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bleTalk https://tabletalk.kr Wed, 05 Aug 2026 21:48:16 +0000 en-US hourly 1 https://wordpress.org/?v=7.0.4 100년 후의 아이들에게 어떤 대한민국을 남길 것인가? https://tabletalk.kr/future-generations-korea-100-years/ https://tabletalk.kr/future-generations-korea-100-years/#respond Wed, 05 Aug 2026 21:17:39 +0000 https://tabletalk.kr/?p=1371

프롤로그

우리는 미래에서 보면 이미 조상이다

우리가 걷는 길과 사용하는 학교, 병원, 수도, 철도는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닙니다. 전쟁과 가난을 겪은 세대가 집을 다시 세우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산업과 도시를 일으키며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질문은 달라졌습니다.

우리는 100년 후의 아이들에게 어떤 나라를 남길 것인가?

이번 Imaginary Conversation에서는 김구, 법정, 신영복, 박완서, 정주영이 한국의 오래된 산골 마을에 모입니다. 주민들은 무너진 돌담을 고치고, 오래된 공동 우물을 정리하며, 커다란 느티나무 옆에 새로운 묘목을 심습니다.

이 작은 마을에는 오늘날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청년들은 도시로 떠나고, 빈집은 늘어나며, 노인은 홀로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더 풍요로워졌지만 미래는 오히려 불안하게 느껴집니다.

다섯 사람은 다섯 가지 질문을 함께 이야기합니다.

과거 세대는 무엇을 지켜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는가?

왜 경제적으로 성장한 나라에서 청년들은 결혼과 출산, 미래를 두려워하는가?

발전 속에서 잃어버린 공동체와 고향은 다시 살아날 수 있는가?

한 사람의 성공보다 함께 살아가는 사회는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

그리고 100년 후의 아이들은 우리를 어떤 조상으로 기억하게 될 것인가?

김구는 나라의 품격과 문화의 힘을 말하고, 법정은 더 많이 가지는 삶보다 잃지 말아야 할 가치를 묻습니다. 신영복은 관계와 공동체의 의미를, 박완서는 평범한 사람들과 가족, 여성의 보이지 않는 희생을 비춥니다. 정주영은 산업과 도전, 경제 발전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면서도 그 성장이 사람과 지역, 미래 세대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대화는 과거를 그리워하기 위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의 선택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함께 생각해 보는 이야기입니다.

※ 본 글은 실제 인터뷰나 실제 대화가 아니라, 주제를 이해하기 쉽게 풀어가기 위해 구성한 가상의 상상 대화입니다. 등장인물의 발언은 실제 발언이 아니며, 특정 인물의 공식 견해를 대변하지 않습니다.

Topic 1 우리는 무엇을 지켜 내며 여기까지 왔는가?

1. 우리는 무엇을 지켜 내며 여기까지 왔는가?

늦은 오후의 햇빛이 산비탈 아래 오래된 마을을 비추고 있었다.

아침부터 이어진 공동 작업은 거의 끝나 가고 있었다. 주민들은 무너진 돌담을 다시 쌓고, 잡초로 뒤덮인 길을 정리하고,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던 공동 우물 주변의 흙과 낙엽을 치웠다.

새로 놓인 돌은 밝고 모서리가 선명했다. 오래된 돌은 비와 바람을 오래 맞아 표면이 둥글고 거칠었다.

서로 다른 시대의 돌들이 한 담 안에 나란히 놓여 있었다.

마을회관 앞에는 삽과 빗자루, 장갑, 손수레가 줄지어 놓여 있었다. 주민들이 각자 집에서 가져온 음식 냄새가 열린 창문 사이로 흘러나왔다.

한쪽에서는 대학생들이 오래된 사진을 벽에 걸고 있었다.

일제강점기 이전의 마을.

전쟁으로 집들이 무너진 뒤의 마을.

기와집 대신 슬레이트 지붕이 들어서던 시기.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

도시로 떠나는 젊은이들을 배웅하던 가족들.

그리고 빈집이 늘어난 오늘의 마을.

다섯 사람은 오래된 느티나무 아래 놓인 평상에 앉았다.

그 옆에는 오늘 심은 어린 느티나무가 나무 지지대에 묶여 있었다.

박완서는 벽에 걸린 사진 두 장을 오래 바라보았다.

한 장에는 불에 탄 집 앞에 서 있는 가족이 있었다. 다른 한 장에는 같은 자리에 새집을 짓기 위해 흙을 나르는 주민들이 있었다.

박완서

두 사진 사이에 몇 년이나 흘렀을까요.

첫 번째 사진의 사람들은 모든 것을 잃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두 번째 사진에서는 다시 집을 짓고 있습니다.

벽돌도 부족했을 것이고, 먹을 것도 넉넉하지 않았을 텐데요.

김구

사람은 집을 잃으면 거처만 잃는 것이 아닙니다.

가족이 함께 밥을 먹던 자리, 아이가 처음 걸었던 마당, 조상의 사진을 모셔 둔 방까지 잃습니다.

그래서 다시 집을 짓는 일은 건물을 세우는 것만이 아닙니다.

삶을 다시 이어 붙이는 일입니다.

정주영

없는 가운데서 다시 시작하려면 먼저 손을 움직여야 합니다.

돌이 부족하면 있는 돌을 모으고, 나무가 부족하면 쓸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계획이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렸다면 많은 것이 시작되지 못했을 겁니다.

신영복

그러나 한 사람의 힘만으로는 집 한 채도 세우기 어려웠겠지요.

사진을 보십시오.

흙을 나르는 사람, 기둥을 세우는 사람, 아이를 돌보는 사람,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이 모두 있습니다.

한 사람의 영웅이 마을을 다시 세운 것이 아닙니다.

서로 다른 일을 맡은 사람들이 함께 버틴 것입니다.

박완서

역사는 전쟁을 시작한 사람과 끝낸 사람의 이름을 기록합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다음 날 아침, 아이에게 먹일 죽을 끓인 사람의 이름은 기록하지 않습니다.

가족을 잃고도 남은 아이를 학교에 보낸 사람.

시장에서 물건을 팔아 학비를 마련한 사람.

남의 아이까지 데려다 재운 사람.

그런 사람들이 나라의 생활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마을회관 앞을 지나가던 한 노인이 사진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는 불에 탄 집 앞의 가족사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가운데 있는 아이가 우리 형님이오.”

노인은 잠시 웃었지만, 눈은 사진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 어머니가 숟가락 두 개를 끝까지 품고 피난을 갔다고 했어요. 집은 타도 가족이 밥은 다시 같이 먹어야 한다면서.”

박완서는 고개를 숙였다.

박완서

숟가락 두 개라니요.

큰 재산도 아니고, 값비싼 물건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에게는 가족이 다시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약속이었겠지요.

법정

사람은 모든 것을 가질 수 없을 때, 무엇이 정말 필요한지를 알게 됩니다.

집 전체를 들고 떠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가장 소중한 것을 골라야 합니다.

문제는 풍요로워진 뒤에도 무엇이 소중한지 기억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정주영

가난을 경험한 세대가 물질을 중요하게 생각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배고픔은 생각보다 잔인합니다.

먹을 것이 없으면 존엄도 쉽게 무너집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싶어도 돈이 없고,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습니다.

산업을 일으키고 일자리를 만든 것은 단순한 욕심만은 아니었습니다.

다시는 그 가난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결심이었습니다.

김구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잘사는 나라가 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돈이 많아도 자기 언어를 부끄러워하고, 자기 문화를 하찮게 여기며, 약한 사람을 짓밟는다면 그 나라는 진정으로 높은 나라가 아닙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생존만이 아니라 사람다운 삶입니다.

정주영

사람다운 삶을 지키기 위해서도 경제적 기반이 필요합니다.

문화도 학교도 병원도, 유지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김구

그 점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제가 묻는 것은 힘을 얻은 뒤, 그 힘을 어디에 쓰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만 잘살기 위해 쓰는가.

다른 사람도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쓰는가.

신영복

두 분의 말 사이에는 순서의 차이보다 목적의 차이가 있는 듯합니다.

경제는 사람을 살리기 위한 수단입니다.

그런데 수단이 목적보다 커지면, 사람은 경제를 위해 살아가게 됩니다.

마을 아래쪽 도로에서 작은 트럭 한 대가 지나갔다.

트럭에는 도시에서 돌아온 젊은 주민들이 싣고 온 목재와 농기구가 실려 있었다.

한 청년은 드론을 접어 상자에 넣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정주영이 말했다.

정주영

저 청년은 도시에서 일하다가 돌아와 농사를 짓는다고 들었습니다.

옛 농사법만으로는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드론으로 작물 상태를 살피고, 인터넷으로 판매하고, 도시 소비자와 직접 연결해야 합니다.

마을을 지킨다는 이유로 젊은 사람에게 과거의 생활을 그대로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박완서

그렇습니다.

고향을 지키라는 말은 아름답지만, 살 수 있는 조건이 없다면 잔인한 명령이 됩니다.

젊은 사람에게 희생만 요구하면서 어른들은 그것을 전통이라고 부를 때가 있습니다.

김구

문화는 희생을 강요한다고 지켜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사랑하고, 다음 세대가 자기 삶 안에서 다시 사용할 수 있어야 살아남습니다.

법정

지킨다는 말에는 조심할 점이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너무 꽉 붙잡으면, 그것은 살아 있는 전통이 아니라 짐이 됩니다.

나무도 가지를 전혀 치지 않으면 햇빛이 들지 않고 병이 생깁니다.

버릴 것은 버려야 새잎이 납니다.

신영복

그렇다면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바꿔야 할까요.

법정

사람을 살리는 것은 남기고, 사람을 억누르는 것은 놓아야 합니다.

함께 밥을 먹는 마음은 남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한 사람에게 모든 희생을 떠넘기는 관습은 놓아야 합니다.

이웃을 돌보는 마음은 남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남의 삶을 지나치게 간섭하는 태도는 놓아야 합니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지혜는 남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난과 불편을 무조건 아름답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박완서

과거의 가족을 이야기할 때, 여성들의 노동이 너무 쉽게 사라집니다.

남편이 밖에서 돈을 벌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가 집에서 아이를 키우고, 노인을 돌보고, 음식을 만들고, 친척 관계를 이어 갔기 때문입니다.

그 노동에는 월급도 없었고, 퇴직금도 없었습니다.

나라가 성장한 이야기 속에 그들의 몸과 시간이 들어 있습니다.

정주영

기업의 성장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장의 결단만으로 회사가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공장에서 일한 사람, 건설 현장에서 땀 흘린 사람, 해외에서 가족과 떨어져 일한 사람들의 시간이 들어 있습니다.

경영자가 그 사실을 잊는 순간, 성공은 오만으로 바뀝니다.

신영복

성공을 한 사람의 능력으로만 설명하면, 그 사람을 떠받친 관계와 사회가 보이지 않습니다.

도로가 있었고, 학교가 있었고, 가족의 희생이 있었고, 동료의 노동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의 성공 속에는 수많은 타인의 시간이 들어 있습니다.

김구

나라의 독립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름이 알려진 사람만이 나라를 지킨 것이 아닙니다.

우리말을 아이에게 가르친 부모.

금지된 글을 숨긴 학생.

감옥에 간 가족을 기다린 사람.

독립운동가에게 밥 한 끼를 내어 준 사람.

그들의 작은 행동이 민족의 정신을 이어 주었습니다.

근처에서 음식을 준비하던 할머니 한 명이 커다란 그릇을 들고 다섯 사람에게 다가왔다.

“일단 좀 드시면서 말씀하세요. 말만 하면 배가 안 찹니다.”

그릇에는 부침개가 담겨 있었다.

다섯 사람은 웃으며 한 조각씩 받았다.

할머니는 마을회관 안으로 돌아가려다 박완서의 부름에 멈췄다.

박완서

어르신은 이 마을에서 오래 사셨습니까?

“예, 시집와서 육십 년 넘었지요.”

박완서

마을이 가장 많이 변했다고 느낀 때는 언제였습니까?

할머니는 잠시 생각했다.

“길이 넓어지고 버스가 들어왔을 때는 참 좋았어요. 장에 가기도 쉽고, 아이들도 학교에 갈 수 있었지요. 전기가 들어왔을 때는 밤이 완전히 달라졌고요.”

그녀는 빈집이 늘어선 산비탈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다들 잘살게 되면 더 자주 만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얼굴 보기가 어려워졌어요. 예전엔 먹을 게 없어서 나눴고, 지금은 먹을 게 많아도 혼자 먹어요.”

할머니는 부침개 그릇을 안고 회관으로 돌아갔다.

법정

가진 것이 적을 때 나누고, 많아졌을 때 닫아 버린다면 우리는 무엇을 얻은 것일까요.

정주영

그렇다고 가난했을 때가 더 행복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법정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닙니다.

가난을 돌아가야 할 고향처럼 꾸며서는 안 됩니다.

제가 묻는 것은, 가난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함께 살던 마음까지 버릴 필요가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신영복

우리는 효율을 얻으면서 관계의 시간을 줄였습니다.

공동 우물에서 물을 길어야 했던 생활은 불편했습니다.

수도가 들어온 것은 큰 발전입니다.

하지만 우물가에서 자연스럽게 서로의 안부를 알던 시간도 함께 사라졌습니다.

불편을 다시 가져올 필요는 없습니다.

그 만남을 대신할 새로운 장소와 습관을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박완서

옛 공동체에는 따뜻함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소문이 빠르고, 남들과 다르게 살기 어려웠습니다.

특히 여성이나 젊은 사람에게는 숨 막히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과거의 공동체를 되살린다는 이유로 그 억압까지 되돌려서는 안 됩니다.

김구

그렇다면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옛날의 모습이 아니라, 서로를 사람으로 돌보는 정신이겠군요.

신영복

그 정신을 새로운 방식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사생활은 존중하면서도 고립된 사람을 놓치지 않는 관계.

다른 생각을 인정하면서도 공통의 문제에서는 협력할 수 있는 공동체.

그것은 예전 마을의 복원이 아니라, 더 나은 공동체의 발명입니다.

마을회관 벽에 사진을 걸던 대학생 한 명이 다섯 사람에게 다가왔다.

그의 손에는 1970년대 마을 청년들이 도시로 떠나기 전 찍은 단체사진이 들려 있었다.

대학생

이 사진 속 사람들 대부분이 서울이나 부산으로 갔다고 합니다.

공장이나 건설 현장에서 일했고, 자녀들은 대학에 보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자녀들은 이 마을로 거의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분들의 희생은 성공한 걸까요, 실패한 걸까요?

다섯 사람은 사진을 바라보았다.

사진 속 젊은이들은 작은 가방을 들고 웃고 있었다.

정주영

그들이 도시로 가지 않았다면, 더 나은 기회를 얻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자녀를 교육하고 가족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했다면 그것은 분명한 성취입니다.

박완서

그러나 성공과 상실은 동시에 있을 수 있습니다.

자녀가 더 나은 삶을 얻었지만, 마을에는 빈집이 남았습니다.

부모는 늙어 갔고, 가족은 명절에만 만났습니다.

한쪽이 진실이라고 해서 다른 쪽이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신영복

우리는 발전을 평가할 때 얻은 것만 계산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소득이 얼마나 늘었는가.

도로가 얼마나 길어졌는가.

대학 진학률이 얼마나 높아졌는가.

그와 함께 물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외로워졌는가.

떠나지 않고도 선택할 수 있는 삶이 있었는가.

돌아오고 싶은 사람이 돌아올 수 있는가.

김구

국가의 성공은 국민이 고향을 떠날 자유를 갖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돌아가고 싶을 때 돌아갈 가능성도 있어야 합니다.

서울에서만 꿈을 이룰 수 있다면, 국토는 하나여도 기회는 하나의 도시 안에 갇혀 있는 것입니다.

법정

사람은 어디에 살아야 한다는 명령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도시에 살고 싶은 사람은 도시로 가야 합니다.

산과 들 가까이 살고 싶은 사람은 그 삶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좋은 사회는 사람을 한 방향으로 몰아가는 사회가 아니라, 여러 삶의 길을 열어 주는 사회입니다.

대학생은 사진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대학생

그럼 저희 세대는 이분들의 희생을 어떻게 기억해야 합니까?

더 열심히 살아야 합니까?

정주영

도전하는 정신은 배울 가치가 있습니다.

어려운 조건에서도 시작한 용기.

불가능하다는 말 앞에서 방법을 찾은 태도.

그것은 어느 시대에도 필요합니다.

박완서

하지만 같은 고통을 반복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분들이 가족과 떨어져 살았다면, 여러분까지 그래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분들이 안전하지 않은 현장에서 일했다면, 젊은 세대도 견뎌야 한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부모의 희생을 기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식에게 같은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희생이 덜 필요한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신영복

과거의 고통에서 물려받아야 할 것은 고통이 아닙니다.

고통 속에서 서로를 지킨 방식입니다.

혼자 견디라는 명령이 아니라, 함께 짐을 나누었던 기억입니다.

법정

고난을 지나온 사람은 고난을 정당화하기 쉽습니다.

“나도 견뎠으니 너도 견뎌라.”

그 말에는 자신의 삶을 헛되지 않게 만들고 싶은 마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상처를 다음 사람에게 물려주어야 상처의 의미가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상처를 줄이는 데 쓰일 때 더 깊은 의미가 생깁니다.

김구

독립을 위해 싸운 세대가 다음 세대도 계속 싸우기만을 바란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들은 다음 세대가 자유롭게 살기를 원했습니다.

가난을 견딘 세대도 자식이 더 편안하게 살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므로 젊은 세대가 덜 고생하는 것은 선조를 배신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들의 소망이 일부 이루어진 것입니다.

정주영

다만 편안함이 도전할 이유까지 없애서는 안 됩니다.

미래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박완서

도전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도전과 착취를 구분해야 합니다.

젊은 사람에게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삶을 주고, 그것을 열정과 도전이라고 부르면 안 됩니다.

정주영

그 점에는 동의합니다.

기업이 젊은이의 꿈을 값싼 노동으로 이용한다면, 그것은 도전을 돕는 것이 아닙니다.

도전할 기회를 주고, 실패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신영복

한 세대의 인내를 다음 세대의 의무로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인내가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참는 사람이 늘 같은 사람이라면, 그것은 미덕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입니다.

멀리서 망치 소리가 들렸다.

주민 한 명이 돌담의 마지막 틈에 작은 돌을 끼워 넣고 있었다.

오래된 큰 돌 사이에 새 돌들이 자리 잡으며 담은 다시 하나의 선을 이루었다.

다섯 사람은 돌담 쪽으로 걸어갔다.

김구

이 담은 오래된 돌만으로 다시 세울 수 없었습니다.

정주영

새 돌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새 돌만으로 쌓았다면 이 마을 어디에나 있는 새 담과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신영복

오래된 돌은 기억을 가지고 있고, 새 돌은 앞으로의 무게를 나눠 가집니다.

둘이 서로 기대야 담이 섭니다.

박완서

세대도 그렇겠지요.

오래 산 사람에게는 기억이 있습니다.

젊은 사람에게는 새로운 방법이 있습니다.

기억만 있고 변화가 없으면 삶이 굳어 버립니다.

변화만 있고 기억이 없으면 같은 잘못을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법정

돌을 지킨다는 것은 돌 하나하나를 원래 자리에 되돌리는 일이 아닙니다.

무너진 담이 다시 사람과 길을 보호하도록 놓는 일입니다.

전통도 그렇습니다.

사람을 보호하지 못하는 전통은 위치를 바꾸어야 합니다.

주민들이 작업을 마친 뒤 돌담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기 위해 모였다.

누군가 오늘 새로 끼운 돌 하나에 날짜를 적으려 하자, 다른 주민이 말했다.

“이름도 같이 적을까요?”

잠시 이야기가 오갔다.

한 노인이 웃으며 대답했다.

“이름은 안 써도 돼. 백 년 뒤에도 담이 안 무너지면 그걸로 됐지.”

김구

이름이 남지 않아도 나라와 문화는 그런 사람들의 손으로 이어집니다.

박완서

그러나 이름을 남겨야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역사의 큰 이야기 속에서 지워진 사람들.

전쟁과 가난 속에서 희생된 사람들.

말할 기회조차 없었던 여성과 아이들.

그들의 존재는 기록해야 합니다.

신영복

선행은 이름 없이 남아도 좋지만, 고통까지 이름 없이 사라져서는 안 됩니다.

법정

기억은 집착과 다릅니다.

집착은 과거를 붙잡아 현재를 묶습니다.

기억은 과거에서 배워 같은 상처를 줄이게 합니다.

정주영

기업과 국가도 성공한 것만 기록해서는 안 됩니다.

실패한 사업.

다친 노동자.

환경을 해친 결정.

그런 기록이 있어야 다음 세대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해가 산 너머로 조금씩 내려가고 있었다.

마을회관 앞 긴 탁자에는 주민들이 가져온 음식이 놓이기 시작했다.

밥, 국, 김치, 나물, 부침개가 이어졌다.

아이들은 접시를 나르고, 청년들은 평상을 옮겼다.

한 소년이 새로 쌓은 돌담 위에 올라가려 하자 어머니가 내려오라고 불렀다.

소년은 담에서 내려온 뒤, 오래된 돌과 새 돌을 번갈아 만져 보았다.

소년

왜 돌 색깔이 달라요?

신영복

오래된 돌과 오늘 놓은 돌이 함께 있어서 그렇단다.

소년

새 돌만 쓰면 더 예쁘지 않아요?

박완서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오래된 돌에는 이 길을 걸었던 사람들의 시간이 남아 있단다.

소년

그 사람들은 누구예요?

어른들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정확한 이름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김구

우리가 모르는 사람들이란다.

그래도 그 사람들이 길을 만들었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여기에서 걸을 수 있는 것이지.

소년

그럼 오늘 우리가 넣은 돌도 나중에 누가 밟아요?

정주영

그렇겠지.

너보다 훨씬 나중에 태어날 아이가 볼 수도 있을 거야.

소년은 새 돌 하나를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소년

그 아이가 안 넘어지게 잘 넣어야겠네요.

소년은 주민들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다섯 사람은 그 작은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법정

어쩌면 우리가 지켜 온 것의 의미는 저 말 안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나중에 올 사람이 넘어지지 않도록 오늘 돌 하나를 제대로 놓는 것.

정주영

말은 작지만, 모든 일의 기본입니다.

다리도, 회사도, 나라의 제도도 다음 사람이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박완서

가족도 그렇습니다.

부모가 모든 답을 대신 정해 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자기 길을 걸을 때 덜 넘어질 수 있도록 바닥을 조금 고르게 해 주는 것.

신영복

그러나 넘어지지 않는 길만 만들 수는 없습니다.

넘어졌을 때 다시 일으켜 줄 사람이 있는 사회도 필요합니다.

김구

우리가 과거에서 받은 것은 완성된 나라가 아닙니다.

수많은 상처와 모순이 남아 있는 나라를 받았습니다.

그와 함께, 무너진 것을 다시 세우려는 의지도 받았습니다.

박완서

그렇다면 과거의 세대에게 감사한다는 것은, 그들의 고생을 반복하는 일이 아니겠지요.

그들이 미처 고치지 못한 것을 우리가 조금 더 고치는 일일 것입니다.

정주영

도로를 넓히고 집을 짓는 것만이 건설은 아닙니다.

일할 수 있는 기회.

가족과 함께 살 수 있는 시간.

지방에서도 꿈을 꿀 수 있는 조건.

그런 것도 세워야 합니다.

법정

그리고 계속 세우기만 하지 말고, 무엇을 멈춰야 할지도 알아야 합니다.

욕망에는 끝이 없습니다.

더 높은 집, 더 많은 물건, 더 빠른 성장만을 원하면, 지키려던 삶의 자리가 사라질 수 있습니다.

신영복

우리는 과거의 사람들에게서 두 가지를 받았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힘.

그리고 혼자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기억입니다.

첫 번째만 남기고 두 번째를 잊는다면, 경쟁은 강해지고 공동체는 약해질 것입니다.

마을회관의 스피커에서 저녁 식사가 준비되었다는 안내가 흘러나왔다.

주민들이 긴 탁자 둘레로 모이기 시작했다.

다섯 사람도 느티나무 아래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 박완서가 벽에 걸린 마지막 사진을 발견했다.

사진에는 수십 년 전, 마을 주민들이 같은 느티나무 아래에서 밥을 먹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지금보다 나무는 훨씬 작았다.

박완서

저 사진 속 사람들은 이 나무가 이렇게 커진 모습을 보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김구

그럼에도 나무를 심고 돌보았겠지요.

법정

나무는 자신을 심은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저 다음 사람에게 그늘을 내어 줍니다.

정주영

그늘도 누군가의 노동으로 시작된 것이군요.

신영복

그리고 오늘 우리가 그늘을 받았다면, 그 은혜를 과거로 돌려보낼 수는 없습니다.

아직 오지 않은 사람에게 건네야 합니다.

다섯 사람은 오래된 느티나무와 그 옆의 어린 묘목을 함께 바라보았다.

큰 나무의 가지는 마을회관 지붕 위까지 뻗어 있었다.

어린 나무는 가느다란 줄기로 저녁바람을 견디고 있었다.

김구

우리가 지켜 내며 여기까지 온 것은 단순히 나라의 경계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말로 생각하고, 가족과 밥을 먹고, 자신의 문화를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살아갈 자리였습니다.

박완서

평범한 하루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이었습니다.

전쟁 뒤에도 밥을 짓고, 아이를 키우고, 집을 다시 세우는 힘이었습니다.

정주영

가난을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일과 기술로 바꾸려 한 의지였습니다.

법정

모든 것을 잃어도 무엇이 소중한지 놓치지 않으려 한 마음이었습니다.

신영복

그리고 혼자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무게를 나누며 버틴 관계였습니다.

저녁 식사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한 자리씩 비켜 다섯 사람에게 앉을 곳을 마련해 주었다.

긴 탁자에는 세대가 다른 사람들이 섞여 앉았다.

전쟁을 기억하는 노인.

도시에서 돌아온 청년.

아이를 안은 젊은 부부.

영상을 촬영하는 대학생.

마을에서 자란 아이들.

한 노인이 밥그릇을 들며 말했다.

“자, 오늘 고친 담이 백 년은 가게 많이들 드시오.”

사람들이 웃었다.

식사가 시작되기 직전, 멀리서 도시로 돌아가는 버스의 불빛이 보였다.

마을의 고등학생 한 명이 그 버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옆에 있던 친구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이 마을이 좋은데, 여기 남으면 미래가 없을 것 같아.”

신영복은 그 말을 들었다.

그는 풍성하게 차려진 식탁과, 도시로 향하는 버스와, 어린 느티나무를 차례로 바라보았다.

과거의 세대는 전쟁과 가난 속에서 미래를 만들었다.

그들이 꿈꾸었던 풍요는 어느 정도 현실이 되었다.

그런데 풍요로운 나라에서 자란 한 젊은이는 왜 자신의 미래를 두려워하고 있는가.

식탁 위의 대화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Topic 2: 풍요로운 나라에서 왜 청년들은 미래를 두려워하는가?

2. 풍요로운 나라에서 왜 청년들은 미래를 두려워하는가?

긴 탁자 위에는 밥과 국, 김치, 나물, 부침개가 차려져 있었다.

주민들은 일을 마친 뒤라 배가 고팠고, 그릇이 오가는 소리와 웃음이 마을회관 앞을 채웠다.

하지만 식탁 끝에 앉은 고등학생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숟가락으로 밥을 조금씩 건드리며, 때때로 산 아래 도로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 도시로 향한 버스의 불빛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신영복은 학생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이 마을이 좋은데, 여기 남으면 미래가 없을 것 같아.”

그 말은 식탁의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마을에는 따뜻한 음식이 있었고, 서로의 이름을 아는 사람들이 있었고, 오래된 느티나무와 오늘 심은 묘목이 있었다.

그럼에도 한 젊은이는 자신이 사랑하는 곳에서 살아갈 미래를 상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신영복

아까 이 마을이 좋지만, 남으면 미래가 없을 것 같다고 했지요.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학생은 갑자기 모든 시선이 자신에게 모일까 봐 걱정하는 듯 잠시 머뭇거렸다.

고등학생

여기서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으니까요.

농사를 짓거나 작은 가게를 하는 것 말고는 잘 모르겠습니다.

부모님도 대학은 서울로 가야 한다고 하세요.

좋은 대학에 가고, 큰 회사에 들어가야 편하게 산다고요.

정주영

부모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좋은 교육과 안정된 직장은 삶의 가능성을 넓혀 줍니다.

기회를 찾아 도시로 가는 것이 잘못은 아닙니다.

고등학생

저도 도시가 싫은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모두 같은 곳으로 가려고 하니까요.

학교에서도 대학 순위 이야기만 합니다.

친구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보다 어느 대학에 갈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시험을 잘 보면 괜찮은 아이가 되고, 못 보면 게으른 아이가 되는 것 같습니다.

박완서

아이의 인생이 점수 한 줄로 정리되는군요.

부모는 아이가 고생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 마음은 사랑에서 시작됩니다.

그런데 사랑이 두려움과 만나면, 아이에게 한 가지 길만 요구하게 됩니다.

“이 길을 벗어나면 불행해진다.”

그 말을 반복하면, 아이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묻는 것조차 위험하게 느낍니다.

김구

나라가 교육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배움은 사람이 자신의 운명을 넓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육이 사람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고, 서로를 줄 세우는 도구가 된다면 목적을 잃은 것입니다.

법정

비교에는 끝이 없습니다.

좋은 학교에 들어가면 더 좋은 학교와 비교합니다.

직장을 얻으면 더 높은 연봉과 비교합니다.

집을 사면 더 넓은 집과 비교합니다.

남보다 앞서야 안심할 수 있다면, 앞에 선 사람도 뒤를 돌아보며 두려워합니다.

정주영

경쟁 자체를 모두 나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경쟁은 사람에게 더 나은 방법을 찾게 하고, 기술과 산업을 발전시키기도 합니다.

신영복

문제는 경쟁이 삶의 일부인가, 삶 전체인가 하는 데 있습니다.

함께 공부하는 친구가 어느 순간 이겨야 할 상대가 되고, 동료가 자리를 빼앗을 경쟁자가 되며, 이웃의 성공이 자신의 실패처럼 느껴진다면 사회는 끊임없이 불안해집니다.

정주영

그 점은 인정합니다.

경쟁은 능력을 키울 수 있지만, 사람의 가치를 결정해서는 안 됩니다.

사업에 실패한 사람이 인간으로 실패한 것은 아닙니다.

시험에서 떨어진 학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등학생 옆에 앉아 있던 그의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학생의 어머니

저도 아이에게 공부하라고 자주 말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보다 생활이 안정될 수 있는지가 더 걱정됩니다.

우리 세대는 취직하고 집을 마련하면 어느 정도 삶이 정리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좋은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어렵고, 취업해도 집을 사기 어렵다고 하잖아요.

아이에게 무엇을 준비하라고 말해야 할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박완서

부모도 두려운 것입니다.

자신이 알고 있던 성공의 지도가 더는 맞지 않는데, 새로운 지도는 아직 없으니까요.

그래서 익숙한 길을 더 강하게 붙잡습니다.

법정

부모의 불안이 아이의 목표가 될 때가 있습니다.

아이가 원하는 삶을 찾기 전에, 부모가 두려워하는 삶을 피하는 데 모든 힘을 쓰게 됩니다.

김구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젊은이에게 꿈을 가지라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몇 가지 직업과 몇 개의 도시로만 기회를 몰아준다면 그 말은 공허합니다.

다양한 삶을 존중한다고 하면서, 실패한 사람을 다시 일으킬 제도가 없다면 도전을 요구할 수 없습니다.

신영복

선택지가 많아 보이지만, 실제로 인정받는 선택은 적습니다.

서울로 가는 길.

좋은 대학으로 가는 길.

큰 회사로 가는 길.

그 길에서 벗어난 사람은 자신의 삶을 설명해야 합니다.

왜 지방에 사는지.

왜 작은 회사를 선택했는지.

왜 결혼하지 않았는지.

왜 아이를 갖지 않았는지.

사람은 자신의 선택을 살아가기보다 계속 변명하게 됩니다.

긴 탁자의 반대쪽에서는 어린아이 둘이 부침개를 두고 다투다가, 할머니가 반으로 나누어 주자 금세 웃었다.

그 옆에 앉은 젊은 부부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도 표정이 밝지만은 않았다.

박완서가 그들에게 물었다.

박완서

아이들이 참 건강해 보입니다.

두 분은 이 마을에 사십니까?

젊은 아내

아니요. 도시에서 살고 있습니다.

남편의 부모님이 이 마을에 계셔서 주말에 왔어요.

박완서

아이를 더 갖고 싶은 생각은 있으십니까?

부부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남편이 먼저 웃었지만, 그 웃음에는 망설임이 있었다.

젊은 남편

생각은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집도 좁고, 대출도 있고, 둘 다 일을 해야 합니다.

젊은 아내

첫째가 아플 때도 제가 휴가를 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회사에서는 직접 뭐라고 하지 않지만, 자꾸 빠지면 중요한 일을 맡기기 어렵다는 분위기가 있어요.

둘째를 가지면 제가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정주영

회사가 사람의 삶을 모두 사용하면서, 가정을 꾸리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기업이 젊은 사람을 오래 일하게 하고, 언제든 연락받을 것을 요구하면서 출산율이 낮다고 걱정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박완서

여성에게는 그 모순이 더 무겁습니다.

아이를 낳으라고 합니다.

좋은 어머니가 되라고 합니다.

직장에서도 뒤처지지 말라고 합니다.

부모도 돌보라고 합니다.

모든 일을 잘 해내지 못하면 개인의 선택이나 능력 부족처럼 말합니다.

하지만 한 사람의 하루는 누구에게나 같은 길이입니다.

신영복

아이를 키우는 일은 한 가정의 사적인 취미가 아닙니다.

그 아이는 나중에 사회의 구성원이 됩니다.

그런데 양육의 시간과 비용은 대부분 부모에게 맡기고, 사회는 성장한 사람만 받아들이려 합니다.

김구

다음 세대가 태어나고 자라는 일을 개인에게만 맡기는 국가는 자기 미래를 다른 사람의 희생에 의존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결혼이나 출산을 의무처럼 요구해서도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를 원하지 않는 사람을 설득하는 일이 아니라, 원하지만 두려움 때문에 포기하는 사람의 장애물을 줄이는 일입니다.

법정

사람은 생명을 숫자로 다루기 시작하면 본질을 놓칩니다.

출생률이 몇 퍼센트인지 말하기 전에 물어야 합니다.

젊은 부부가 왜 아이를 맞이할 일을 기쁨보다 위험으로 느끼는가.

아이가 태어났을 때 함께 돌볼 사람이 있는가.

부모가 자기 삶을 완전히 잃지 않고도 아이를 사랑할 수 있는가.

정주영

기업이 해야 할 일은 단순히 출산 축하금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일하는 시간을 예측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부모가 아이를 돌보는 기간이 경력의 끝이 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남성도 돌봄을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게 해야 합니다.

젊은 남편

저도 육아휴직을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회사에서 남자가 오래 쉬면 승진을 포기한 사람처럼 보일까 걱정됩니다.

박완서

그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는 한, 돌봄은 계속 여성에게 몰릴 것입니다.

제도가 있어도 사용하는 사람이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워하면, 제도는 종이 위에만 존재합니다.

신영복

좋은 제도는 사용할 용기가 필요 없는 제도입니다.

누구나 당연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김구

나라의 힘은 군대나 수출액으로만 나타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 아이를 키우면서도 자신의 존엄과 일을 지킬 수 있는가.

노인이 돌봄을 받으면서도 짐이 되었다고 느끼지 않는가.

젊은이가 실패한 뒤 다시 시작할 수 있는가.

그런 질문에 국가의 품격이 드러납니다.

젊은 아내는 잠든 아이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젊은 아내

저는 아이를 낳은 것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가끔은, 왜 이렇게 행복한 일이 저를 이렇게 지치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이 때문이 아니라, 모든 책임을 우리가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는 느낌 때문인 것 같습니다.

법정

행복이 무거운 짐으로 변한 것이 아니라, 행복을 둘러싼 책임이 한곳에 쌓인 것입니다.

사랑만으로 모든 문제를 견딜 수 있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지칩니다.

정주영

기업과 사회가 가족의 사랑을 값없는 자원처럼 사용해 온 면이 있습니다.

부모가 알아서 돌볼 것이다.

여성이 알아서 희생할 것이다.

조부모가 알아서 맡을 것이다.

그렇게 비용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어 냈습니다.

박완서

가족은 서로 돕는 곳입니다.

하지만 도움과 희생은 같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희생이 당연해지면, 가족은 따뜻한 울타리가 아니라 벗어날 수 없는 의무가 됩니다.

고등학생은 젊은 부부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었다.

고등학생

어른이 되면 원래 이렇게 걱정할 것이 많습니까?

사람들이 작게 웃었지만, 아무도 가볍게 답하지 못했다.

신영복

걱정이 없는 삶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걱정을 혼자 책임져야 하는 사회와, 함께 나눌 수 있는 사회는 다릅니다.

고등학생

저는 하고 싶은 일이 아직 없습니다.

그런데 빨리 정해야 한다고 합니다.

고등학교에서 어떤 과를 갈지 정하고, 대학을 정하고, 직업을 정해야 한대요.

한번 잘못 고르면 끝날 것 같습니다.

정주영

한번의 선택으로 인생이 끝나서는 안 됩니다.

사업도 계획대로 되지 않습니다.

방향을 바꾸고, 다시 배우고, 새로 시작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젊은 사람에게 도전하라고 하려면, 잘못 선택했을 때 돌아올 길도 만들어야 합니다.

박완서

어른들은 젊은이에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쉽게 말합니다.

하지만 실패의 대가를 젊은이 혼자 감당해야 한다면 두려워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학비 빚이 남고, 경력의 공백이 낙인이 되고, 다시 교육받을 기회가 없다면 한 번의 선택이 너무 무거워집니다.

법정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르는 시간도 필요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사람은 여러 일을 해 보고, 사람을 만나고, 혼자 있는 시간을 거치면서 자신을 알게 됩니다.

정답을 빨리 정하는 것보다, 잘못된 정답을 오래 붙잡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김구

교육은 답을 외우게 하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삶에서 어떤 질문을 가져야 하는지 배우게 해야 합니다.

무엇을 잘하는가.

무엇을 사랑하는가.

어떤 책임을 기꺼이 맡을 수 있는가.

자신의 능력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도움이 될 수 있는가.

신영복

그리고 사람은 혼자 자신을 발견하지 않습니다.

관계 속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됩니다.

누군가와 함께 일해 보고, 갈등을 겪고, 도움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자신의 모습을 봅니다.

고립된 경쟁만으로는 사람을 알기 어렵습니다.

학생의 친구 한 명이 멀리서 식탁으로 다가왔다.

그는 학생의 옆에 앉으며 말했다.

학생의 친구

선생님이 찾으시던데. 대학 상담 신청서를 내야 한대.

고등학생은 한숨을 쉬었다.

고등학생

봐요. 아직 밥도 다 안 먹었는데 미래를 결정하래요.

식탁 주변에서 웃음이 터졌다.

이번에는 학생도 웃었다.

정주영

상담서 한 장이 인생을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지금의 선택은 다음 선택으로 가는 한 걸음일 뿐입니다.

신영복

그러나 사회가 그 말을 현실로 만들어야 합니다.

대학을 바꿀 수 있어야 합니다.

직업을 바꿀 수 있어야 합니다.

도시에서 살다가 마을로 돌아올 수 있어야 합니다.

결혼했다가 혼자가 된 사람도 다시 삶을 시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박완서

여성도 아이를 낳은 뒤 다시 일할 수 있어야 하고, 아이를 낳지 않았다는 이유로 부족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아야 합니다.

법정

사람은 한 가지 역할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직업이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고, 부모라는 역할도 전부가 아닙니다.

무엇을 소유했는지,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누구와 결혼했는지로 한 사람의 깊이를 다 판단할 수 없습니다.

김구

나라가 국민에게 하나의 모범적인 삶만 보여 주면, 그 틀에 맞지 않는 많은 사람이 자신을 실패자로 느끼게 됩니다.

좋은 국가는 사람을 같은 모습으로 만드는 나라가 아닙니다.

서로 다른 삶이 존중받을 수 있는 기초를 만드는 나라입니다.

마을회관 안에서 설거지를 하던 주민 한 명이 빈 그릇을 가지러 나왔다.

그녀는 대화를 듣고 있다가 말했다.

“우리 딸도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다가 작년에 그만두고 내려왔어요. 처음에는 동네 사람들이 실패해서 돌아왔다고 수군거렸지요.”

고등학생이 관심을 보였다.

고등학생

지금은 뭐 하세요?

“빈집 하나를 고쳐서 작은 빵집을 열었어요. 인터넷으로도 팔고, 주말에는 아이들에게 빵 만드는 법을 가르칩니다.”

정주영

새로운 기술과 지역의 공간을 잘 결합했군요.

“그런데 처음에는 대출도 안 나오고, 동네에서는 오래 못 갈 거라고 했어요. 지금도 쉽지는 않습니다.”

신영복

그 딸은 도시에서 실패해서 돌아온 것이 아니라, 다른 삶을 시작하러 온 것입니다.

그 차이를 사회가 인정해야 합니다.

박완서

돌아오는 선택을 패배로 보면, 고향은 돌아갈 수 없는 곳이 됩니다.

김구

지역에 남는 삶도, 도시로 가는 삶도 존중받아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곳을 선택했느냐가 아니라, 그 선택이 존엄한 생활로 이어질 수 있느냐입니다.

법정

사람은 때로 떠나야 자신이 돌아가고 싶은 곳을 압니다.

머무는 것만이 사랑은 아닙니다.

떠났다가 새로운 눈으로 돌아오는 것도 사랑입니다.

주민은 빈 그릇을 들고 회관으로 돌아갔다.

고등학생은 한동안 어린 느티나무를 바라보았다.

고등학생

저도 나중에 도시로 갔다가 돌아올 수 있을까요?

정주영

돌아올 수 있어야 합니다.

다만 마음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일이 있어야 하고, 집이 있어야 하고, 배우고 일할 수 있는 연결이 있어야 합니다.

신영복

마을도 돌아오는 사람을 낯선 사람처럼 대하지 않아야 합니다.

새로운 방식으로 일한다고 비웃지 않고, 젊은 사람이 의견을 내면 경험이 없다고 막지 않아야 합니다.

박완서

여성과 아이가 살기 편한 마을이어야 합니다.

전통을 지킨다는 이유로 과거의 역할을 다시 강요하면 돌아오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법정

자연이 아름답다는 말만으로 사람을 붙잡을 수는 없습니다.

아름다운 경치 속에서도 생계를 걱정하고, 외로움을 견뎌야 한다면 삶은 어렵습니다.

김구

국가가 모든 마을을 같은 방식으로 살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태어난 곳 때문에 기회가 제한되지 않게 할 책임은 있습니다.

인터넷과 교통만 연결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교육, 의료, 문화, 일자리까지 생활 전체가 이어져야 합니다.

식탁 위 음식은 거의 비워져 가고 있었다.

아이들은 느티나무 주변에서 숨바꼭질을 시작했다.

젊은 부부의 큰아이가 묘목 뒤에 숨었지만, 가느다란 나무는 아이의 몸을 가려 주지 못했다.

아이는 금세 발견되어 웃으며 뛰어갔다.

법정

저 어린 나무는 아직 그늘도 만들지 못하고, 아이 한 명도 숨겨 주지 못합니다.

그래도 아무도 쓸모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자랄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신영복

젊은 사람에게도 그런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직 무엇을 할지 모른다고 해서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정주영

다만 자라도록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물도 주고, 바람에 쓰러지지 않도록 지지대도 세워야 합니다.

박완서

지지대가 나무의 방향을 억지로 정해서는 안 됩니다.

부모와 사회의 도움도 그래야 합니다.

아이를 지탱하되, 대신 살아 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김구

좋은 교육은 젊은이를 정해진 길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입니다.

고등학생의 어머니는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학생의 어머니

나는 네가 서울에 가든, 여기 남든, 불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솔직히 아직은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모르겠다.

고등학생

저도 아직 어디서 살고 싶은지 모르겠어요.

학생의 어머니

그럼 조금 더 생각해 보자.

예전 같았으면 어머니는 곧바로 “그래도 공부는 해야 한다”고 덧붙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말을 멈췄다.

학생도 더 이상 대답을 요구하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 처음으로 정답이 없는 시간이 놓였다.

박완서

저런 시간이 필요합니다.

부모가 답을 주지 못하는 것을 실패로 여기지 않는 시간.

아이도 아직 답을 모르는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시간.

신영복

함께 모른다고 말할 수 있을 때, 대화가 시작됩니다.

정주영

그리고 대화 뒤에는 실험할 기회가 있어야 합니다.

마을의 빵집에서 일해 볼 수도 있고, 도시의 회사에서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농업 기술을 배울 수도 있고, 다른 나라에서 공부할 수도 있습니다.

해 본 뒤 방향을 바꿀 수 있어야 합니다.

법정

삶을 선택한다는 것은 한 번의 선언이 아닙니다.

매일 조금씩 다시 선택하는 일입니다.

김구

그렇다면 미래의 젊은이에게 남겨야 할 것은 완벽하게 안전한 길이 아니라, 길을 잘못 들었을 때 돌아올 수 있는 사회일 것입니다.

멀리서 차량 한 대가 마을로 들어왔다.

차에서 젊은 여성이 내렸다.

그녀는 빵 상자를 들고 마을회관으로 걸어왔다.

조금 전 주민이 이야기한 딸이었다.

주민들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빵집 주인

늦어서 죄송해요. 오늘 주문이 많아서 이제야 왔어요.

그녀는 빵을 식탁에 놓았다.

상자에는 마을의 오래된 느티나무가 그려진 작은 상표가 붙어 있었다.

고등학생이 상표를 유심히 보았다.

고등학생

이걸 직접 만든 거예요?

빵집 주인

응. 마을 사진을 보고 그렸어.

고등학생

서울 회사보다 이 일이 더 좋아요?

여성은 잠시 생각했다.

빵집 주인

무조건 더 좋다고는 못 하겠어.

수입이 불안한 달도 있고, 혼자 결정해야 할 일도 많아.

서울에서 배운 것도 많았고, 좋은 사람도 만났어.

다만 지금은 내가 어떤 하루를 살고 있는지 더 잘 보이는 것 같아.

고등학생

돌아온 걸 후회하지 않아요?

빵집 주인

가끔은 해.

그런데 서울에 있을 때도 후회한 날이 있었어.

후회가 없는 선택을 찾기보다, 후회해도 다시 조정할 수 있는 삶을 만들려고 해.

고등학생은 그 말을 오래 생각하는 듯했다.

신영복

저 말이 오늘의 질문에 가까운 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젊은이가 미래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한 번의 선택이 자신의 전부를 결정할 것처럼 느끼기 때문입니다.

박완서

결혼도, 출산도, 직업도, 사는 곳도 그렇습니다.

다시 선택할 수 없다고 느끼면 사람은 시작을 미룹니다.

정주영

그러므로 도전을 말하기 전에 재도전할 기반을 만들어야 합니다.

법정

성공의 기준도 하나가 아니어야 합니다.

자신의 시간과 관계를 지키며 사는 삶도 성공일 수 있습니다.

김구

국가가 젊은이에게 줄 가장 큰 희망은 “우리가 정한 길을 따르면 안전하다”는 약속이 아닐 것입니다.

“네가 다른 길을 선택해도 사람답게 살 수 있다”는 믿음일 것입니다.

마을회관의 전등이 하나씩 켜졌다.

식사를 마친 주민들은 탁자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고등학생은 도시로 떠나는 버스가 지나갔던 도로 대신, 마을로 돌아온 여성의 빵 상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이 마을에 남을지, 도시로 갈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조금 전과 달리, 두 길 중 하나를 영원히 포기해야 한다고는 느끼지 않는 듯했다.

그때 마을회관 뒤편에서 물을 긷는 소리가 들렸다.

한 주민이 사용하지 않는 공동 우물 주변을 청소하다가 오래된 두레박을 발견한 것이다.

사람들이 우물 쪽으로 모였다.

우물은 더 이상 생활에 필요한 물을 주지 않았다.

수도가 들어온 뒤, 사람들은 그곳에 모일 이유를 잃었다.

한때 매일 사람들이 만나던 장소는, 이제 잡초와 낙엽 속에 남아 있었다.

법정은 어두운 우물 안을 내려다보았다.

법정

물을 쉽게 얻은 뒤, 우리는 이곳에서 만나던 시간을 잃었습니다.

그렇다면 편리함으로 얻은 시간을, 우리는 어디에 사용하고 있을까요.

정주영은 우물 너머로 보이는 빈 한옥들을 바라보았다.

박완서는 벽이 무너진 한 집의 작은 부엌 창문을 보았다.

신영복은 우물가에 다시 모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김구는 도시로 이어지는 도로와, 산 아래 남겨진 마을을 번갈아 보았다.

풍요는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

그러나 떠난 사람들, 비어 가는 집, 사라진 만남의 자리도 남겼다.

이제 다섯 사람 앞에는 새로운 질문이 놓여 있었다.

발전을 위해 잃은 고향은 다시 살아날 수 있는가.

Topic 3: 발전을 위해 잃어버린 고향을 다시 되찾을 수 있는가?

3. 발전을 위해 잃은 고향을 다시 찾을 수 있는가?

공동 우물 안은 어두웠다.

회관에서 나온 불빛이 돌벽의 윗부분까지만 비추고 있었다. 오래된 두레박은 줄이 끊어진 채 우물가에 놓여 있었다. 나무 손잡이는 닳아 있었고, 쇠로 된 테두리에는 붉은 녹이 슬어 있었다.

수도가 들어오기 전까지, 마을 사람들은 이곳에서 매일 물을 길었다.

아침에는 밥을 짓기 위한 물을 받았고, 낮에는 빨래와 밭일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저녁에는 늦게 돌아온 사람의 안부를 들었다.

불편한 장소였지만, 사람들이 서로의 생활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곳이기도 했다.

지금은 물을 길을 이유가 없었다.

우물 주변에는 잡초가 자랐고, 돌 틈에는 낙엽이 쌓여 있었다.

법정

물을 쉽게 얻은 뒤, 우리는 이곳에서 만나던 시간을 잃었습니다.

그렇다면 편리함으로 얻은 시간을, 우리는 어디에 사용하고 있을까요.

정주영

수도가 들어온 것은 분명한 발전입니다.

사람들이 무거운 물동이를 이고 다니지 않아도 되었고, 깨끗한 물을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불편으로 돌아갈 필요는 없습니다.

박완서

그렇지요.

특히 물을 긷는 일은 대부분 여성의 몫이었을 것입니다.

우물가의 추억만 아름답게 말하면, 그 물의 무게를 매일 감당했던 사람의 몸은 보이지 않습니다.

신영복

우리가 되찾아야 할 것은 두레박을 들고 다시 물을 긷는 생활이 아닙니다.

사람이 특별한 약속 없이도 서로 만날 수 있었던 관계일 것입니다.

김구

한 장소가 사라지면, 그곳에서 이루어지던 행동도 함께 사라집니다.

사람들은 우물만 잃은 것이 아니라, 서로의 사정을 알게 되는 통로 하나를 잃었습니다.

우물 근처에 서 있던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는 사흘만 안 나오면 누가 아픈지 다 알았어요.”

그는 두레박을 발끝으로 살짝 밀었다.

“지금은 옆집 사람이 며칠 안 보여도 여행 갔는지, 병원에 갔는지 모릅니다.”

법정

편리함은 사람을 자유롭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자유롭게 된 시간이 다시 더 많은 일과 소비로 채워졌다면, 우리는 자유를 얻은 것일까요.

정주영

현대의 일은 옛날보다 복잡합니다.

생산과 서비스가 늘고, 세계와 경쟁해야 합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것은 필요합니다.

법정

효율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물을 긷는 시간을 줄였으면, 가족과 이야기할 시간이 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계가 일을 대신했다면, 사람은 조금 더 쉬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사람은 더 바빠졌습니다.

신영복

사라진 불편을 다른 경쟁이 채웠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노동은 줄었지만, 남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한 노동은 늘었습니다.

박완서

가정 안의 노동도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세탁기가 생기고 수도가 들어와도, 누군가는 빨래를 분류하고, 아이의 옷을 챙기고, 노인의 약을 준비합니다.

기계가 줄여 준 시간을 사회가 다시 여성의 책임으로 가져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정주영

기술만으로 행복이 자동으로 생기지는 않는다는 말이군요.

김구

기술은 기회를 줍니다.

그 기회를 어떤 삶으로 바꿀지는 사회의 가치에 달려 있습니다.

사람들이 우물 주위의 낙엽을 치우기 시작했다.

대학생들은 휴대전화로 돌의 모양과 두레박을 촬영했다. 한 학생은 우물 옆에 작은 안내판을 세우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른 주민은 웃으며 물었다.

“관광객한테 보여 주려고?”

학생은 잠시 생각한 뒤 대답했다.

“관광객도 좋지만, 여기 아이들이 먼저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김구

문화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기 전에, 그곳에 사는 사람이 자기 것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신영복

그러려면 설명판만 세워서는 부족합니다.

이곳에서 무엇인가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사람이 앉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이 질문하는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정주영

그렇다면 우물을 복원해 작은 광장처럼 만들 수 있겠습니다.

벤치를 놓고, 지붕을 보수하고, 마을 기록을 전시하는 겁니다.

법정

무엇이든 시설부터 크게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이 실제로 사용할지 먼저 보아야 합니다.

비어 있는 곳을 살린다며 건물을 지었다가, 다시 빈 건물 하나를 남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박완서

맞습니다.

고향을 살린다는 이름으로 외부 사람이 보기 좋은 공간만 만들면, 주민의 생활은 오히려 불편해질 수 있습니다.

예쁜 카페와 숙소가 생겨도, 식료품을 살 가게나 병원으로 가는 교통이 없다면 마을은 살아난 것이 아닙니다.

정주영

사업에는 지속될 수 있는 수입이 필요합니다.

감정만으로는 시설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찾아오고, 지역에서 돈이 돌고, 젊은 사람이 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신영복

그 수입이 누구에게 돌아가는지도 보아야 합니다.

외부 기업이 땅을 사고, 주민은 낮은 임금으로 일하며, 이익은 도시로 빠져나간다면 마을의 이름만 사용한 것입니다.

김구

고향을 상품으로 만드는 것과, 고향을 살아갈 수 있는 곳으로 만드는 것은 다릅니다.

우물 뒤편의 골목을 따라 빈 한옥들이 보였다.

기와가 내려앉은 집.

창호지가 찢어진 집.

마당에 키 큰 풀이 자란 집.

그중 한 채에는 작은 나무 팻말이 붙어 있었다.

‘매매.’

고등학생이 그 집을 바라보며 말했다.

고등학생

저 집은 제 친구 할머니가 살던 곳이에요.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는 아무도 안 들어와요.

친구 부모님은 도시에서 사는데, 고칠 돈도 없고 살 계획도 없대요.

박완서

집은 사람이 떠나면 빠르게 늙습니다.

사람이 매일 문을 열고, 불을 피우고, 비가 새는 곳을 살피는 것이 집을 살게 합니다.

법정

사람도 관계가 끊기면 그렇게 되겠지요.

정주영

빈집을 사용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젊은 사람이 저렴하게 들어와 고치며 살 수 있게 하거나, 일하는 공간으로 바꿀 수도 있습니다.

김구

다만 그 집의 기억을 완전히 지워서는 안 됩니다.

누가 살았고, 어떤 생활이 있었는지 알 수 있다면 새로 들어온 사람도 그 장소를 단순한 부동산으로만 보지 않을 것입니다.

신영복

새로운 사람에게 과거를 짊어지라고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들어온 곳이 아무 역사도 없는 빈 공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하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박완서

고향은 태어난 사람만의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떠난 사람도 있고, 새로 들어온 사람도 있습니다.

그곳에서 생활을 이어 가려는 사람이 관계를 맺는다면, 그 사람도 마을의 일부가 될 수 있습니다.

고등학생

외지 사람이 많이 오면 원래 마을이 없어지지 않을까요?

신영복

변하지 않는 마을은 없습니다.

문제는 누가 변화를 결정하느냐입니다.

주민이 참여하고, 새로 온 사람과 오래 산 사람이 함께 규칙을 만든다면 변화는 공동의 일이 됩니다.

돈을 가진 사람 몇 명이 정하면, 마을은 그들의 사업장이 됩니다.

법정

원래의 모습을 지키겠다고 사람을 막아도 마을은 사라질 수 있습니다.

문을 닫아 둔 집은 보존되는 것이 아니라 썩어 갑니다.

김구

문화는 닫힌 상자 안에서 유지되지 않습니다.

새로운 세대가 질문하고, 바꾸고, 자기 언어로 다시 표현해야 살아 있습니다.

정주영

젊은 사람에게 과거의 방식만 따르라고 하면 들어오지 않을 것입니다.

인터넷으로 일하고 싶어 할 수도 있고, 오래된 집을 현대적으로 고쳐 살고 싶어 할 수도 있습니다.

그 변화를 허용해야 합니다.

박완서

변화가 여성과 아이에게 더 나은 삶을 주는지도 보아야 합니다.

옛집의 아름다움만 살리고, 난방이나 화장실은 불편한 채로 두면 실제로 생활하는 사람에게 부담이 됩니다.

전통을 지키는 일이 다시 누군가의 고생 위에 세워져서는 안 됩니다.

마을의 빵집 주인이 빈 한옥 앞으로 다가왔다.

빵집 주인

저 집을 작업실로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빵 수업도 하고, 마을 농산물로 잼이나 과자를 만드는 공간으로요.

그런데 수리비가 너무 많이 들어요.

집 주인은 빨리 팔고 싶어 하고, 은행은 담보 가치가 낮다고 대출을 꺼립니다.

정주영

좋은 생각이 있어도 자금이 막히는군요.

빵집 주인

지원 사업이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서류가 복잡하고, 지원 기간이 끝난 뒤 운영비는 알아서 해결해야 합니다.

건물만 고쳐 주고 끝나는 경우가 많아요.

신영복

공간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말이 여기에도 해당됩니다.

건물을 수리하는 예산만 있고, 그곳에서 일할 사람이 버틸 수 있는 지원은 부족합니다.

김구

문화 정책도 건물을 남기는 데 집중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건물 안에서 배우고 만들고 이야기할 사람이 없으면 껍데기만 남습니다.

법정

큰돈을 들여 새것처럼 만드는 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닙니다.

필요한 만큼 고치고, 사용하는 사람이 조금씩 손볼 수 있게 하는 편이 오래갈 수도 있습니다.

정주영

사업은 처음부터 완벽하게 만들기보다 작게 시작해 가능성을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빈집 한 채를 시범적으로 고치고, 주민과 청년이 함께 사용해 보는 겁니다.

잘되면 다음 집으로 넓힐 수 있습니다.

박완서

그 과정에서 집주인과 세입자, 오래 산 주민, 새로 온 사람의 권리가 모두 존중되어야 합니다.

고향을 살린다는 명분으로 집값이 올라, 원래 살던 사람이 밀려나는 일도 있습니다.

신영복

마을이 유명해진 뒤 주민이 떠나야 한다면, 재생이 아니라 교체입니다.

잠시 후, 주민 몇 명이 우물 옆으로 낡은 나무 벤치를 옮겨 왔다.

벤치는 회관 창고에 오랫동안 쌓여 있던 것이었다. 다리 한쪽이 조금 짧아 흔들렸지만, 돌을 받치자 앉을 수 있었다.

노인 두 명이 먼저 자리를 잡았다.

아이들은 우물 안을 내려다보다가 어른들에게 옛날 이야기를 물었다.

조금 전까지 죽은 장소처럼 보였던 곳에 대화가 생겼다.

법정

우물을 다시 사용하지 않아도, 우물가가 다시 살아날 수 있군요.

신영복

장소의 기능은 바뀌었지만, 사람을 만나게 하는 역할은 이어질 수 있습니다.

김구

이것이 문화의 재생일 것입니다.

옛날을 그대로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옛 장소가 가진 정신을 오늘의 생활 속에서 다시 쓰는 것.

정주영

작은 시작이지만, 사용되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제 비를 피할 간단한 지붕과 안전한 난간 정도를 생각할 수 있겠군요.

박완서

아이들이 놀 수 있으면서도 노인이 편하게 앉을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구 한 세대만을 위한 장소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물가에 앉은 할머니가 아이들에게 말했다.

“예전에는 여기서 동네 소식을 다 들었어.”

한 아이가 물었다.

“인터넷 없었어요?”

주변에서 웃음이 났다.

“없었지. 대신 누가 밥을 굶었는지, 누가 아기를 낳았는지, 어느 집 소가 아픈지 다 알았어.”

다른 아이가 다시 물었다.

“그럼 비밀이 하나도 없었어요?”

할머니는 크게 웃었다.

“그게 문제였지.”

박완서

저 아이가 중요한 부분을 물었네요.

공동체가 서로를 돌보는 힘과, 서로의 삶을 지나치게 들여다보는 문제는 함께 있었습니다.

신영복

새로운 공동체는 그 둘을 구분해야 합니다.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감시받지는 않는 관계.

사라졌을 때 걱정해 주지만, 다르게 산다고 비난하지 않는 관계.

법정

가까움에도 예의가 필요합니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경계를 넘으면, 사랑이 소유로 변합니다.

김구

국가와 공동체의 관계도 비슷합니다.

국민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삶을 지나치게 통제해서는 안 됩니다.

정주영

회사도 가족처럼 말하면서 개인의 시간을 요구하면 안 됩니다.

관계의 언어를 책임 회피에 이용할 수 있습니다.

우물가의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 드론을 사용하던 청년 농부가 다섯 사람에게 다가왔다.

청년 농부

빈집과 우물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마을을 살리려면 농업도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와서 사진만 찍고 가는 것으로는 일자리가 생기지 않습니다.

정주영

어떤 계획이 있습니까?

청년 농부

마을 농산물을 직접 판매하고, 도시 학교와 연결해 체험 수업을 만들고 싶습니다.

드론과 센서를 이용하면 적은 인원으로 농지를 관리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인터넷은 느리고, 배송비도 비쌉니다.

농지를 빌리는 절차도 복잡합니다.

김구

기술이 있어도 기반이 따라주지 않는군요.

청년 농부

네.

사람들은 청년이 고향을 지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남으려고 하면 모든 위험을 혼자 감당해야 합니다.

박완서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을 값싼 노동으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신영복

지역을 지키는 사람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구조부터 바꾸어야 합니다.

정주영

통신, 물류, 자금, 교육이 연결되어야 합니다.

농업을 옛 방식으로만 생각하면 젊은 사람이 들어올 수 없습니다.

법정

기술이 자연을 더 많이 착취하는 방향으로 사용되지 않도록 경계도 필요합니다.

적은 사람으로 더 많이 생산하는 것만 목표로 하면, 땅이 지칠 수 있습니다.

청년 농부

저도 그 점을 생각합니다.

센서를 쓰면 물과 비료를 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기술이 꼭 자연과 반대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법정

그렇습니다.

기술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무엇을 섬기는지 묻는 것입니다.

김구

과거의 지혜와 현대의 기술이 만나는 곳에서 새로운 고향이 만들어질 수 있겠군요.

신영복

다만 그 지혜를 가진 노인과 기술을 가진 청년이 실제로 만날 수 있어야 합니다.

서로를 뒤처진 사람이나 경험 없는 사람으로 보지 않아야 합니다.

청년 농부는 우물가에 앉은 노인들을 바라보았다.

청년 농부

사실 저 밭의 물길을 어디로 내야 하는지 할아버지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지도에는 나오지 않는 지하수 흐름을 알고 계셨어요.

정주영

데이터와 경험이 함께 쓰인 사례군요.

박완서

그런 대화가 이어지면, 노인은 자신이 쓸모없다고 느끼지 않고, 청년은 모든 것을 혼자 새로 배울 필요가 없습니다.

법정

지식도 물과 같습니다.

흐르지 않으면 고입니다.

아래쪽 길에서 자동차 소리가 들렸다.

검은 승용차 한 대가 마을로 들어와 빈 한옥 앞에 멈췄다.

정장을 입은 남성 두 명이 내려 집과 주변 땅을 살펴보았다.

주민 한 명이 그들에게 다가가 이야기를 나눴다.

잠시 후 주민이 다섯 사람에게 와서 말했다.

“도시의 개발 회사랍니다. 이 일대를 사서 숙박 시설과 카페를 만들 수 있다고 하네요.”

정주영

투자가 들어올 기회일 수 있습니다.

신영복

조건을 보아야 합니다.

박완서

누가 살 곳을 잃는지도요.

법정

마을이 조용하다는 이유로 찾아와, 조용함을 없애는 사업도 있습니다.

김구

지역 주민이 결정 과정에 참여해야 합니다.

외부 자본을 무조건 거부할 필요는 없지만, 마을의 미래를 외부 사람이 혼자 정해서는 안 됩니다.

개발 회사 직원이 주민들과 인사를 나눈 뒤 다섯 사람 쪽으로 걸어왔다.

개발 회사 직원

이 지역은 경치가 좋고, 전통 가옥도 남아 있습니다.

잘 정비하면 관광객이 많이 올 수 있습니다.

일자리도 생길 것입니다.

정주영

지역 주민이 어떤 방식으로 참여하게 됩니까?

개발 회사 직원

공사와 운영 과정에서 고용할 수 있습니다.

농산물도 구매할 수 있고요.

신영복

토지와 건물의 소유권은 누구에게 남습니까?

개발 회사 직원

투자 규모가 크기 때문에 일부는 회사가 매입해야 합니다.

박완서

주민이 나중에 이곳에서 살 수 없을 만큼 집값이 오르면 어떻게 합니까?

직원은 잠시 말을 멈췄다.

개발 회사 직원

그런 문제는 협의할 수 있습니다.

김구

협의가 사업이 결정된 뒤 주민에게 설명하는 절차여서는 안 됩니다.

처음부터 주민이 무엇을 원하는지 들어야 합니다.

법정

사람들이 찾는 아름다움을 만들기 위해, 그 아름다움을 지켜 온 사람을 내보내서는 안 됩니다.

정주영

사업이 지속되려면 주민에게도 장기적인 이익이 있어야 합니다.

단기 고용 몇 자리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공동 소유, 수익 배분, 지역 기업과의 계약 같은 구조를 생각해야 합니다.

개발 회사 직원은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

신영복

마을에는 관광객보다 먼저 주민이 있습니다.

방문객에게 좋은 장소가 되기 전에, 사는 사람에게 좋은 장소여야 합니다.

개발 회사 직원

주민 의견을 듣는 자리를 만들겠습니다.

박완서

여성과 고령자, 청년, 세입자도 참여할 수 있게 해 주세요.

땅을 많이 가진 사람의 의견만 마을 전체의 의견으로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직원은 다시 고개를 숙인 뒤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러 갔다.

청년 농부

개발이 들어오면 길과 인터넷이 좋아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땅값이 오르면 저는 농지를 더 빌리기 어려워질 겁니다.

정주영

발전의 이익과 비용이 다른 사람에게 돌아가는 문제군요.

신영복

그래서 발전과 보존을 단순한 찬반으로 나눌 수 없습니다.

무엇을 만들 것인가보다, 누가 결정하고 누가 이익을 얻으며 누가 부담하는가가 중요합니다.

김구

국가의 발전도 그 질문을 피할 수 없습니다.

수치가 성장해도, 많은 사람이 자기 삶의 자리에서 밀려난다면 발전의 방향을 다시 보아야 합니다.

해가 완전히 산 너머로 내려갔다.

마을에는 가로등과 회관 불빛만 남았다.

빈 한옥의 기와는 어둠 속에서 윤곽만 보였다.

우물가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누군가 따뜻한 차를 가져왔고, 아이들은 벤치 주변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한 아이가 종이에 우물과 느티나무, 빈 한옥, 드론을 함께 그렸다.

박완서

저 아이의 그림에는 옛것과 새것이 함께 있네요.

법정

아이에게는 그것들이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어른들이 전통과 기술, 자연과 경제를 서로 싸우게 만들었는지도 모르지요.

정주영

잘 결합하면 서로를 살릴 수 있습니다.

기술로 자연을 덜 훼손하고, 오래된 집에 새로운 일을 넣고, 관광 수익으로 문화와 생활을 지킬 수 있습니다.

신영복

결합하는 과정이 공정해야 합니다.

한쪽이 다른 쪽을 장식품으로 사용하는 관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김구

문화는 사업의 배경이 아니며, 자연은 개발의 빈 땅이 아닙니다.

그곳에는 이미 삶이 있습니다.

고등학생이 아이의 그림을 내려다보다 말했다.

고등학생

고향을 되찾는다는 건, 옛날처럼 만드는 게 아니군요.

박완서

옛날처럼 만들 수 없기도 하고, 그렇게 할 필요도 없습니다.

고등학생

그럼 무엇을 되찾는 거예요?

신영복

여기서 살아도 괜찮다는 가능성.

떠났다가 돌아와도 받아들여지는 관계.

도움이 필요할 때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는 신뢰.

법정

사람이 자연과 자기 시간을 모두 잃지 않고 살 수 있는 여유.

정주영

일하고 배우며 도전할 수 있는 기반.

김구

자기의 문화와 장소를 부끄러워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세상과 연결될 수 있는 자신감.

고등학생은 빈 한옥과 빵집 주인, 청년 농부를 차례로 바라보았다.

고등학생

그런 마을이 되면 저도 돌아오고 싶을 수 있겠네요.

박완서

돌아오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돌아올 수 있는 문이 닫혀 있지 않은 것입니다.

신영복

그리고 남아 있는 사람도 뒤처졌다는 느낌 없이 살 수 있어야 합니다.

법정

사람은 떠날 자유와 머물 자유를 함께 가져야 합니다.

정주영

그 자유를 현실로 만들려면 일이 필요합니다.

말뿐인 환영으로는 부족합니다.

김구

그 일을 만드는 과정에서 마을의 기억과 사람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우물가의 노인이 아이의 그림을 보며 말했다.

“저 빈집에 사람들 다시 살면 좋겠네.”

빵집 주인이 웃으며 답했다.

“먼저 한 채부터 고쳐 볼까요?”

청년 농부가 말했다.

“제가 인터넷 판매와 농산물 체험 프로그램을 같이 생각해 볼게요.”

대학생은 마을의 기록 영상을 만들겠다고 했다.

고등학생은 학교 친구들에게 빈집 활용 아이디어를 물어보겠다고 말했다.

누구도 마을을 완전히 되살릴 계획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서로 다른 생각이 처음으로 한 장소에 놓이기 시작했다.

법정

죽은 장소를 살리는 것은 큰 건물을 세우는 일보다, 다시 관계를 흐르게 하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신영복

사람과 사람 사이에 길을 만들고, 과거와 현재 사이에 길을 만들고, 도시와 마을 사이에 길을 만드는 것.

정주영

그 길 위에 실제 사업과 일자리를 올려야 합니다.

박완서

그 길을 만들면서 약한 사람을 밀어내지 않아야 합니다.

김구

그래야 고향이 기억 속의 장소가 아니라, 미래가 시작될 수 있는 장소가 됩니다.

마을회관 직원은 우물 옆에 임시로 세운 작은 종이에 글을 적었다.

‘이곳에서 살고 싶은 사람들의 생각을 모읍니다.’

그 아래에는 빈집 활용, 농업, 돌봄, 교통, 문화, 교육이라는 항목이 적혔다.

주민들은 하나씩 의견을 쓰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은 작은 진료소가 필요하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아이들이 방과 후에 머물 곳을 원했다.

한 노인은 도시로 간 자녀와 영상 통화를 배울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적었다.

청년은 공동 작업실과 빠른 인터넷을 적었다.

박완서는 그 종이를 바라보았다.

박완서

고향은 집과 산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사람이 여기서 어떤 하루를 살 수 있는지가 고향을 결정합니다.

신영복

그리고 그 하루를 누군가 혼자 만들 수는 없습니다.

법정

필요하지 않은 욕심은 줄이고, 꼭 필요한 관계는 다시 만들어야 합니다.

정주영

가능성을 계획과 실행으로 옮겨야 합니다.

김구

그 과정에서 이곳이 누구의 삶이었고, 누구의 미래가 될지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밤이 깊어지자 주민들은 하나씩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우물가의 벤치에는 따뜻한 차를 마신 종이컵 몇 개가 남아 있었다.

아이들이 그린 그림은 회관 벽에 붙었다.

어두운 우물은 여전히 물을 주지 않았다.

빈 한옥도 아직 비어 있었다.

인터넷도 느렸고, 일자리도 충분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해결된 것은 없었다.

하지만 우물가에는 오랜만에 사람들이 모였고, 빈집은 버려진 건물이 아니라 새로운 질문이 되었으며, 마을을 떠날 생각만 하던 고등학생은 돌아올 가능성을 처음으로 말해 보았다.

그때 긴 식탁을 정리하던 박완서가 주변을 둘러보다가 물었다.

박완서

그런데 아까 식사를 시작할 때부터 보이지 않는 분이 한 분 계시지 않았습니까?

주민들이 서로 얼굴을 바라보았다.

마을 끝집에 혼자 사는 노인이 오늘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제야 떠올렸다.

누군가는 몸이 좋지 않다고 했고, 다른 사람은 며칠 전까지는 괜찮았다고 말했다.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었다.

신영복은 다시 우물 안을 내려다보았다.

예전에는 사흘만 보이지 않아도 모두가 알았다는 노인의 말이 떠올랐다.

신영복

우리는 마을을 살리는 이야기를 오래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마을 안에서 혼자 아픈 사람조차 놓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우물가에 모였던 사람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관광과 빈집, 농업과 기술, 문화와 발전을 이야기하는 동안, 한 사람의 부재는 긴 식탁에서 조용히 비어 있었다.

공동체를 되살린다는 것은 장소를 고치는 것만으로 가능한가.

사람이 많이 모인 자리에서도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공동체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마을 청년 몇 명이 음식을 담은 그릇과 손전등을 챙겼다.

그들은 혼자 사는 노인의 집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다섯 사람도 그 뒤를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Topic 4: 한 사람의 성공보다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4. 한 사람의 성공보다 함께 살아가는 사회

마을 청년 세 명이 손전등과 음식을 담은 그릇을 들고 골목 끝으로 향했다.

다섯 사람도 그 뒤를 따랐다.

혼자 사는 노인의 집은 마을회관에서 멀지 않았다. 그러나 오래된 돌담과 빈집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따라가야 했다.

밤이 깊어지자 낮에는 익숙해 보였던 마을도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다.

가로등이 없는 골목은 어두웠고, 무너진 담 아래에는 잡초가 길게 자라 있었다. 비가 오면 미끄러질 듯한 돌계단도 있었다.

청년 한 명이 휴대전화 불빛으로 바닥을 비추었다.

청년

어르신이 이 길을 매일 혼자 다니셨던 건가요?

뒤따라오던 주민이 대답했다.

“예. 장을 보러 갈 때도, 병원에 갈 때도요.”

박완서

사람이 혼자 산다는 것과, 모든 일을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집이 따로 있다는 이유로 생활의 위험까지 개인의 몫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노인의 집 앞에 도착했지만 불은 꺼져 있었다.

청년이 문을 두드렸다.

“어르신, 저희 왔습니다.”

대답이 없었다.

다시 조금 더 크게 불렀다.

안쪽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뒤 문이 아주 조금 열렸다.

노인의 얼굴이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

노인

이 밤에 무슨 일이오?

청년

오늘 마을회관에 안 나오셔서 걱정돼서 왔습니다.

몸은 괜찮으세요?

노인은 문을 조금 더 열었다.

노인

괜찮소. 며칠 전부터 무릎이 좀 아파서 못 갔을 뿐이오.

청년은 들고 온 그릇을 내밀었다.

청년

저녁 음식 가져왔어요.

노인

이런 걸 왜 가져와. 나 먹을 것 있소.

노인은 그릇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

박완서

어르신이 음식을 받을 수 있도록 가져온 것이 아니라, 오늘 함께 먹지 못해서 아쉬워서 가져온 것입니다.

노인은 박완서를 바라보았다.

노인

사람 많은 데 가면 괜히 신세 지는 것 같아서 싫소.

다리가 아프다고 하면 누가 데리러 오고, 누가 자리 내주고, 누가 집에 데려다줘야 하잖소.

신영복

도움을 받는 일이 왜 신세가 되는 것일까요.

노인

다들 자기 일도 바쁜데, 늙은 사람 하나 때문에 시간을 쓰게 하니까 그렇지.

법정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의 시간을 받으며 살아왔습니다.

어릴 때 누군가 밥을 먹여 주었고, 아플 때 누군가 곁을 지켰습니다.

지금 도움을 받는다고 해서 어르신의 삶이 빚으로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노인

말은 그렇지만, 받기만 하면 마음이 불편하오.

정주영

받기만 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마을 사람들은 어르신에게 배운 것이 있을 것입니다.

노인은 웃었다.

노인

내가 뭘 가르쳤다고.

뒤에 있던 청년 농부가 앞으로 나왔다.

청년 농부

지난봄에 제가 밭의 물길을 잘못 잡았을 때, 어르신이 알려 주셨잖아요.

그 말 안 들었으면 비 올 때 밭이 다 잠겼을 겁니다.

다른 청년이 말했다.

다른 청년

저 어릴 때 자전거 체인 빠지면 늘 고쳐 주셨어요.

노인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신영복

사람이 공동체 안에서 주고받는 것은 같은 모양이 아닙니다.

어떤 때는 음식을 주고, 어떤 때는 지식을 줍니다.

어떤 때는 힘을 빌려주고, 어떤 때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모두 돈이나 시간으로 정확히 맞출 수는 없습니다.

박완서

문제는 도움을 받는 사람이 자꾸 미안해하게 만드는 사회입니다.

아픈 사람이 미안해하고, 늙은 사람이 미안해하고,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 미안해합니다.

도움이 필요한 순간은 누구에게나 오는데도요.

노인은 마침내 그릇을 받았다.

노인

그럼 이건 내일 그릇 씻어서 가져다주겠소.

박완서

천천히 하세요.

노인

그 정도는 내가 해야지.

사람들이 웃었다.

노인은 잠시 망설이다가 문을 더 열었다.

노인

차라도 한 잔 하고 갈 거요?

작은 방 안에는 오래된 가구와 약봉지가 놓여 있었다.

벽에는 가족사진이 걸려 있었다. 자녀들과 손주들은 모두 도시에서 사는 듯했다.

탁자 위에는 뜯지 않은 병원 안내문이 있었다.

신영복

병원에는 다녀오셨습니까?

노인

예약을 했는데 취소했소.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하고, 돌아오는 시간도 맞지 않아서.

정주영

진료를 받을 수 있어도 이동할 방법이 없으면, 의료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 크게 다르지 않군요.

김구

국가는 병원을 세우는 것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 병원까지 갈 수 없는 사람에게 의료는 지도 위의 시설일 뿐입니다.

법정

마을이 사람을 지킨다는 것은, 그 사람이 문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돕는 일도 포함되겠지요.

박완서

혼자 사는 노인의 문제가 외로움만은 아닙니다.

교통.

식사.

의료.

집의 안전.

약을 챙기는 일.

하나씩은 작아 보이지만, 모두 혼자 감당하면 삶 전체가 무거워집니다.

노인은 가족사진을 바라보았다.

노인

아이들이 오라고 합니다.

도시로 와서 같이 살자고요.

그런데 내가 가면 아이들 생활도 불편해질 거고, 나도 여기서 알고 지낸 사람들을 다 놓아야 하오.

신영복

가족과 함께 사는 것만이 유일한 답은 아닙니다.

자기 집에서 살면서도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정주영

그 도움을 매번 이웃의 선의에만 맡길 수도 없습니다.

오늘은 청년들이 왔지만, 모두 도시로 돌아가면 누가 계속 확인할까요.

법정

선의는 귀하지만, 계속 사용하면 지칩니다.

좋은 마음을 오래 지키려면 부담을 나누는 방법이 필요합니다.

김구

공동체는 희생을 요구하는 장소가 아니라, 희생이 한 사람에게 몰리지 않도록 하는 구조여야 합니다.

청년 중 한 명이 휴대전화에 무언가를 적었다.

청년

마을 사람들끼리 안부 확인표를 만들면 어떨까요?

혼자 사는 분들께 하루에 한 번씩 전화하거나 방문하는 겁니다.

박완서

누가 담당합니까?

청년

저희가 돌아가면서 하면…

그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자신도 평일에는 도시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떠올린 듯했다.

신영복

좋은 생각입니다.

다만 누가 언제까지 할 수 있는지를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한 사람의 열정으로 시작한 일이 그 사람이 바빠지거나 지치면 끝나서는 안 됩니다.

정주영

지역에 돌봄을 담당하는 사람을 고용할 수도 있습니다.

단순히 봉사로 보지 말고, 필요한 기술과 책임을 가진 일로 인정해야 합니다.

박완서

돌봄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의 몸과 마음을 살피고, 약과 식사를 확인하고, 응급 상황을 판단해야 합니다.

그런 일을 사랑이나 여성의 본능이라는 말로 값없이 맡겨 왔습니다.

법정

마음을 돈으로 계산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노동의 값을 주지 않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김구

사회의 품격은 돌봄을 받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뿐 아니라, 돌보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에도 드러납니다.

노인은 조용히 차를 따랐다.

노인

내가 젊었을 때는 이런 걸 다 집에서 했소.

아픈 부모는 자식이 모셨고, 아이는 할머니가 키웠지.

박완서

그 가족 안에서 누가 가장 많은 일을 했는지도 보아야 합니다.

대개 여성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사랑해서 한 일도 있지만, 다른 선택이 없어서 한 일도 많았습니다.

노인

그때는 다 그렇게 살았으니까.

박완서

바로 그 말 때문에 보이지 않게 된 고생이 있습니다.

모두가 그렇게 했다고 해서, 힘들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신영복

과거의 가족은 많은 사람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모든 책임을 가족에게 돌리면, 가족이 없는 사람은 보호받지 못합니다.

가족이 있어도 관계가 좋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좋은 사회는 가족을 대신하는 사회가 아니라, 가족만으로 감당할 수 없는 것을 함께 맡는 사회입니다.

정주영

기업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직원의 부모가 아프고 아이가 돌봄이 필요할 때, 그것을 개인의 사정으로만 취급하면 노동자는 결국 일을 포기하거나 가족을 포기해야 합니다.

김구

사람이 국민이나 노동자이기 전에, 부모이고 자녀이며 때로는 환자라는 사실을 제도가 받아들여야 합니다.

노인은 다섯 사람을 차례로 보았다.

노인

나 때문에 너무 큰 이야기를 하는 것 같소.

법정

큰 이야기는 언제나 한 사람의 생활에서 시작합니다.

숫자만 보면 노인 인구의 문제입니다.

문을 열고 얼굴을 보면, 무릎이 아파 식사 자리에 오지 못한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잠시 뒤 사람들은 노인의 집을 나왔다.

청년 한 명은 다음 주 병원에 갈 때 차를 마련하겠다고 했다.

노인은 계속 괜찮다고 말했지만, 이번에는 완강하게 거절하지 않았다.

돌아가는 길에 박완서가 말했다.

박완서

우리는 마을회관에서 공동체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공동체가 필요한 사람은 그 자리에 오지 못했습니다.

신영복

사람들이 모인 곳만 보고 공동체가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오지 않은 사람.

말하지 않는 사람.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사람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법정

도움을 청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자존심 때문만은 아닙니다.

거절당할까 두렵고, 부담을 줄까 두렵고, 나중에 갚으라는 말을 들을까 두렵습니다.

김구

그러므로 도움을 권리로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누군가의 호의를 얻어야만 받을 수 있다면, 사람은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정주영

권리가 되려면 비용과 인력이 필요합니다.

누가 그 일을 맡고, 어떻게 지속할지 정해야 합니다.

감동적인 하루의 방문으로 끝낼 수는 없습니다.

마을회관으로 돌아오자, 주민들이 아직 긴 탁자를 정리하고 있었다.

청년들은 노인의 상태를 설명했고, 자연스럽게 대화가 시작되었다.

“아침마다 전화해 보는 게 어떨까요?”

“전화만으로 괜찮은지 알 수 있을까요?”

“마을 차량을 마련할 수 없을까요?”

“누가 운전하지요?”

“읍내 복지센터와 연결해 보면 어떨까요?”

여러 의견이 한꺼번에 나왔다.

신영복

먼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한 사람의 이름을 우연히 떠올리는 방식으로는 빠지는 사람이 생깁니다.

박완서

도움을 받는 사람의 동의도 필요합니다.

혼자 산다는 이유로 매일 감시받는 느낌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법정

돌봄과 간섭의 경계를 잘 지켜야 합니다.

안부를 묻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 사람의 삶을 대신 결정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정주영

선택할 수 있는 방식이 여러 개면 좋겠습니다.

전화.

방문.

식사 배달.

병원 이동.

필요한 사람은 필요한 도움만 받을 수 있게 하는 겁니다.

김구

그리고 지원을 받는 사람을 특별한 약자로 표시하지 않아야 합니다.

누구나 나이가 들고, 누구나 아플 수 있습니다.

오늘의 수혜자가 내일은 다른 사람을 돕는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마을의 빵집 주인이 빈 그릇을 모으다 말했다.

빵집 주인

제 가게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빵을 조금 더 구워서 혼자 사는 분들께 보낼 수 있어요.

정주영

좋은 제안입니다.

비용은 어떻게 합니까?

빵집 주인

처음에는 제가…

정주영

그렇게 시작하면 오래가기 어렵습니다.

마을이 구매하거나, 지역 사업으로 계약해야 합니다.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 손해를 보게 해서는 안 됩니다.

빵집 주인은 조금 놀란 듯했다.

빵집 주인

돈을 받으면 좋은 뜻이 약해 보이지 않을까요?

박완서

왜 그렇습니까?

정당한 값을 받으면서도 좋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계속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책임 있는 방식일 수 있습니다.

신영복

선의와 보상은 반대가 아닙니다.

문제는 사람의 어려움을 이용해 지나친 이익을 얻는 것입니다.

필요한 노동에 정당한 값을 주는 것은 공동체를 지키는 일입니다.

법정

무료라는 말이 언제나 깨끗한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대신 값을 치르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때 마을회관 안에서 한 중년 여성이 나왔다.

그녀는 하루 종일 음식을 준비하고 설거지한 주민이었다.

중년 여성

좋은 말씀들인데요.

오늘 음식 준비도 늘 하던 사람들만 했습니다.

남자들은 돌담을 고쳤고, 우리는 아침부터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들고, 지금 설거지까지 하고 있어요.

사람들은 잠시 조용해졌다.

박완서

바로 이런 말이 필요했습니다.

중년 여성

다들 공동체라고 말하지만, 공동체 행사가 열리면 여자는 부엌으로 갑니다.

회의는 밖에서 하고, 결정도 밖에서 합니다.

우리는 밥을 차리느라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도 모릅니다.

신영복

함께 모였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참여한 것은 아니었군요.

정주영

일의 분배부터 다시 보아야겠습니다.

중년 여성

돌담 쌓는 일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닙니다.

음식 만드는 일도 중요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한쪽은 마을을 위해 일했다고 칭찬받고, 다른 쪽은 원래 하는 일처럼 여겨집니다.

박완서

보이지 않는 노동이 공동체를 떠받치고 있었습니다.

김구

나라와 사회가 높은 이상을 말할 때, 그 이상을 가능하게 만든 일상의 노동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법정

공동체가 누군가의 침묵과 희생 위에 서 있다면, 겉으로는 따뜻해 보여도 안에서는 무너지고 있습니다.

한 남성 주민이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일부터가 아니라, 지금 설거지부터 같이 합시다.”

몇몇 남성들이 회관 안으로 들어갔다.

중년 여성은 웃었지만, 곧 다시 말했다.

중년 여성

오늘 한 번 설거지한다고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다음 행사 준비할 때부터 역할을 같이 정해야 해요.

신영복

행동을 구조로 바꾸어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중년 여성

예. 좋은 마음이 오래가려면요.

그녀는 다시 회관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창문 너머로 남녀가 함께 그릇을 씻고 닦는 모습이 보였다.

정주영

사람들은 성공한 기업가가 사회에 무엇을 돌려줘야 하는지 자주 묻습니다.

기부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회사 안에서 노동을 공정하게 나누고, 안전한 환경을 만들고, 정당한 임금을 주는 일이 먼저입니다.

박완서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족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보다, 설거지와 돌봄을 실제로 나누는 것이 더 분명한 사랑일 수 있습니다.

김구

국가의 품격도 선언보다 일상에서 드러납니다.

가장 눈에 띄지 않는 일을 누가 맡고 있는가.

그 노동이 존중받는가.

도움을 받는 사람이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가.

법정

사람이 많이 가진 뒤 일부를 나누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처음부터 다른 사람의 몫을 빼앗지 않는 삶이 필요합니다.

신영복

성공은 혼자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사회에 대한 책임이 작아집니다.

한 사람의 성공에는 학교, 도로, 가족의 지원, 동료의 노동, 사회의 안정이 들어 있습니다.

받은 것이 보이면 돌려주는 일도 자연스러워집니다.

정주영

다만 성공한 사람만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각자가 자기 자리에서 책임을 가져야 합니다.

박완서

책임의 크기는 같지 않습니다.

권한과 자원이 큰 사람에게는 더 큰 책임이 있습니다.

회사 대표와 시간제 노동자가 같은 책임을 가진다고 말하면 공정하지 않습니다.

정주영

맞습니다.

결정할 힘이 큰 사람은 결과에 대해서도 더 많이 책임져야 합니다.

마을의 대학생들이 우물 옆에 세워 둔 종이판을 가져왔다.

그들은 주민들의 의견을 정리하고 있었다.

한쪽에는 ‘빈집과 일자리’가 적혀 있었고, 다른 쪽에는 ‘교통과 돌봄’, ‘아이들과 교육’, ‘마을의 기억’이 적혀 있었다.

대학생 한 명이 새로운 항목을 추가했다.

‘누가 일을 맡고 있는가?’

신영복

좋은 질문입니다.

공동체의 목적만큼, 그 일을 누가 담당하는지도 보아야 합니다.

법정

늘 같은 사람이 책임진다면, 공동체는 그 사람의 선의를 먹고 자라는 셈입니다.

박완서

그리고 그 사람이 여성, 며느리, 딸, 가장 착한 이웃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김구

희생을 미덕으로만 칭찬하면, 사회는 희생을 줄일 이유를 잃습니다.

정주영

봉사와 고용을 구분하는 기준도 필요하겠습니다.

자발적으로 잠깐 돕는 일과, 정기적으로 전문적인 책임을 지는 일은 다릅니다.

후자에는 보상이 따라야 합니다.

주민들은 작은 원을 만들어 앉았다.

처음에는 몇몇 사람만 말했지만, 대학생들이 종이와 펜을 나누어 주자 직접 말하기 어려운 사람들도 의견을 적기 시작했다.

한 할머니는 병원 차량이 필요하다고 썼다.

어린아이를 키우는 부부는 주말 돌봄 공간을 원했다.

중년 여성은 공동 식사 준비를 당번제로 하자고 적었다.

청년 농부는 홀로 사는 노인과 농작업을 연결해, 노인의 경험을 배우고 정당한 자문료를 드리자는 의견을 냈다.

빵집 주인은 식사와 간식을 공급하는 작은 지역 계약을 제안했다.

고등학생은 마을 앱을 만들 수 있는지 학교 친구들과 알아보겠다고 적었다.

법정

기술로 사람을 연결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화면의 확인 표시가 사람의 얼굴을 대신해서는 안 됩니다.

고등학생

앱에서 안부를 누르지 않으면 누군가 전화하게 하면 어떨까요?

신영복

좋은 방법일 수 있습니다.

다만 휴대전화를 잘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도 포함해야 합니다.

박완서

연락이 없을 때 바로 집으로 찾아가도 되는지, 먼저 어떤 동의를 받을지도 정해야 합니다.

정주영

기술과 사람의 방문을 함께 두면 되겠습니다.

모두에게 같은 방식을 강요하지 않고요.

김구

중요한 것은 효율만 높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존엄을 지키는 것입니다.

주민 한 명이 물었다.

“이런 일을 시작하려면 돈이 얼마나 필요할까요?”

정주영은 종이판을 바라보았다.

정주영

모든 일을 한 번에 시작할 필요는 없습니다.

먼저 가장 시급한 것부터 정해야 합니다.

혼자 사는 주민의 명단과 필요한 지원을 확인하고, 병원 이동을 시범적으로 운영하며, 공동 식사를 한 달에 한 번 시작할 수 있습니다.

신영복

우선순위를 정할 때 당사자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그 사람이 실제로 원하는 것은 다를 수 있습니다.

박완서

도움을 주는 사람이 중심이 되면, 받는 사람의 생활이 계획에 맞춰지게 됩니다.

법정

도움은 상대를 내 뜻대로 움직이게 하는 일이 아닙니다.

김구

공동체는 구성원을 보호하지만, 그들의 자유도 보호해야 합니다.

아까 방문했던 노인의 집 방향에서 작은 불빛이 보였다.

노인이 손전등을 들고 천천히 마을회관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청년들이 급히 달려가 부축하려 했지만, 노인은 손을 저었다.

노인

천천히 가면 되오.

사람들은 그가 앉을 자리를 마련했다.

노인은 긴 탁자의 끝에 앉았다.

노인

집에서 혼자 먹으려니까 음식 맛이 안 나서 왔소.

주변에서 웃음이 났다.

누군가 따뜻한 국을 다시 데워 왔다.

신영복

어르신은 어떤 도움이 가장 필요하십니까?

노인

날마다 찾아오는 건 싫소.

내가 감시받는 것 같을 테니까.

사흘에 한 번쯤 전화해 주면 좋겠고, 병원 갈 때 차가 있으면 좋겠소.

그리고…

노인은 잠시 멈췄다.

노인

가끔 여기서 같이 밥이나 먹으면 되오.

대학생이 종이에 그의 말을 그대로 적었다.

법정

당사자에게 물으니 필요한 것이 분명해지는군요.

박완서

우리는 외로움을 해결해 주겠다고 생각했지만, 어르신은 매일의 방문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김구

보호와 통제의 경계를 당사자가 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주영

이제 필요한 서비스의 형태도 더 구체적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노인은 종이판을 보다가 ‘농업 자문’이라는 글을 발견했다.

노인

농사 자문은 내가 할 수 있소.

공짜로는 안 하오.

사람들이 다시 웃었다.

청년 농부

당연히 자문료를 드려야죠.

노인

비싸게 받을 거요.

청년 농부

먼저 밭을 살리고 나서 협상하시죠.

두 사람의 농담에 분위기가 한결 가벼워졌다.

신영복

도움을 받는 사람과 도움을 주는 사람을 고정해서 나누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노인은 교통 지원을 받을 수 있고, 동시에 농사의 지식을 나눌 수 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돌봄을 받으면서, 다른 날에는 공동 식사를 도울 수 있습니다.

박완서

사람을 약한 사람, 강한 사람으로 영원히 나누면 존엄이 상합니다.

모든 사람은 어떤 부분에서는 도움이 필요하고, 다른 부분에서는 누군가를 도울 수 있습니다.

법정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에게서 배웁니다.

받는 것은 수동적인 일이 아닙니다.

상대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것도 관계를 만드는 일입니다.

김구

나라의 힘도 모든 국민을 스스로 해결하는 강한 사람으로 만드는 데 있지 않습니다.

서로 의지해도 존엄을 잃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데 있습니다.

정주영

그 관계가 지속되려면 책임과 비용을 투명하게 나누어야 합니다.

누가 얼마나 일했고, 어떤 자원이 필요한지 숨기지 말아야 합니다.

한 주민이 작은 상자를 탁자 위에 놓았다.

“마을 돌봄 기금부터 만들어 볼까요?”

몇몇 사람이 지갑을 꺼내려 했다.

정주영이 손을 들어 잠시 멈추게 했다.

정주영

기부는 시작에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모든 책임을 모금에 맡기면 안 됩니다.

지자체의 지원이 있는지 확인하고, 지역 사업과 연결하고, 안정적인 예산을 만들어야 합니다.

김구

공공의 책임을 개인의 선행으로 대신해서는 안 됩니다.

신영복

기부는 관계를 열 수 있지만, 권리를 보장하지는 못합니다.

도움을 받을 자격이 기부자의 기분에 달려서는 안 됩니다.

법정

그러나 돈을 내는 사람의 마음을 가볍게 볼 필요도 없습니다.

제도와 마음은 서로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지켜 주어야 합니다.

박완서

제도가 있어도 사람이 무관심하면 누락이 생깁니다.

마음만 있고 제도가 없으면 같은 사람이 지칩니다.

두 가지가 함께 가야 합니다.

주민들은 상자를 치우지 않았다.

대신 상자 옆에 종이를 놓고, 기부금뿐 아니라 사용할 수 있는 시간, 차량, 기술, 공간을 적기로 했다.

누군가는 매주 두 시간을 적었다.

누군가는 병원 이동에 쓸 수 있는 승합차를 적었다.

빵집 주인은 식사 준비가 가능한 날짜를 적었다.

대학생들은 기록과 연락을 맡겠다고 했다.

중년 여성들은 다음 행사부터 음식 준비와 정리를 전 주민이 나누는 기준을 만들겠다고 했다.

노인은 농업 경험과 오래된 마을 이야기를 적었다.

신영복

공동체는 모두가 같은 것을 내는 곳이 아니군요.

각자가 가진 것을 조금씩 내고, 필요한 것을 부끄럽지 않게 받는 곳입니다.

법정

많이 가진 사람이 적게 내고, 적게 가진 사람이 몸으로 메우는 일이 없도록 살펴야 합니다.

정주영

능력과 권한이 큰 사람은 더 큰 몫을 맡아야 합니다.

박완서

그리고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노동을 먼저 보이게 해야 합니다.

김구

국가의 아름다움은 높은 건물에만 있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 쓰러졌을 때, 그 사람을 일으키는 데 여러 손이 자연스럽게 모이는 모습에도 있습니다.

회관 창문 안에서는 설거지가 거의 끝나 가고 있었다.

밖에서는 아이들이 종이판 옆에 작은 그림을 붙였다.

그림에는 긴 식탁이 있었다.

식탁에는 노인, 아이, 부모, 청년, 휠체어를 탄 사람, 외국에서 온 사람처럼 보이는 인물까지 함께 앉아 있었다.

고등학생이 그림을 보며 말했다.

고등학생

모두 친해야 공동체인가요?

신영복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좋은 공동체는 모두가 가족처럼 가까운 곳이 아닙니다.

서로 다르고, 때로는 불편해도, 필요한 순간에 상대를 사람으로 대할 수 있는 곳입니다.

법정

가까워지라고 강요하지 않으면서, 외면하지 않는 관계입니다.

박완서

싫어하는 사람도 아프면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친한 사람만 보호받는다면 공동체가 아니라 사적인 모임입니다.

정주영

규칙이 필요한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기회를 주고, 익숙한 사람에게만 지원하면 공정하지 않습니다.

김구

국가도 국민에게 같은 생각과 같은 삶을 요구해서는 안 됩니다.

차이를 품고도 함께 살아갈 수 있을 때 문화는 깊어집니다.

고등학생은 그림 아래에 한 문장을 적었다.

‘모두 친하지 않아도, 아무도 버려지지 않는 마을.’

사람들은 그 문장을 읽었다.

박완서

아주 좋은 말입니다.

법정

친밀함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책임은 놓지 않는군요.

신영복

현대의 공동체가 찾아야 할 모습에 가깝습니다.

정주영

그 말을 실제 사업과 역할로 바꾸는 것이 우리의 다음 일입니다.

김구

그리고 그 원칙을 마을 밖의 사회에도 넓혀야 합니다.

밤이 더 깊어졌다.

주민들은 다음 주에 다시 모여 돌봄과 교통, 공동 식사 계획을 구체적으로 정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회의를 준비하는 사람과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을 따로 나누지 않고, 모든 역할을 함께 배분하기로 했다.

혼자 사는 노인은 청년 농부와 병원 날짜를 맞추기로 했다.

빵집 주인은 마을 식사 공급 계획을 계산해 보기로 했다.

대학생들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조사하기 전에, 어떤 질문을 해도 되는지 당사자들과 먼저 상의하기로 했다.

고등학생은 마을 앱을 만들기 전에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는 주민의 의견부터 듣겠다고 했다.

아무것도 완성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한 번의 음식 배달이, 한 사람을 돕는 일에서 끝나지 않았다.

누가 빠져 있었는지.

누가 보이지 않는 일을 하고 있었는지.

도움을 어떻게 권리로 만들지.

선의를 어떻게 지속 가능한 일로 바꿀지.

공동체가 사람을 돌보면서도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새로운 질문들이 마을 안에 남았다.

주민들이 돌아가기 시작했을 때, 김구는 긴 식탁 앞에 멈춰 섰다.

김구

한 나라가 강하다는 것은, 성공한 사람이 많다는 뜻만은 아닐 것입니다.

실패한 사람에게 다시 기회가 있고, 아픈 사람이 버려지지 않으며, 돌보는 사람이 소진되지 않는 나라가 강한 나라입니다.

정주영

한 사람의 성공이 사회의 성공이 되려면, 그 성공이 다른 사람의 기회를 넓혀야 합니다.

박완서

가족과 여성의 보이지 않는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아야 합니다.

법정

많이 가진 것을 나누는 데서 끝나지 않고, 처음부터 다른 사람의 몫을 지나치게 차지하지 않는 절도가 필요합니다.

신영복

그리고 공동체는 누군가를 같은 사람으로 만드는 일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들이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설 자리를 함께 마련하는 일입니다.

노인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에는 혼자 집으로 가겠다고 했다.

청년들은 그 뜻을 존중하되, 골목 입구까지만 함께 걷기로 했다.

노인은 지팡이를 짚고 어린 느티나무 앞을 지나갔다.

그는 잠시 묘목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노인

저 나무가 크면 이 식탁까지 그늘이 오겠구먼.

고등학생

그때는 저희가 어른이 되어 있을 거예요.

노인

그럼 그늘 아래 자리를 잘 나눠 쓰시오.

노인은 웃으며 골목으로 향했다.

사람들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오래된 느티나무와 작은 묘목을 함께 올려다보았다.

큰 나무 아래의 그늘은 모두에게 열려 있었다.

그러나 나무 가까이에 앉은 사람만 그늘을 누릴 수 있었다.

멀리 있는 사람에게는 자리를 내어 주거나, 새로운 나무를 심어야 했다.

신영복은 조용히 말했다.

신영복

미래의 공동체도 이 그늘과 같을 것입니다.

따뜻한 마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누가 그늘 밖에 있는지 보고, 그 사람이 들어올 수 있도록 자리를 바꾸어야 합니다.

김구는 어린 묘목을 바라보았다.

김구

그렇다면 우리가 100년 후의 아이들에게 남겨야 할 나라는 어떤 나라여야 할까요.

경제적으로 강한 나라.

문화를 지키는 나라.

자연을 아끼는 나라.

서로를 돌보는 나라.

이 모든 것을 함께 남길 수 있을까요.

법정은 밤하늘과 느티나무 가지 사이를 바라보았다.

법정

먼저 무엇을 더 가질 것인가보다, 무엇을 잃어서는 안 되는지 물어야 할 것입니다.

박완서는 비워진 식탁의 자리를 바라보았다.

박완서

그리고 누구의 삶과 이름이 역사에서 빠져 있는지도 물어야 합니다.

정주영은 주민들이 적은 계획표를 접어 회관 안으로 옮겼다.

정주영

묻는 데서 멈추지 않고, 내일부터 무엇을 만들 것인지 정해야 합니다.

신영복은 고등학생이 쓴 문장을 다시 읽었다.

‘모두 친하지 않아도, 아무도 버려지지 않는 마을.’

신영복

어쩌면 한 나라의 미래도 이 한 문장에서 시작할 수 있겠습니다.

마을회관의 마지막 불빛이 꺼지기 전, 어린 느티나무의 가느다란 그림자가 오래된 나무의 큰 그림자 안으로 들어갔다.

과거가 만든 그늘 속에서, 아직 오지 않은 미래가 조용히 자라고 있었다.

Topic 5: 100년 후의 아이들에게 어떤 대한민국을 남기고 싶은가?

5. 100년 후의 아이들에게 남길 대한민국

마을회관의 마지막 불빛이 꺼지기 전, 어린 느티나무의 가느다란 그림자가 오래된 나무의 큰 그림자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은 하나둘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긴 식탁은 비워졌고, 그릇도 모두 정리되었다. 돌담 수리에 사용한 도구들은 회관 벽에 가지런히 놓였다. 우물가의 임시 벤치에는 따뜻한 차를 마신 흔적만 조금 남아 있었다.

그러나 다섯 사람은 아직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오래된 느티나무 아래에는 작은 전등 하나가 켜져 있었다. 그 빛은 굵은 나무줄기와 땅 위로 퍼진 뿌리, 그리고 그 옆에 심어진 어린 묘목을 함께 비추고 있었다.

낮에는 작게만 보였던 묘목이 밤이 되자 더 외롭게 서 있는 듯했다.

고등학생과 몇몇 아이들도 집으로 가지 않고 그 곁에 남아 있었다.

한 아이가 묘목을 올려다보다 물었다.

아이

이 나무도 저 큰 나무처럼 될 수 있어요?

정주영

잘 자라고, 사람들이 계속 돌본다면 그럴 수 있지.

아이

얼마나 걸려요?

신영복

네가 어른이 된 뒤에도 오래 걸릴 거야.

아이는 오래된 느티나무와 작은 묘목을 번갈아 보았다.

아이

그럼 여기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다 못 보겠네요?

주변의 어른들이 조용히 웃었다.

박완서

아마 그럴 가능성이 크겠지.

아이

그런데 왜 심었어요?

아무도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낮 동안 마을의 역사, 청년의 불안, 빈집, 돌봄, 경제와 자연을 이야기했던 다섯 사람에게도 그 질문은 쉽게 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완성된 모습을 보지 못할 일을 왜 시작하는가.

자신이 누리지 못할 그늘을 왜 만드는가.

자신의 이름을 모를 사람을 위해 왜 오늘의 시간과 돈과 노동을 사용하는가.

김구가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어 몸을 조금 낮췄다.

김구

네가 그 나무 아래에서 쉬지 못하더라도, 네 뒤에 오는 누군가는 쉴 수 있기 때문이란다.

아이

모르는 사람인데도요?

김구

그래.

우리가 지금 저 큰 나무 아래에 서 있을 수 있는 것도, 오래전에 우리를 몰랐던 누군가가 나무를 심었기 때문이야.

아이는 오래된 느티나무의 줄기를 손으로 만져 보았다.

아이

누가 심었어요?

근처에 있던 노인이 대답했다.

“아무도 정확히 몰라.”

아이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이

이렇게 큰 나무를 심었는데 이름도 몰라요?

법정

나무는 이름을 기억하지 않아도 그늘을 줍니다.

꽃도 자신을 심은 사람에게만 피지 않습니다.

아이

그럼 우리가 심었다는 것도 나중에는 잊어버리겠네요.

박완서

그럴 수 있지.

아이

그래도 괜찮아요?

박완서는 묘목을 바라보다 천천히 대답했다.

박완서

사람의 이름은 잊혀도, 그 사람이 누군가를 위해 남긴 것은 계속 살아 있을 수 있단다.

하지만 모두 잊어도 되는 것은 아니야.

아픈 사람의 이름.

전쟁에서 돌아오지 못한 사람의 이름.

억울한 일을 당했는데도 말할 기회를 얻지 못한 사람의 이름.

그런 이름은 기억해야 해.

아이

왜요?

박완서

잊으면 같은 일이 다시 생길 수 있기 때문이야.

아이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신영복

좋은 일은 이름 없이 이어져도 괜찮을 때가 있습니다.

길을 쓸고, 나무에 물을 주고, 넘어진 사람을 일으킨 사람이 누구인지 몰라도 그 행동은 남습니다.

하지만 고통받은 사람을 이름 없는 숫자로 만들면, 우리는 그 사람을 다시 외면하기 쉽습니다.

정주영

성공에는 이름을 크게 남기고, 실패와 피해에는 이름을 지워 버리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건물을 세운 사람의 이름은 돌에 새기면서, 그 건설 과정에서 다친 사람은 기록하지 않는다면 역사는 반쪽입니다.

김구

나라의 역사도 같습니다.

자랑스러운 순간만 기억하는 나라는 성숙한 나라가 아닙니다.

잘못한 일을 인정하고, 약한 사람에게 어떤 상처를 주었는지 기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법정

기억은 미움을 오래 붙잡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다음 사람의 고통을 줄이기 위한 것입니다.

아이들은 전부 이해하지는 못한 듯했지만,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중 한 소녀가 물었다.

소녀

100년 뒤 사람들은 우리를 나쁜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어요?

어른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김구

그럴 수도 있다.

우리가 지금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일 중에, 미래의 사람들이 잘못되었다고 보는 것이 있을 것이다.

소녀

그럼 어떻게 해야 나쁜 조상이 안 돼요?

신영복

한 번도 잘못하지 않는 조상이 되는 것은 어렵습니다.

우리도 우리가 보지 못하는 잘못을 하고 있을 테니까요.

더 중요한 것은 누군가가 문제를 말했을 때 들으려는 태도입니다.

박완서

“원래 다 그런 것이다.”

“우리 때는 더 힘들었다.”

“너만 참으면 된다.”

그런 말로 사람의 아픔을 막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주영

문제가 보이면 비용이 들더라도 고치기 시작해야 합니다.

건물이 위험하면 보수하고, 노동자가 다치면 작업 방식을 바꾸고, 환경이 훼손되면 생산 방법을 바꾸어야 합니다.

법정

더 많이 가지려는 욕심 때문에 무엇을 잃고 있는지도 계속 물어야 합니다.

김구

좋은 조상은 과거를 자랑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현재의 잘못을 다음 세대에게 그대로 넘기지 않으려는 사람일 것입니다.

고등학생이 묘목의 지지대를 살펴보다 말했다.

고등학생

그런데 우리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잖아요.

기후 문제도 있고, 집값도 있고, 일자리도 있고, 남북 문제도 있고요.

다 고치지 못하면 결국 다음 세대에 넘기는 것 아닌가요?

정주영

모든 문제를 끝낼 수는 없습니다.

우리도 앞선 세대에게서 완성된 나라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도로도 부족했고, 산업도 약했고, 전쟁의 상처도 남아 있었습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만큼 만들었고, 우리는 그다음 일을 맡았습니다.

박완서

문제는 완성하지 못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면서도 숨기고, 아무 준비 없이 다음 사람에게 넘기는 데 있습니다.

신영복

다음 세대가 고칠 수 있도록 사실을 남기고, 제도를 만들고, 사람을 키우고, 서로 협력하는 방법을 전해야 합니다.

법정

우리가 남길 수 있는 가장 큰 것은 완성된 답이 아니라, 무엇이 중요한지를 분별하는 마음일지도 모릅니다.

김구

그리고 질문할 자유입니다.

미래의 아이들이 우리 세대의 결정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만든 제도와 전통을 바꿀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좋은 뜻으로 시작한 일도 미래에는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고등학생은 잠시 생각하다 물었다.

고등학생

그럼 미래를 위해 만든 규칙도 나중에 바꿔도 돼요?

김구

바꿔야 할 때는 바꿔야 합니다.

미래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미래를 통제해서는 안 됩니다.

신영복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길을 만들어 줄 수 있지만, 어느 길로 걸으라고 영원히 명령할 수는 없습니다.

박완서

부모가 자식을 사랑한다고 자식의 삶을 대신 결정해서는 안 되는 것과 같습니다.

법정

나무에 지지대를 세우지만, 가지가 어느 방향으로 뻗을지까지 모두 정하지는 않습니다.

묘목 옆의 천 조각이 바람에 흔들렸다.

나무를 지지대에 묶은 매듭은 단단했지만, 줄기가 조금 움직일 여유는 남아 있었다.

정주영

좋은 제도도 저 매듭과 비슷해야 할지 모릅니다.

쓰러지지 않도록 돕되, 움직임을 완전히 막지 않는 것.

신영복

지원은 사람을 의존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설 수 있도록 돕는 것이어야 합니다.

박완서

사람마다 필요한 시간이 다르다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누군가는 빨리 자라고, 누군가는 오래 도움이 필요합니다.

빠르게 성공한 사람을 기준으로 모두를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마을의 빵집 주인과 청년 농부가 우물가에서 정리한 의견판을 들고 다가왔다.

종이에는 주민들이 미래에 남기고 싶은 것들이 적혀 있었다.

‘깨끗한 물.’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길.’

‘도시로 가지 않아도 선택할 수 있는 일.’

‘아플 때 갈 수 있는 병원.’

‘혼자 살아도 버려지지 않는 마을.’

‘빠른 인터넷.’

‘오래된 집과 새로운 일.’

‘함께 먹는 시간.’

‘쉴 수 있는 시간.’

‘다시 시작할 기회.’

김구는 문장들을 천천히 읽었다.

김구

이 중에서 미래의 아이들에게 가장 먼저 남기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빵집 주인

저는 선택할 수 있는 삶을 남기고 싶어요.

도시에 가도 되고, 마을에 살아도 되고, 일을 바꾸어도 되고, 결혼하거나 하지 않아도 사람으로 존중받는 사회요.

청년 농부

저는 일할 수 있는 고향을 남기고 싶습니다.

전통을 지키라고 말하면서 생계는 알아서 해결하라고 하지 않는 곳이요.

중년 여성

저는 누구의 희생으로 유지되는지 숨기지 않는 사회를 남기고 싶어요.

가정에서도, 마을에서도, 회사에서도요.

혼자 사는 노인

나는 늙었다고 해서 아이들한테 짐이 되지 않는 마을이 좋소.

그렇다고 날 매일 감시하는 마을도 싫고.

사람들이 웃었다.

노인

웃을 말이 아니오. 늙은 사람도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어.

신영복

도움을 받을 권리와 혼자 있을 자유를 함께 남기고 싶다는 말씀이군요.

노인

그렇지.

고등학생

저는 한 번 실패해도 끝나지 않는 나라가 좋습니다.

대학이나 직장을 잘못 선택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나라요.

학생의 어머니

부모가 아이의 미래를 대신 결정하지 않아도 안심할 수 있는 사회면 좋겠어요.

젊은 아내

아이를 낳는 것이 제 경력과 삶을 모두 포기하는 선택이 아니었으면 합니다.

젊은 남편

아이를 돌보는 남자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당연한 사람으로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이 듣고 있다가 서로 앞다투어 말했다.

“강이 깨끗했으면 좋겠어요.”

“학교가 재미있었으면 좋겠어요.”

“전쟁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동물이 살 곳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할머니가 안 아팠으면 좋겠어요.”

“숙제가 적었으면 좋겠어요.”

마지막 말에 어른들이 웃었다.

법정도 미소를 지었다.

법정

아이들은 우리가 어렵게 말한 것을 간단하게 말합니다.

깨끗한 물.

쉴 시간.

함께 있는 사람.

두려움 없는 하루.

사람이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어쩌면 너무 많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정주영

하지만 그것을 모든 사람에게 가능하게 만들려면 많은 일이 필요합니다.

물은 관리해야 하고, 학교는 운영해야 하며, 일자리는 만들어야 합니다.

평화를 지키고, 돌봄과 의료를 제공하려면 경제적 힘도 필요합니다.

법정

경제적 힘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힘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잊지 말자는 것입니다.

김구

부유한 나라가 되는 것과 아름다운 나라가 되는 것은 같지 않습니다.

강한 경제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힘이 사람의 존엄과 문화, 자연을 지키는 데 사용되지 않는다면 무엇을 위한 힘입니까.

정주영

저는 가난이 사람의 선택을 얼마나 줄이는지 보았습니다.

산업과 기술, 기업은 국가를 일으키는 데 필요했습니다.

미래에도 새로운 산업이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건물과 수출만으로 성공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박완서

그 성장을 위해 누가 집에서 기다렸는지, 누가 아이를 키웠는지, 누가 위험한 현장에서 일했는지도 역사에 들어가야 합니다.

정주영

맞습니다.

기업의 성공은 매출만이 아니라, 직원과 가족, 지역이 몇십 년 뒤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로도 평가해야 합니다.

신영복

한 사람의 성공이 다른 사람의 불안 위에 세워져 있다면 공동의 성공이 아닙니다.

법정

많이 가진 나라보다, 필요한 것을 잃지 않는 나라가 되었으면 합니다.

김구

저는 우리나라가 남을 침략하거나 억누르는 힘으로 강해지기보다, 높은 문화로 다른 사람의 행복에 도움이 되는 나라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 바람은 경제와 문화 중 하나를 고르는 일이 아닙니다.

경제적 힘이 문화와 인간성을 지키도록 만드는 일입니다.

고등학생이 김구를 바라보았다.

고등학생

문화가 중요하다는 것은 전통 옷이나 음악을 지키는 것만 말하는 건가요?

김구

그것도 문화의 일부입니다.

그러나 더 넓습니다.

약한 사람을 대하는 태도.

다른 의견을 듣는 습관.

실패한 사람에게 다시 기회를 주는 제도.

자연을 단순히 이용할 물건으로만 보지 않는 마음.

그 모든 것이 한 나라의 문화입니다.

박완서

가정에서 누가 밥을 차리고, 누가 먼저 숟가락을 드는지도 문화입니다.

신영복

회의에서 말이 느린 사람을 기다리는 것도 문화입니다.

정주영

기업이 손실이 생기더라도 안전 규정을 지키는 것도 문화입니다.

법정

가지지 않아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가진 것을 과시하지 않는 것도 문화입니다.

마을의 대학생이 의견판 아래에 새 문장을 적었다.

‘문화는 우리가 서로를 대하는 방식이다.’

사람들은 그 문장을 바라보았다.

김구

좋은 문장입니다.

백 년 뒤 남아 있는 건물보다,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더 깊이 남을 수 있습니다.

박완서

가정의 상처도 세대를 넘어갑니다.

부모에게 들은 말이 자식에게 이어지고, 억울함을 말하지 못한 사람이 다음 사람의 고통도 침묵시키기도 합니다.

반대로 누군가 한 번 그 흐름을 멈출 수도 있습니다.

“나는 그렇게 자랐지만, 너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

그 결심도 미래에 남는 유산입니다.

신영복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차별과 경쟁, 침묵이 습관처럼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세대가 그것을 당연하지 않다고 말하면 관계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정주영

잘못된 기업 문화도 바꿀 수 있습니다.

사고를 숨기는 문화에서 보고하는 문화로.

명령만 따르는 문화에서 질문하는 문화로.

장시간 노동을 충성으로 보는 문화에서 결과와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문화로.

법정

변화는 더 많이 더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멈추는 것도 변화입니다.

필요 없는 소비를 멈추고, 과도한 경쟁을 멈추고, 상대를 평가하는 습관을 멈추는 것.

아이 한 명이 묘목 주변의 흙을 발로 누르려 하자 청년 농부가 부드럽게 말렸다.

청년 농부

너무 세게 밟으면 뿌리가 숨을 못 쉬어.

아이는 발을 치우고 물었다.

아이

뿌리도 숨 쉬어요?

청년 농부

그래. 흙 안에도 공기가 필요해.

법정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니지요.

사람의 마음도 그렇습니다.

겉으로 조용하다고 괜찮은 것은 아닙니다.

박완서

가정 안에서 말하지 못한 마음.

직장에서 참기만 한 두려움.

전쟁과 가난 속에서 묻힌 슬픔.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신영복

공동체는 크게 말하는 사람만 듣지 않고, 말하지 못한 사람의 자리도 살피는 곳이어야 합니다.

김구

국가 역시 다수의 목소리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소수와 약자의 권리가 보호될 때 나라의 원칙이 증명됩니다.

정주영

기업도 가장 낮은 위치의 직원이 문제를 말할 수 있을 때 안전해집니다.

다섯 사람은 조금 전 혼자 사는 노인이 앉았던 긴 식탁 끝의 빈자리를 바라보았다.

그 자리는 더 이상 단순히 비어 있는 의자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모였다고 모두가 포함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준 자리였다.

신영복

미래의 아이들에게 남길 나라를 생각할 때, 우리는 자꾸 전체를 말합니다.

국가 경제.

국가 경쟁력.

국가 문화.

그러나 한 사람의 빈자리에서 시작하지 않으면, 그 전체는 누구의 것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박완서

역사의 큰 문장 속에서는 평범한 사람의 하루가 사라지기 쉽습니다.

전쟁이 끝났다고 기록되어도, 어떤 가족에게 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경제가 성장했다고 기록되어도, 어떤 여성의 하루는 더 고단해졌을 수 있습니다.

정주영

통계는 필요합니다.

하지만 평균이 좋아졌다고 모두의 삶이 좋아진 것은 아닙니다.

법정

많다는 말과 충분하다는 말도 다릅니다.

물건이 많아도 마음이 쉴 곳이 없을 수 있습니다.

김구

그렇다면 미래의 아이들이 우리 시대를 어떻게 기억하기를 바랍니까?

질문이 다시 다섯 사람에게 돌아왔다.

오래된 느티나무의 잎이 바람에 흔들렸다.

먼저 박완서가 입을 열었다.

박완서

저는 우리가 고통을 숨기지 않은 세대로 기억되면 좋겠습니다.

전쟁의 상처도, 가족 안의 희생도, 여성의 보이지 않는 노동도 기록한 세대.

그러나 아픔만 물려주지 않고, 다음 사람은 같은 상처를 덜 받게 하려고 노력한 세대였으면 합니다.

법정

저는 너무 많이 가지느라 삶을 잃지 않은 세대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자연을 소유물로만 보지 않고, 사람의 시간을 끝없이 소비하지 않으며, 충분함을 아는 법을 다시 배운 세대였으면 합니다.

신영복

저는 관계를 회복한 세대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한 세대가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이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은 세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부끄러워하지 않고, 도와주는 사람도 지치지 않도록 책임을 나눈 세대였으면 합니다.

정주영

저는 가난과 불안에 굴복하지 않고 새로운 일을 만든 세대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성장의 결과를 소수만 차지하지 않고, 새로운 산업과 기술이 사람의 선택과 지역의 가능성을 넓히게 한 세대였으면 합니다.

실패를 숨기지 않고, 더 안전하고 공정한 방식으로 고친 세대였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김구가 말했다.

김구

저는 우리나라가 강해서 두려움의 대상이 된 나라보다, 깊은 문화와 인간성으로 존중받는 나라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상처를 기억하되 다른 사람의 상처도 볼 수 있는 나라.

자기 민족을 사랑하되 다른 민족을 낮추지 않는 나라.

경제의 힘을 사람을 살리는 데 사용하는 나라.

미래의 아이들이 “우리 조상들은 완전하지 않았지만, 더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려고 노력했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고등학생이 조용히 물었다.

고등학생

그런 나라를 만들려면 내일부터 뭘 해야 합니까?

정주영이 미소를 지었다.

정주영

좋은 질문입니다.

미래를 말한 뒤에는 언제나 내일의 일이 남습니다.

신영복

오늘 나온 이야기를 한 번의 행사로 끝내지 않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박완서

오늘 음식과 설거지를 누가 맡았는지 기억하고, 다음 모임에서는 처음부터 일을 공정하게 나누는 것.

법정

새로운 시설을 짓기 전에, 정말 필요한지 주민에게 묻는 것.

김구

마을의 역사와 현재의 문제를 아이들도 이해할 수 있는 말로 기록하는 것.

정주영

빈집 한 채를 실제로 어떻게 살릴지 작은 계획부터 세우는 것.

신영복

혼자 사는 주민이 원하는 도움을 확인하고, 정기적인 교통과 식사 계획을 만드는 것.

박완서

젊은 부부와 여성, 아이들이 회의에 참여할 수 있는 시간과 방식을 마련하는 것.

법정

우물가에 다시 사람이 모일 수 있도록 작은 벤치를 지키고, 쓸데없는 큰 공사로 덮지 않는 것.

김구

고등학생이 떠나든 남든, 돌아올 문을 닫지 않는 것.

정주영

그리고 누가 어떤 일을 맡을지, 비용은 어떻게 마련할지 정하는 것.

고등학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등학생

그럼 미래를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평범하네요.

신영복

대부분 그렇습니다.

큰 변화는 평범한 일을 다른 기준으로 반복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박완서

밥을 누가 차리는지 묻는 것.

정주영

일의 위험을 누가 떠안는지 묻는 것.

법정

더 가지기 전에 무엇을 잃는지 묻는 것.

김구

그리고 내 선택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에게 무엇을 남기는지 묻는 것.

그때 공민관 직원이 작은 양동이를 들고 나왔다.

마을회관 직원

묘목에 오늘 마지막으로 물을 줄 사람 있습니까?

아이들이 일제히 손을 들었다.

한 명만 고르기 어려워지자, 작은 컵 여러 개에 물을 나누어 담았다.

아이들은 차례로 묘목의 뿌리 주변에 물을 부었다.

물은 흙 위에 잠시 고였다가 천천히 스며들었다.

아이

내가 준 물이 나무 안으로 들어갔어요?

청년 농부

그래.

아이

어디까지 가요?

청년 농부

뿌리로 들어가서 나무가 자라는 데 쓰이지.

아이

내일이면 커져요?

청년 농부

눈으로는 잘 모를 거야.

아이

그럼 물 준 게 소용없는 것처럼 보이겠네요.

법정

보이지 않는다고 소용없는 것은 아니란다.

사람에게 한 친절도 바로 결과가 보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가르친 말도, 심어 준 용기도, 오래 뒤에 나타날 수 있습니다.

신영복

한 사람이 받은 도움을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처음 행동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박완서

부모가 아이에게 한 말도 그렇습니다.

상처가 오래 남기도 하고, 믿어 준 말이 평생 힘이 되기도 합니다.

정주영

오늘 시작한 작은 사업이나 제도도 처음에는 변화가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기록하고 확인하며 계속 고쳐야 합니다.

김구

나라의 문화도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바른 선택을 할 때 조금씩 형성됩니다.

아이들은 빈 컵을 한곳에 모았다.

묘목 주변의 흙은 조금 더 짙은 색으로 변해 있었다.

고등학생

이 나무가 백 년 뒤까지 살아 있을까요?

법정

알 수 없습니다.

폭풍을 만날 수도 있고, 병이 들 수도 있습니다.

마을의 모습이 바뀌어 옮겨질 수도 있습니다.

고등학생

그럼 우리가 하는 일이 헛될 수도 있네요.

정주영

사업도 실패할 수 있고, 계획도 바뀔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시작하지 않으면 가능성은 처음부터 없습니다.

박완서

사람을 사랑하는 일도 상처받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도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삶이 더 안전하다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신영복

미래를 위해 행동한다는 것은 결과를 지배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자신이 책임질 수 있는 부분을 맡는다는 뜻입니다.

김구

우리는 백 년 뒤의 나라를 결정할 수 없습니다.

다만 그 아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넓힐 수 있습니다.

고등학생이 오래된 느티나무를 올려다보았다.

고등학생

이 나무를 심은 사람도 살아남을지 몰랐겠죠?

법정

그랬을 겁니다.

고등학생

그래도 심었고요.

김구

그것이 희망입니다.

희망은 반드시 잘될 것이라고 믿는 감정만이 아닙니다.

잘될 가능성을 위해 오늘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입니다.

박완서

고통을 보지 않는 것이 희망도 아닙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본 뒤에도 사람과 삶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희망입니다.

신영복

혼자서는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고, 함께할 사람을 찾는 것도 희망입니다.

정주영

생각을 계획으로, 계획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도 희망입니다.

법정

결과를 모두 소유하려 하지 않고, 다음 사람에게 맡길 줄 아는 것도 희망입니다.

밤이 깊어지자 아이들의 부모가 집으로 돌아가자고 불렀다.

아이들은 묘목에 손을 흔들며 떠났다.

한 아이가 “내일 또 물 줄게”라고 말했다.

다른 아이는 “비 오면 안 줘도 돼”라고 대답했다.

웃음소리가 골목 끝으로 멀어졌다.

다섯 사람은 다시 오래된 나무 아래에 섰다.

신영복

우리는 오늘 다섯 가지를 이야기했습니다.

과거의 세대가 무엇을 지켜 냈는지.

풍요로운 나라에서 젊은이가 왜 미래를 두려워하는지.

발전 속에서 잃은 고향을 어떻게 다시 살릴지.

한 사람의 성공보다 함께 살아갈 사회를 어떻게 만들지.

그리고 미래의 아이들에게 어떤 나라를 남길지.

박완서

모든 질문은 결국 평범한 사람의 하루로 돌아왔습니다.

밥을 먹을 수 있는가.

아이를 키울 수 있는가.

아플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가.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살 수 있는가.

말해도 무시당하지 않는가.

정주영

그 하루를 지키려면 산업과 제도, 기술과 자원이 필요합니다.

법정

그 하루가 욕망과 경쟁에 모두 빼앗기지 않도록 절도와 여유도 필요합니다.

김구

그 하루가 인간다운 삶이 되게 하는 문화와 품격도 필요합니다.

신영복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한 사람이 독점하지 않고 함께 나누는 관계가 필요합니다.

멀리서 도시로 이어지는 도로 위에 자동차 불빛이 지나갔다.

산 아래에는 빈 한옥과 새로 지은 집이 함께 보였다.

느린 인터넷으로도 영상을 올리는 대학생.

드론을 정리하는 청년 농부.

남은 빵을 포장하는 빵집 주인.

병원 날짜를 확인하는 노인과 청년.

식사 준비표를 다시 작성하는 중년 여성.

대학 상담서를 접어 가방에 넣는 고등학생.

그들의 작은 움직임이 어두운 마을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었다.

김구

좋은 나라는 위대한 인물 몇 명이 만드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자신의 자리에서 다음 사람을 생각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만드는 것입니다.

정주영

그리고 그 마음을 실제 일과 제도로 만드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박완서

그 과정에서 지워지는 사람이 없는지 계속 살펴야 합니다.

법정

더 크고 더 빠른 것만을 목표로 삼지 않아야 합니다.

신영복

서로 다르다는 이유로 관계를 끊지 않아야 합니다.

다섯 사람은 마을회관을 떠나기 위해 길로 나섰다.

새로 고친 돌담이 달빛 아래 이어져 있었다.

오래된 돌과 새 돌은 낮보다 구분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손으로 만지면 서로 다른 시간의 표면을 느낄 수 있었다.

박완서가 걸음을 멈추었다.

박완서

낮에 그 아이가 말했지요.

나중에 올 아이가 넘어지지 않게 돌을 잘 놓아야겠다고.

정주영

아주 정확한 말이었습니다.

신영복

우리가 미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도 그 정도일지 모릅니다.

모든 길을 대신 걸어 주는 것이 아니라, 위험한 돌 하나를 바로 놓는 것.

법정

길가의 나무 한 그루를 살리는 것.

김구

그리고 다음 사람이 스스로 길을 고칠 수 있도록 지혜와 책임을 남기는 것.

다섯 사람은 천천히 돌담길을 걸었다.

그들이 밟는 길도 오래전 누군가가 만들었고, 수많은 사람이 보수하며 지금까지 이어 온 길이었다.

내일이 되면 돌담 사이로 다시 풀이 자랄 것이다.

비가 오면 흙이 흘러내릴 것이다.

묘목은 물을 더 필요로 할 것이다.

혼자 사는 노인의 병원 문제도 한 번의 방문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빈 한옥도 하루 만에 살아나지 않을 것이다.

젊은이의 불안도 따뜻한 말 몇 마디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이제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 조금 알게 되었다.

누가 빠져 있는가.

누가 보이지 않는 일을 맡고 있는가.

누가 이익을 얻고 누가 부담하는가.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가.

오늘의 선택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에게 무엇을 남기는가.

오래된 느티나무의 가지가 밤하늘을 덮고 있었다.

그 옆의 묘목은 아직 그늘을 만들지 못했다.

꽃도 없고, 새가 앉을 굵은 가지도 없었다.

그러나 뿌리는 젖은 흙 속에서 조금씩 자리를 잡고 있었다.

백 년 뒤의 아이들은 오늘의 사람들을 기억하지 못할 수 있다.

그들이 돌담을 고쳤다는 사실도, 우물가에 벤치를 놓았다는 사실도, 긴 식탁에서 누가 어떤 말을 했는지도 알지 못할 수 있다.

그래도 그 아이들이 깨끗한 물을 마시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고, 도시와 고향 중 하나를 자유롭게 선택하며, 아플 때 버려지지 않고, 서로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면 오늘의 선택은 그들의 삶 안에 남아 있을 것이다.

미래의 아이들에게 남길 가장 큰 유산은 완성된 부유한 나라가 아니다.

과거의 상처를 숨기지 않는 기억.

현재의 불공정을 발견하면 고치려는 용기.

경제의 힘을 사람과 자연을 살리는 데 사용하는 책임.

한 사람의 성공을 모두의 가능성으로 넓히는 제도.

가족과 공동체의 이름으로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 공정함.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도 버리지 않는 관계.

그리고 자신이 그 결과를 보지 못하더라도, 다음 사람을 위해 오늘 돌 하나를 바르게 놓고 나무 한 그루에 물을 주는 문화다.

마을의 불빛이 하나씩 꺼졌다.

오래된 느티나무와 어린 묘목은 어둠 속에 나란히 남았다.

한 나무는 과거가 오늘에게 건넨 그늘이었다.

다른 나무는 오늘이 미래에게 보내는 아직 보이지 않는 약속이었다.

맺는 글 - 미래에 남길 가장 큰 유산

미래_세대를_위한_위대한_유산

과거의 세대는 우리에게 완벽한 나라를 남기지 않았습니다.

전쟁의 상처도 남겼습니다.

분단도 남았습니다.

불평등과 차별도 남았습니다.

빠른 산업화 과정에서 자연과 지역, 노동자의 건강이 희생되기도 했습니다.

가족의 이름 아래 여성과 약한 사람이 지나치게 많은 책임을 떠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무너진 나라를 다시 세웠습니다.

아이를 학교에 보냈습니다.

길과 공장, 병원과 집을 만들었습니다.

가난을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세대에서 끝나지 않을 일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성공과 상처를 함께 받았습니다.

이제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전달할지는 우리의 책임입니다.

미래의 아이들에게 고통 없는 삶을 약속할 수는 없습니다.

실패와 질병, 재난과 갈등을 전부 없앨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피할 수 있는 고통을 그대로 두지 않는 사회는 만들 수 있습니다.

한 번 실패한 사람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길을 만들 수 있습니다.

아이를 낳고 싶은 사람이 일과 삶을 모두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조건을 만들 수 있습니다.

노인이 도움을 받으면서도 짐이 되었다고 느끼지 않는 마을을 만들 수 있습니다.

여성이 가족과 공동체의 보이지 않는 노동을 혼자 책임지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고향을 떠나는 사람을 배신자처럼 보지 않고, 돌아오는 사람을 실패자처럼 보지 않는 문화를 만들 수 있습니다.

지역을 살린다는 이유로 주민을 밀어내지 않는 개발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경제적 성공이 노동자와 가족, 자연의 희생 위에 세워지지 않도록 기업과 제도를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미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를 숨길지 기록할지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책임을 넘길지 고치기 시작할지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약한 사람의 목소리를 무시할지 들을지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더 많이 가질지, 충분함을 배울지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성공만 칭찬할지, 그 성공을 가능하게 한 수많은 사람의 시간까지 볼지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미래는 거대한 선언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오늘의 역할을 공정하게 나누는 일.

도움을 받는 사람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직접 묻는 일.

빈집 한 채를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꾸는 일.

젊은 사람이 마을에서도 일할 수 있도록 인터넷과 물류를 연결하는 일.

아이의 삶을 부모의 두려움만으로 결정하지 않는 일.

노인이 병원에 갈 수 있도록 교통을 마련하는 일.

일하는 부모가 아이를 돌볼 수 있도록 회사의 문화를 바꾸는 일.

공동 우물 옆에 작은 벤치를 놓는 일.

한 그루의 묘목에 물을 주는 일.

이런 평범한 행동이 미래의 성격을 만듭니다.

한 번의 친절만으로 공동체는 완성되지 않습니다.

한 번 음식을 배달했다고 돌봄 문제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한 번 마을 행사를 열었다고 고향이 살아나지 않습니다.

한 번 나무에 물을 주었다고 큰 그늘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좋은 뜻을 계속되는 역할과 예산, 제도와 문화로 옮겨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계속 물어야 합니다.

누가 빠져 있는가.

누가 보이지 않는 일을 맡고 있는가.

누가 이익을 얻고, 누가 비용을 지불하는가.

도움을 주는 사람이 지치고 있지는 않은가.

도움을 받는 사람이 수치심이나 감시를 느끼고 있지는 않은가.

미래를 위한다는 말 아래, 현재의 누군가를 희생시키고 있지는 않은가.

좋은 조상이 된다는 것은 미래에게 완성된 정답을 주는 일이 아닙니다.

미래의 아이들이 자기 답을 찾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일입니다.

질문할 자유.

실패할 자유.

다시 시작할 기회.

자신과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문화.

깨끗한 물과 안전한 길.

살아 있는 지역과 기억.

사람을 소비하지 않는 경제.

필요할 때 서로 의지해도 존엄을 잃지 않는 관계.

그런 토대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 넘기는 것입니다.

100년 뒤의 아이들은 우리 이름을 기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다면,

고향과 도시 중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다면,

가족을 만들거나 만들지 않는 선택으로 인간의 가치가 결정되지 않는다면,

실패한 뒤에도 다시 배울 수 있다면,

아플 때 버려지지 않는다면,

서로 다르면서도 함께 살아갈 수 있다면,

우리의 선택은 그들의 하루 속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한 세대가 미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다음 사람이 넘어지지 않도록 돌 하나를 바르게 놓는 일.

자신이 쉬지 못할 그늘을 위해 나무 한 그루를 심는 일.

그리고 그 나무에 물을 줄 다음 사람을 믿는 일입니다.

등장인물 소개

김구

김구는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 지도자입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요 지도자로 활동했으며, 독립된 나라가 단순히 군사력이나 경제력만 강한 나라가 아니라 높은 문화와 인간성을 지닌 나라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이번 대화에서는 국가의 품격, 문화, 역사적 책임, 미래 세대를 향한 도덕적 의무를 이야기합니다.

법정

법정은 한국의 승려이자 수필가입니다.

『무소유』를 비롯한 글을 통해 지나친 소유욕에서 벗어나 자연과 더불어 단순하고 자유롭게 사는 삶을 이야기했습니다.

이번 대화에서는 경제적 성장과 소비가 인간의 시간, 자연, 마음의 평화를 빼앗지 않도록 절도와 내면의 자유를 강조합니다.

신영복

신영복은 한국의 사상가, 교육자, 작가입니다.

오랜 수감 생활을 거친 뒤 인간관계, 연대, 교육, 공동체에 관한 깊은 글을 남겼습니다.

사람은 독립된 개인이면서도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생각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이번 대화에서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자유를 잃지 않으면서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의 모습을 찾습니다.

박완서

박완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소설가입니다.

한국전쟁, 도시화, 중산층의 삶, 가족, 여성의 노동과 상처를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통해 섬세하게 그렸습니다.

이번 대화에서는 국가의 큰 성공담 속에서 사라지기 쉬운 가족의 희생, 여성의 노동, 전쟁 이후의 상처와 생활의 존엄을 드러냅니다.

정주영

정주영은 현대그룹을 창업한 한국의 기업가입니다.

가난과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건설, 자동차, 조선 등 여러 산업에 도전하며 한국의 경제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번 대화에서는 산업, 일자리, 도전, 기술의 필요성을 말하는 동시에, 기업의 성공이 노동자와 가족, 지역과 자연의 미래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관점으로 변화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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