게 드러내는 작가. 일상 속에 스며든 불평등과 ‘보통’의 무게를 많은 독자에게 새롭게 보게 했다.

김훈
절제된 문장과 묵직한 시선으로 인간의 책임과 죽음, 역사와 삶의 본질을 파고드는 작가. 말의 무게를 끝까지 붙드는 문체로 깊은 인상을 남겨왔다.

윤흥길
개인의 삶과 시대의 기억이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오래 탐구해온 작가. 역사적 상처와 삶의 흔적을 조용하지만 단단한 힘으로 그려낸다.

천선란
다정함과 상상력, 그리고 조금 낯선 감각을 함께 지닌 작가. 서로 다른 존재들이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는지를 부드럽고 새롭게 보여준다.

공지영
사회 속에서 상처 입고 밀려난 사람들의 목소리를 꾸준히 비춰온 작가. 아픔과 연대, 인간을 향한 책임감을 곧고 선명한 문장으로 전해왔다.

유희열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깊은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끌어내는 진행자이자 음악인. 상대의 말을 서두르지 않고 받아주는 따뜻한 진행으로 사랑받아 왔다.

김이나
감정의 결을 섬세하게 짚어내는 언어 감각을 지닌 작사가이자 진행자. 깊은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풀어내면서도 여운을 남기는 질문이 돋보인다.

Filed Under: 문학, 생활과 문화, 역사와 철학 Tagged With: 가족과 상처, 고독과 불안, 문학 특별대담, 미래의 독자, 박완서 황석영, 사회와 개인, 삶과 존엄, 상처와 희망, 유희열 김이나, 윤흥길 천선란 공지영, 인간의 본질, 작가들의 대화, 조남주 김훈, 한강 신경숙 김영하, 한국 대표 작가, 한국 작가 10인, 한국문학 대담, 한국문학 인사이트, 한국문학 추천, 한국에서 사랑받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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